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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탱볼에세이 Aug 22. 2023

리보다 면이 유명해지는 세상

흥행보증수표

 동생이 시골에 놀러 왔다. 동생이 시골에 놀러 오는 게 흔한 일이 아니기에 들떴다. 동생의 방문을 구실 삼아 내가 집 앞 짜장면집에 가자고 했다. 아뿔싸! 브레이크타임이더라. 브레이크타임에 걸려서 안 그래도 점심을 못 먹어서 고픈 배가 더 고파졌다.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아빠, 엄마, 나, 동생 네 명이 식당으로 향했다. 쟁반짜장과 탕수육 대자를 주문했다. 아무도 생일은 아니었지만, 누군가의 생일 같은 푸짐한 식사였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엄마는 마을회관을 가신다고 했다. 나도 엄마를 따라갔다. 동네 분들이 모여서 정희이모가 수확한 깻잎을 다듬고 계셨다. 엄청난 양에 놀랐다. 배가 불렀는데도 향긋한 깻잎내음을 맡으니 자동으로 침이 고였다. 여섯 명이서 끝이 없을 거 같은 깻잎 다듬기도 끝이 나더라.


 깻잎을 다듬다 보니 손에 빨갛게 물이 들었다. 봉숭아만 손에 물드는 줄 알았는데, 깻잎에도 물들 수 있구나 신기했다. 어렸을 때 할머니랑 열심히 봉숭아 물들이던 추억도 떠올랐다. 시골에서는 봉숭아 물들이는 어른들이 여전히 있다. 정희이모네 회사엔 아저씨들이 먼저 손발에 봉숭아를 물들여오셔서 자랑하신다고 한다. 남자들이 봉숭아 물들이기에 진심이신 걸 보니 제법 귀엽게 느껴졌다.


 깻잎을 다듬으며 오늘 간 짜장면집 이름이 바뀐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마을에 유명한 식당이 있는데, 마을이름을 식당 상표로 등록해서 이웃식당들에게 이름을 바꾸라고 했단다. 한 달 사이에 마을이름이 들어간 많은 식당들이 간판을 바꾼 것에 사연이 있었던 것. 다들 식당이름에서 마을(리) 이름을 빼거나 면 이름을 붙였다. 이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식당주인이 바뀌었구나 생각하기도 한다고.


 지명을 개인 식당의 상표로 등록해서 조용했던 마을이 시끄러워지는 일들이 우리의 일만은 아니었다. 스스로 창작한 이름도 아니면서, 동네이름을 개인소유하려는 식당들의 마음이 야속했다.


 이참에 리보다 면이 유명해지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동네 마을이름 들어간 업장의 이름이 우르르 넓은 범위의 마을이름으로 바뀌는 것 같다면, 그 속도 들여다보시라. 이런 숨겨진 이야기가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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