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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탱볼에세이 Jun 25. 2023

함부르크 4일 차: 추억여행

아몬드쿠헨, 햄버거, 커리부어스트

뚤루즈에서 파리를 거쳐 함부르크에 갔다. 대학동기인 정민언니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함부르크는 8년 전 독일 살았을 때 가봤기에 낯설진 않았다. 언니가 마중 나와줘서 오히려 반가웠다. 도착시간이 평일 아침 9시 반으로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맞아주다니 감동이다.


언니는 대학시절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미니쿠퍼를 사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언니가 미니쿠퍼를 살 거라고 믿었다. 실제로 언니는 독일에서 4년 넘게 일하며 최근 소원대로 미니쿠퍼를 자가용으로 맞이했다. 그런 차를 타본다는 게 감개무량했다.


그녀의 차로 여기저기를 누볐다. 이동의 편의성을 톡톡히 누렸다. 그간 뚜벅이로 배낭여행을 하는 고단함을 친구들 방문하면서 잊었다. 왜냐면 다들 자가용을 운전했기 때문이다. 운전을 좋아하고 누구든 안전하게 태울 수 있는 여유가 멋졌다. 난 아직 서툴러서 돌아가면 운전 많이 해야지. 운전이 필요한 순간에 유용하게 써먹어보리라.


언니가 차가 있는 덕분에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독일친구 나딘도 만났다. 사실 나딘은 연락을 미리 못해서 못 만날 줄 알았는데, 운 좋게 바로 연락이 닿았고 마침 시간이 되어 만날 수 있었다. 왕복 4시간 운전해 준 정민언니에게 고맙다.


나딘은 브레멘 근처 올덴부르크에서 독어교육학을 박사 중이었다. 한국인 어머니를 둔 그녀는 부산으로 1년 교환학생을 보냈다. 처음에 독일에서 만났을 땐 한국어를 전혀 못했는데 이제는 유창한 한국어로 소통에 지장이 없더라. 여전히 어눌한 독일어를 구사하는 나이기에 친구의 성장이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나딘도 테라스가 멋진 꼭대기 층에서 모자람 없이 다 꾸몄더라. 본인의 취향으로 잘 꾸며진 남의 집 구경이 이렇게 재밌는 건 줄 이번에 친구네 방문하고서야 알았다. 나도 한국 가면 내 취향으로 나만의 공간을 가꿀 욕심이 불타올랐다. 친구들 덕분에 돌아가서 할 일이 많아졌다네.


사실 이번에 프랑스나 독일을 여행할 계획은 전혀 없었다. 이미 프랑스 접경지역의 독일에서 1년을 지내보았기에 가보지 않은 나라 위주로 더 구경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유로가 많이 비싸져서 이미 내가 잘 아는 순례길을 택했고, 계획과 다르게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여행 막바지엔 새로운 것을 더 많이 담는 것보다는 친한 친구네 놀러 가서 이야기 나누고 싶더라.


다행히 친구들이 내게 공간을 내어주고 시간을 내고 나랑 놀아주었다. 그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 걸 알기 때문에 정말 고마워서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 받은 행복을 꼭 언젠가 크게 돌려주리라.


독일에선 아몬드쿠헨, 햄버거, 커리부어스트를 먹으며 추억여행을 했다. 이미 아는 맛이라 더 행복했달까.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니. 6개월의 긴 여행에서 일상의 소중함을 단단히 배웠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여행이 끝나서 아쉽다. 다시 돌아간 일상 속에서 단단한 하루를 보낼 생각에 설렌다. 낯설고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한국을 살아봐야지.


일단 떠오르는 계획은 이러하다.

1) 엄마랑 성곽길 걷기

2) 한강 걸어서 안 가본 동네까지 가보기

3) 따릉이 2시간 권 끊어서 하루종일 타기

4) 전동킥보드 타보기(한 번도 안 타봄)

5) 석파정 미술관 전시 보러 가기

6) 재봉틀 클래스 수강하기

7) 브런치북 엮어서 발행하기

8) 여행영상 편집해서 유튜브 올리기


P.S.

1.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백수라서 오히려 회사 다닐 때보다 더 바쁜 것 같다.


2. 독일인들도 공짜는 참 좋아한다.

1) 백화점에 갔는데 MCM에서 텀블러에 커피를 주더라. 평일 낮인데도 길게 줄 서있는 걸 보니 다들 공짜커피에 진심이었다. 물론 우리도 줄 기다려서 멤버십 가입하고 마심. 가입할 때 전화번호 안 받고 메일주소만 간단하게 받는 게 신기했다. 인증번호도 안 받고 유효한 이메일 아니면 말짱 도루묵 아닌가. 이래서 마케팅되겠어? 싶지만 튼튼한 유리텀블러에 맛있는 커피까지 담아주니 홀려버림. MCM 브랜드에 대한 인상이 좋아졌다. 호감도 상승. 이제 저 텀블러를 쓸 때마다 브랜드 충성도가 올라갈 듯.

2) 언니네 짐 정리 도와줬다.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은 나눔을 했다. 밖에 내놓은 지 3시간 만에 다 가져갔다. 유학할 때도 이런 문화에 참 도움을 많이 얻고 그만큼 나눴던 추억이 떠올랐다.

3) 햄버거집에서 햄버거 먹고 계산하고 나오는데 사과 가져가란다. 햄버거랑 사과랑 무슨 상관? 인가 싶은데 일단 공짜니 다들 하나씩 챙겼다. 학교 다닐 때 분식집에서 나갈 때 요구르트 주던 때가 생각났다.


3. 언니 집 정리 도와주면서 잠자고 있던 정리 본능이 깨어났다. 우리 둘 다 신박한 정리의 굉장한 애청자라 반가웠다. 정리하면서 깨끗해져 가는 모습을 보니까 나 은근히 정리하는 거 좋아하는구나 싶더라. 얼른 내 짐도 잘 정리해야지. 정리의 즐거움을 드디어 알다니 이번 여행 최고의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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