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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 Oct 17. 2022

언어로 구체화할 때 즐거움과 행복이 오래 남는다

행복에 관한 네 번째 이야기

직장을 다니며 바쁜 게 사는 동안에도, 나는 나를 위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그렇게 어렵게 확보한 시간 속에서 나만의 행복을 만들어갔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고 가며 사색을 즐겼다. 아침에 읽었던 책에서 나에게 울림을 주었던 문구들은 하루 종일 나를 즐겁게 해 주었다.


점심시간 혹은 퇴근길에 오프라인 서점을 들러서 새로운 책들을 구경하고, 읽고 싶은 책은 핸드폰 메모 앱에 기록했다가 어떻게든 구입하거나 빌려서 읽었다. 혹은 퇴근 후 집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동네의 '커피랑 도서관'에 2시간을 머무르며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곤 했다. 모임을 만들어 저녁 모임에 참석하기도 했다.


엄마 16년 차다. 엄마 10년 차부터 나만의 조금씩 시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출산과 육아에 따른 내 인생 10년은 순삭(순간 삭제)되었다고 농담으로 말하곤 한다. 첫아이 출산 후 10년, 둘째 아이의 보육이 마무리되어  때부터 조금씩 조금씩 시간을 낼 수 있었다. 다시 내 시간을 갖게 된 것에 감사하며, 슬기로운 직장맘 생활을 즐겼다.


수없이 많은 소소한 행복들은 이미 우리의 삶에 들어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할 뿐이다.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며, 이미지로 언어로 구체화하는 순간 깨닫게 된다. “아~ 오늘도 즐거운 순간들이 많았구나.  오늘도 무척 행복한 하루였구나.” 소소한 즐거움이 내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각인이 되면서 그 행복이 더 오래 머문다.




( 순식간에 사라지는 삶의 작은 기쁨 )


화, 경멸, 두려움, 괴로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오래 머무르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즐거움과 행복한 감정은 순식간에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낙담하지 말자. 행복이란 결코 즐거운 상태가 지속되는 상태가 아니다. 작은 순간들을 많이 기억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찰나의 즐거움을 많이 기억해 낼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그 순간을 상기하면 다시 그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다.


그래서 오늘 나를 즐겁게 한 것들에 대한 목록과 간략한 느낌을 메모한다. 찰나의 즐거움이라 기억의 끝자락에서 떨어질 락 말락 하고 있는 것들이 꽤 될 테다. 이것들을 차곡차곡 고이 적어 본다. 그러면 내가 오늘 이렇게 즐거운 일이 많았고, 감사할 일이 많았구나 느끼게 된다.


하루하루 목록이 쌓이고, 즐거운 순간이 누적되면서 시나브로 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구나 깨닫게 되었다. 작은 노력으로 ‘행복’이라는 큰 수확을 얻게 된 것이다.




(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행복 )


"행복이 좋은 기분과 만족, 그 정도라면 그걸 가능케 하는 것들이 도처에 널려 있음을 알게 된다. 예컨대 기분을 좋게 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내 삶에 만족을 더 해주는 것이라면 아이의 웃음소리, 여름밤의 치맥, 시원한 산들바람, 멋진 문장들, 상사의 예상 밖의 유머, 잘 마른빨래 냄새, 이적의 <걱정 말아요 그대>, 보너스, 모처럼의 낮잠, 여행, 무라카미 하루키, 미세먼지 없는 청명한 날씨 등등 그 리스트에 끝이 없다. 이것들은 다 우리 일상에 있는 것들이다. 행복은 철저하게 일상적이다." <굿라이프> -최인철-


행복전도사 최인철 교수도 말하지 않는가. 행복이란 철저히 일상적이다. 책에서 위의 문구를 읽으면서 ‘아~ 그래 그렇지. 내 주변에도 수없이 많은 즐거움들이 널려 있지’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상적’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없는 막막함을 느꼈다. 일상적인 것은 우리는 그냥 스쳐 지나갈 뿐이다. 음미하지 못하고.


그래서 적어야 한다. 위의 최인철 교수가 목록을 나열한 것처럼 나도 매일 나를 즐겁게 한 것들을 나열한다. 아마 시간이 부족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적다 보면 나의 하루가 행복했음이 보인다. 이 좋은걸 안 할 수가 없다. 행복해지려면 <오늘 나를 즐겁게 한 것들>을 꾸준히 적으려고 한다.




(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


나는 행복을 위하여 나의 시간을 갖기 위해 애썼다. 퇴사 후 아이들과 함께 있어보니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 자체가 행복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았다. 학생이 되어버린 아이들. 꼬맹이었을 때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누렸던 행복과는 또 다른 감동이다.


중학생인 딸아이는 혼자서도 뭐든 잘하는, 성격이 쏘~쿨한 아이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뭔가(공부이리라 생각하는 게 엄마의 정신건강에 좋다)를 한다. 그리고 혼자 주방에서 시리얼과 같은 아침을 챙겨 먹는다. 요리를 좋아하는 딸아이는 혼자서 점심도 뚝딱뚝딱 잘 만들어 먹는다. 딸아이와 나누는 대화는 언제나 즐겁다. 딸의 생각은 언제나 독창적이고 참신하다. 어릴 때부터 이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던 딸아이는 내 눈에 세상에서 제일 이쁜 아이이다. 겉으로 표현하면 에게 혼나지만, 나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며 혼자 흐뭇해한다.


아침에 교복이나 학교 체육복을 챙겨 입은 모습은 또 다른 감동이다. 장난기 많았던,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던, 흥이 많아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있질 않던 우리 딸아이가 중학생이 된 게 정말 감동이다. 회사를 다닐 때는, 아이들의 등하교 모습을 보지 못했다. 항상 내가 제일 먼저 출근을 했기에.. 지금은 아이들의 등교할 때의 모습,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들을 하나하나 내 눈으로 직접 다 본다. 아니 감상한다. 나에게 이런 시간이 주어진 게 얼마나 천만다행인지 모르겠다. 직장을 다녔다면 평생 내 눈에 담지 못했을 일상이다.


초등학생인 아들은 의젓하고 배려심이 많은 매우 귀여운 아이이다. 안방에서 나와 같이 자는 우리 아들은 요즘 키가 쑥쑥 큰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는 키 번호가 3번 혹은 4번이었는데, 이번에는 키 번호가 11번이란다. 1년 새 10센티 이상을 자랐다. 물론 키는 자라지만 나에게는 영락없는 귀여운 막내다. 자는 모습이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은 모습으로 일어나 까치집을 머리에 이고 뿌루퉁한 모습으로 식탁에 앉은 모습이 귀엽다. 아들이 밥을 참 잘 먹는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잘 자라나 보다. 영어학원 가기 전 정확히 1시간 전에는 영어 숙제를 한다. 칼 같다. 유튜브를 보다가 월수금 3시만 되면 영어 숙제를 시작한다. 가끔 모르는 단어는 나에게 물어본다. 직장을 다닐 때, 가끔 아들이 전화하거나 카톡으로 화면을 찍어보내며 나에게 문제를 물어오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업무 중이었던 나는 항상 마음이 조급하고 조심스러웠고, 아들에게 미안했었다. 지금, 내가 옆에서 아이의 어려운 문제를 같이 봐줄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감사하다. 오후나 저녁에는 아들의 수학을 직접 챙긴다. 직장을 다닐 때는 너무도 들쑥날쑥하게 봐줬지만 지금은 매일 한다. 아들의 생활습관이 조금씩 안정되게 자리 잡아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오늘은 중1 학교 수학 문제집을 푸는데, 뚝딱 금방 풀어낸다. 유튜브 볼 시간을 좀 더 확보했다며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과 공간 자체가 나에게 행복이다. 내 삶의 행복이다. 아이들이 학생인 지금에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 내 삶에 가장 가치 있고 행복한 시간을 다시 찾았다. 퇴사 이후 적어도 5년간은 아이들과 함께하며 내 삶을 행복으로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나만을 시간을 가짐으로써 누릴 수 있는 행복은 조금 미뤄두어도 혹은 짬짬이 해도 전혀 지장이 없다. 지금은 오롯이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내 삶을 행복을 찾고자 한다. 지금으로부터 20년 후에 지금 이 시기가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퇴사를 하면서까지 얻고자 했던 것은 바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나의 퇴사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책 <돈의 심리학>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자녀들은 당신의 돈을 원하는 게 아니라 당신을 원한다. 이 둘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특히 자녀들은 당신이 곁에 있기를 바란다” 나의 퇴사 결정에 쐐기를 박았던, 그리고 퇴사를 결정하고 나를 가장 설레게 만든 문장이다. 그리고 그 결정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감사한 문장이다.




( 가족 여행하면서 느끼는 즐거움 목록은 무궁무진하다 )


- 자동차 뒷좌석 : 남편이 운전하는 차의 뒷좌석이 무척 편하다. 사장님 자리가 바로 내 자리.ㅋㅋ 높낮이 조절이 되면서 머리받침이 푹신하다. 남편은 운전하는 재미를 가족들은 편안함을 느끼며 즐거운 여행을 시작한다. 가족 모두가 만족스러운 상태가 되는 순간만큼 행복한 시간은 없다.


- 곤지암리조트 가족여행 : 오랜만에 가족여행을 왔다. 2박 3일로 짧은 여행이고, 서울 근교에 있는 곤지암 리조트에 머무른다. 거창하지 않은 그냥 편안한 여행이다. 딸이 주 7일 학원을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족여행은 사라졌다. 다행히 영수 학원의 방학이 겹친 일정으로 간신히 여행을 왔다.


- 가족 탁구 : 가족 4명이서 함께 탁구 했던 때가 언제인가??? 곤지암 리조트에서 가족들과 함께 탁구를 친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활동은 최고다!


- 맛있는 점심, <담화> : 정말 맛있다! 정갈하고 맛있는 음식을 가족과 함께 먹으니 이 순간이 최고로 행복한 순간이네. 보리새우 미나리전, 명태 회비 빔 냉면, 봉평메밀 물냉명, 돈목살 김치찌개, 소고기 계란 비빔밥, 떡갈비. 우왕~ 다 맛있다^^


- <새벽의 재발견 36기> 첫날의 설렘 : <새벽의 재발견 36기>를 시작하고 첫날이다. 여행 중이긴 하지만 계획한 시간인 5시 20분에 벌떡 일어났다. '굿모닝' 미션을 올리고 책을 읽는다. 모처럼 새벽 독서는 나를 행복하게 한다. <새벽의 재발견>을 통해, 앞으로도 주~욱 새벽 기상을 할 수 있겠구나라는 기대로 설렌다.


- <불편한 편의점> 완독 : 손에서 뗄 수 없었던 책이다. 재미와 감동이 완벽했던 책. 내 인생 모토인 '소통'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책. 미련 곰탱이 '독고'를 만난 행운이 나를 즐겁게 했다.


- 잠든 의 얼굴 : 보다 일찍 일어난 덕에 오랜만에 잠든 의 얼굴을 관찰해본다.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면서 잠든 모습이 10년 전 의 얼굴을 보는 것 같다. 조그마한 얼굴, 뽀송뽀송한 피부, 살짝 벌어진 입과 도톰한 입술. 이 세상에서 제일 귀엽고 사랑스러운 의 얼굴이다. 바라보는 것으로로 찬란한다. 흐뭇한 마음이 벅차오른다.


-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 화담숲 산책 : 남편과 둘이서 화담숲 산책을 한다. 비가 오다가다 한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산책길의 운치를 더한다. 9시 개장과 동시에 들어와서 그런지 방문객도 몇 없다. 이 여유로운 시간과 공간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이 순간이 너무도 행복하다.


- 안젤로니아 : 화담숲의 스팟 하나하나 이쁘지 않은 곳이 없다. 그중 하나만 떠올려 보면.. 작은 꽃 '안젤로니아'가 생각난다. 낮은 꽃대에 옹기종기 분홍과 보라색 작은 꽃들을 한껏 머금은 듯한 수수하면서 화려한 아름다움. 말로 묘사하기 힘들다. 머릿속에 고이 간직해 본다.


- 남편~ 모든 게 다 고마워 : 결혼 20년 차. 항상 나에게 가족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는 남편. 부족했던 내가 남편을 만나 최고의 삶을 살고 있는 듯하다. 아직도 산책길에 내 손을 잡아주고, 내 허리를 감싸 안아주는 남편은 아직도 나를 설레게 한다. '남편~' 살포시 불러본다. 그리고 소박하게 툭 건넨다. '모든 게 다 고마워~'


그냥 행복하다. 이런 소소한 분위기. 그리고 충만한 느낌! 기록을 해 두었기에 다시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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