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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톡톡부부 Jul 09. 2020

30. 가끔은 따로 여행

흐바르섬, 크로아티아

부부세계여행은 장점은 정말 많은데 단점을 꼽으라면 딱 한 가지가 바로 떠오른다. 바로 화장실 가는 시간을 빼고 24시간을 함께 한다는 점이다. 여행 출발 전에는 각자의 회사 생활로 출퇴근 시간도 다르고, 남편은 주말에 출근하는 직업 특성상 대화시간조차 많이 가질 수 없었다. 여행은 그때와 정 반대의 상황이다. 같이 자고, 같이 먹고, 같이 돌아다니고 이 모든 걸 함께 한다. 여행 초반에는 보고 싶은 것도 많았고 가고 싶은 곳도 많아서 하루를 같이 보내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부부가 함께 여행을 한다면 응당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행 7개월 차, 여행에도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 물론 외국인들이 바닷가에 하루 종일 누워 책을 읽거나 명상에 빠져 있는 정도의 여유까지 갈 순 없었다. 그저 하루 종일 남들이 가는 곳을 샅샅이 찾아 리스트업 해서 모든 곳을 다 다니는 게 아니라 그중 우리가 좋아할 만한 곳, 끌리는 곳을 선택해 시간을 집중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시간적 여유도 덩달아 가질 수 있었다.

유럽에서 리스카를 빌리고 캠핑여행을 다녔다. 약 4개월간 차를 빌렸는데 쉥겐 조약에 어긋나지 않게 여행하기 위해 1개월간 크로아티아에서 머물기로 했다. 한 도시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한없이 여유로워졌다. 아니, 한없이 나태해졌다. 크로아티아는 에어비앤비 숙박이 캠핑장 가격과 큰 차이가 없어서 집 전체로 렌트를 하고 지냈다. 넓고 편안한 집에 있다 보니, 집순이 집돌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동안 쉼 없이 달려온 여행에 속도를 늦추고 싶었으리라. 이 생활이 지속된다면 앞으로의 여행에도 차질이 생길 것 같았다.



크로아티아 흐바르라는 작은 섬에서는 요새를 올라가는 것 말고는 큰 일정이 없었다. 도착한 첫날, 늦게 요새에 올라갔지만 입장을 하지 못했다. 이미 한번 다녀왔기에 점심을 먹고 천천히 가도 되었다. 하지만 아침 일찍 눈을 뜬 나는 해가 바다를 반짝이게 비추고 주황 지붕이 빼곡한 흐바르 도시의 전경을 빨리 보고 싶었다. 잠들어있는 남편에게 메시지를 남겨두고,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혼자 여행을 시작했다. 유심도 없던 내가 유일하게 의지할 곳은 구글 지도였다. 길치인 내가 구글 지도를 본다고 해서 단번에 길을 찾진 못하겠지만, 막다른 길이 나오면 조금 돌아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움직였다. 항상 남편의 네비만 믿고 움직였던 내가 직접 길을 찾아 원하는 목적지까지 가는 건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해주었다.



스플리트 전망대

사실 남편과 따로 여행을 한 건 이날이 처음이 아니다. 흐바르에 오기 전, 스플리트에서 벤치에 앉아 바다를 한참 바라보다가 갑자기 전망대에 오르고 싶었다. 꽃보다 누나에 출연하신 김희애 님처럼 계단을 오르고 올라 스플리트 구시가지를 두 눈에 담고 싶었다. 이미 전날에 남편과 중간지점까지 올라갔다가 생각보다 뷰가 별로라며 금방 내려왔었다. 나는 조금 더 올라가 보고 싶었는데,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 아쉽게 내려와야만 했다. 그 기억이 떠올라 남편에게 한번 더 가보자고 제안했다. 남편이 가기 싫은 눈치를 비추자 혼자서라도 오르고 싶었다. 나의 제안에 남편은 여기 앉아 기다리겠다고 한다. 딱 1시간만 서로의 시간을 갖자고 하고 계단을 올랐다. 매일 함께한 남편이 곁에 없다는 느낌에 순간 불안감이 엄습했다. 낯선 땅, 낯선 도시에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거리를 자유롭게 걷고 있는 내가 상당히 낯설었기 때문이다. 1시간 동안 말없이 스플리트의 언덕을 오르며 함께할 때와는 또 다른 감정이 일렁였다. 머리를 흩날리도록 스치는 바람과 나를 비추는 햇빛, 드넓게 펼쳐진 바다와 구시가지의 모습이 오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때의 좋은 기억이 다시 한번 홀로 떠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흐바르를 천천히 걷는 걸음 하나에 길에 핀 꽃을 구경하기도 하고 라벤다 향에 이끌려 기념품샵으로 향하기도 했다. 어제 올라갔던 방향이 아닌 다른 길로 돌아 올라가니 흐바르의 또 다른 전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세상에는 길이 정말 많다는 걸. 지름길만이 길이 아니라는 걸. 혼자 다녀보며 주변을 느끼며 알게 된 사실이다. 그리고 나에게 더욱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어느 포인트에서 걸음을 멈추는지 알게 되더라. 사진 한 장을 담더라도 나만의 느낌을 살려 지금의 감정을 고스란히 사진 속에 담아둔다. 누군가와 함께 다녔다면 무의식 중에 찍은 수많은 사진 중에 베스트 컷을 찾느라 시간을 보냈을 테다. 그렇게 조금씩 여행 속에서 나를 찾는 연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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