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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탱볼에세이 Aug 18. 2023

맥시멀리스트의 최후

끝이 없는 정리의 늪

 완주로 이사 온 지 어언 한 달이 되었다. 그간 많은 시간적 여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삿짐을 모두 정리하지 못했다. 민망하지만 그동안 이삿짐 정리를 했으며 지금도 정리 중이며 앞으로 꽤 정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짐정리가 오래 걸리는 가장 큰 이유는 물건의 양이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거기다 짐들이 짧게는 1달 길게는 1년의 간격을 두고 여러 차례 옮겨와서 어느 곳에 뭐가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 함정. 일단 눈에 보이는 크고 작은 박스들을 하나씩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풀어 차근차근 정리 중이다.


 사실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소문난 맥시멀리스트다.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나 실용적이고 귀여운 것을 좋아해서 구매를 못 참는 순간들이 많다. 특히 식기류와 문구류는 소품샵을 당장 차려도 될 정도로 상당하다. 어차피 몸이 하나라 물건도 한 개면 충분한데 말이다. 이번 짐정리를 통해서야 내가 가진 물건의 규모가 나의 필요이상으로 과도한 것을 제대로 인지했음을 고백한다.  


 마음에 들면 고민할 시간에 빠르게 구매해 왔다. 순간순간 놓치고 싶지 않았던 마음들이 모여있달까. 짐을 하나씩 펼쳐보는 과정 속에서 내가 20대를 살아오는 동안 어떤 것에 관심을 두고 살아왔는지 천천히 곱씹어보는 기회였다.


  주변에 아직도 이삿짐을 정리 중이란 사실을 터놓았더니 어차피 정리는 평생 하는 거라며 한 친구는 3년 정도 기간을 잡고 하는 중이란다. 이 말 한마디가 어찌나 마음의 위안을 안겨주던지. 이삿짐 정리 그거 나만 어려운 건 아니었구나 하고.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것 늦더라도 제대로 정리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앞으론 가지고 있는 물건의 쓸모를 제대로 활용할 작정이다. 물론 짐들을 비슷한 종류로 분류하여 한데 모아두고, 물건들의 위치와 배치 쉽게 알 수 있도록 라벨링 하는 것이 관건인 셈. 생각한대로 실행하고 싶은데 라벨링 기계가 어딨는 지 모르겠다. 수많은 짐 속에서 라벨링 기계가 어서 등장하길 비나이다. 비나이다. 두 손 모아 바라는 중이다.


 아직도 정리해야 할 짐들이 많지만 조금씩 물건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에 뿌듯하다. 내가 노력한 대로 의도한 결괏값을 가져다주는 것이 청소와 정리만큼 확실한 게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말엔 집안일을 해보는 것이 어떨지! 시작이 어렵지 하고 나면 분명 큰 만족감을 가져다줄 것이다.

*별안간 알리익스프레스에서 구매한 태양에너지등이 오늘 도착했다. 가입특가로 100원에 사서 유독 기쁘다. 누군가가 리뷰에서 말하길 태양열 기능은 게임체인저라더라. 열심히 낮에 햇볓을 쐬어주었을 뿐인데, 밤에 은은하게 빛이 났다. 낮빛이 밤빛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 모습을 그저 지켜본 것 뿐이나 대단히 기특한 감정이 피어났다. 든든한 반려등을 얻은 기분이랄까. 밤은 길고 어두우니 반려등이 없다면 한번 고려해보셔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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