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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 Sep 19. 2022

창피함이 주는 즐거움은 의외로 크지 않은가

재미에 관한 세 번째 이야기

2021년 하반기에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어른들의 ‘재미 찾기’가 아닐까.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실질적 메시지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한국의 70~80년대 놀이가 전 세계인을 유혹했다. 나 또한 어릴 적 가장 아름답고 행복하고 순수했던 순간은 꼬맹이 시절, 친구들과 집 앞 도로에서 오징어 게임, 달고나, 구슬치기, 팽이치기, 고무줄놀이, 얼음땡, 담방구, 고무줄 넘기를 하던 시간이었다. 어른이 되고 나니, 이런 놀이는 어른이 돼서는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과거를 회상하며 쨘한 향수와 그리움을 느끼며 추억에 빠지기만 했다. 그런 아이들의 놀이에 어른들을 참여시킨 <오징어 게임>의 설정은 전 세계 어른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이는 바로 어른들은 순수한 즐거움의 시간인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일맥상통한다. 늦게나마 영화에서 영감을 얻어 어른들이 영화 속 놀이를 따라 한다. 우리도 진지하게 재미를 찾아야 한다.




( 어른도 재미를 찾을 권리가 있다 )


재미를 추구할 나이는 정해져 있지 않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재미를 찾고 즐거움을 추구하면 된다. 어른이라고 안될 게 뭐가 있겠는가. 순수한 즐거움을 찾을 권리는 어른에게도 있다. 이러한 어른의 재미 찾기를 방해하는 여러 요소들이 있는 게 사실이다. 취업이라는 인생 최대의 난관, 그리고 결혼에 이은 육아라는 최대의 고비를 겨우겨우 넘겨가면서 자연스럽게 ‘재미’는 사치스러운 것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좀 더 현명해질 필요가 있다. 이러한 난관을 빠져나오고 나면 허무함이 남고, 무엇에도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이 내 삶을 장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늘더라도 재미로 향하는 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나의 경우 둘째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일주일 한번 문화센터 그리기 수업에 참여했고, 두 아이를 키우며 대학원 논문을 쓰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회사에서 차세대 프로젝트를 하며 주말도 쉬지 않고 출근하며 젖 먹던 힘을 짜내가며 일에 치어 살 때도 한 달 한번 평일 독서모임은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회사 밖에서 난 항상 뛰어다녀야 했지만.. 그 모든 난관을 헤쳐 나오고 보니 그동안 유지해 왔던 ‘재미 찾기’ 습관은 더욱 단단해져 있었다.


<오징어 게임> 영화 속 마지막 장면, 이정재는 오징어 게임을 주관한 호스트를 대면하게 되고 그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 이런 게임을 만들었냐고. 무엇을 위해 이런 걸 하냐고” 호스트는 대답한다. “재미가 없어서” 그렇다. 어른들에게도 삶에 ‘재미’가 필요하다. 그는 덧붙인다. “나는 돈을 많이 모았네, 그런데 자네, 돈이 없는 자와 돈이 많은 자의 공통점이 뭔지 아는가? 재미가 없다는 거야. 나는 돈이 많았지만 삶에 재미가 없었네. 그래서 재미를 찾기로 했지…”


‘재미’는 인간이라는 동물의 보편적인 욕구다. 그러니 어른들도 적극적으로 재미를 추구해야 한다. 인간으로 태어나, 충실한 삶을 사는 방법 중의 하나가 ‘재미 찾기’이다. 당신은 당신의 삶에서 어떠한 재미를 추구하고 있나 곰곰이 생각해보자.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고? 쉽게 생각하자. 순수한 마음으로 온전히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활동이면 된다. 취미를 생각해도 좋다. 어릴 적 내가 느꼈던 순수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활동들 말이다.




( 딸아이를 부러워하다 )


딸아이는 하고 싶은 게 많았다. 그리고 매번 진지했다. 초등학교 1학년 공개수업에 갔다. "꿈"에 대한 발표시간이었다. 딸아이는 김연아 언니와 같은 피겨스케이트 선수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스케이트 한 번도 타보지 않은 아이였는데 말이다. 결국 우리는 피겨스케이트 강습을 등록하고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했다. 아이의 꿈이라니 이 정도는 해야겠다 싶었다. 1여 년 만에 그만두었다. 딸아이도 그 정도면 이제 꿈을 

바꾸는 것에 미련이 없어 보였다.


피아노 학원은 5살 때부터 다닌 듯하다. 피아노 배우고 싶어 하는 아이를 내가 겨우겨우 달래고 설득해서 그나마 늦게 시작한 거였다. 딸아이의 또 다른 꿈은 피아니스트였다. 피아노를 전공하고 피아노 학원을 차린 뒤 지금의 피아노 학원 원장 선생님처럼 탕비실 열쇠의 주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피아노 콩쿠르도 나가고, 딸아이의 실력을 인정해주시는 원장 선생님을 믿고, 진진하게 전공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았다. 그러다가 딸아이의 꿈이 바뀌었다. 이제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단다. 그렇게 딸아이는 3학년이라는 늦은 나이게 다시 바이올린에 입문한다.


4학년이었나? MBC 예능프로에 아역배우인 김유정 언니가 나왔다. 이를 본 딸아이는 아역배우가 되는 게 꿈이란다. 다른 건 어찌해보겠는데 아역 배우는 아닌 것 같다고 남편과 의견을 나눴다. 딸아이는 막무가내다. 하고 싶은 게 너무도 많은 아이. 결국 아이가 직접 학원을 찾아보고, 거길 보내달란다. 그렇게 아이의 연기학원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매주 일요일에 3시간씩 수업이 있다. 생일선물로 <아역배우 되기>란 책도 사줬다.


중학생 된 딸은 최근에 댄스 예능프로그램인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보고 코레오 그래피에 빠졌다. 특히 프라우드먼 멤버인 Kayday인 다영이 언니를 너무 좋아하고 그녀의 덕질에 빠져 산다. 합정역에 있는 OFD 댄스 학원에 매주 Kayday언니의 수업을 들으러 간다. 혼자서.... 그러면서 사람들과 사귀고 친구도 생긴 듯하다. 언니가 좋아하는 수제비 집에 가서 혼밥도 하고, 언니들이 추천하는 식당은 서울 곳곳에 찾아다닌다. 그러면서도 영어학원 숙제랑 데일리 테스트는 퍼펙트하고 메가스터디 현우진 인강을 잘 듣고 있으니 뭔 말을 못 하겠다. 여튼, 자기가 좋아하는 놀이에 완전히 빠져서 행복하고 즐겁다고 하니, 딸의 창의성은 쑥쑥 커져가리라 믿는다. 어릴 적 노는 법을 몰랐는 나랑 완전 반대다. 그래서 딸아이가 즐거운 모습을 보면 흐뭇하다. 울 딸은 나중에 대성(大成) 할 듯싶다.


하고 싶은 게 많은 딸아이를 키우며, 그가 원하는 것들을 경험하게 해 주며 나는 내내 딸아이를 부러워했다. 꿈을 이루는 게  목표가 아니었다. "경험"과 "재미"가 나와 남편이 딸아이이게 바라는 전부였다. "경험"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 하고 싶은 활동이 있을 때 경험을 하고 나면 미련이 없지만, 하고 싶으나 기회를 얻지 못하면 두고두고 미련이 남는다. 무슨 활동이든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때가 가장 재미있다. 인생은 의식적으로 재미를 찾아야 하는 과정이다. 본인이 재미있게 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 어른의 취미, 나의 놀이 )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에서 건진 한 문장.

"취미란 노는 거야. 어른이 '논다'라고 하면 멋없으니까 취미라고 부르 것뿐이야. 어른이 되고 나서도 놀기 위해서 취미란 게 있는 거야."


너무 맞는 말이라서 작가의 시선에 감탄을 했다. 어른의 취미에 대한 작가의 풀이가 무척 신선했던 기억이다.

"자고로 어른을 위한 취미란 잔잔한 일상에 돌멩이를 던지는 작은 반란이기를. 시간을 쪼개서 취하고, 시간을 쪼개서 넘어지고, 시간을 쪼개서 덕질을 하면서 살 수 있기를. 창피함이 주는 즐거움은 의외로 크지 않은가."

애들이 논다고 하면 그냥 노는 거고, 어른이 논다고 하면 취미생활을 하는 거다. 나는 끊임없이 뭐하고 놀까 생각한다. 수채화를 배우기도 했고, 색연필화를 그리기도 했으나, 육아로 멈췄다. 그 이후로는 별 다른 취미 없이, 독서에 완전 빠져서 살았다. 두 아이를 키우며 바쁜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게 독서였다. 다행히 지금은 보다 더 다양한 재미를 추구하고 있다.


딸아이가 부러웠다. 나도 "경험"해보고 싶고, "재미"를 누리고 싶다. 그래서 하기로 했다. 특히, 잔잔한 일상에 돌멩이를 던지는 작은 반란과 같은 취미를. 짜릿함과 즐거움, 혹은 창피함도 있겠지. 그래서 책도 써보자 결심했다. 반란과도 같은, 어떻게 보면 쑥스러운, 하지만 명백히 매우 즐거운 그런 취미. 나의 이야기를 나의 생각을 활자를 통해 정리하고 공개하는 것을 취미로 가져보기로 했다.


어반 드로잉, 화실 다니기, 칼럼 필사, 책 읽기, 수영, PT, 여행, 블로그  등은 모두 나의 취미이자 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놀이들이다. 취미가 나의 놀이다. 재미를 위해 오늘도 나는 취미를 즐긴다. 재미에 푹 빠져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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