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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탱볼에세이 Aug 28. 2023

8년 차 초보운전자의 사연

고3 수험생모드

대학교 4학년 졸업 전 면허 취득은 하나의 숙제였다. 바로 운전이 필요한 특별한 일이나 자차를 소유할 계획은 없었지만 말이다. 하나의 어른이 되어가는 관문이었달까. 기능시험이 그해를 넘기면 어려워진다는 소식이 나의 학원등록을 부추겼다.


나름 부지런하게 아침 6시 수업을 수강했다. 이른 아침시간만 자리가 남았을 만큼 면허학원의 인기는 치열했음을 말해준다. 다행히 집 근처에 면허학원이 있었고, 깜깜한 새벽에 언덕너머 학원을 올랐던 기억이 있다. 큰돈 내고 짧은 시간 안에 운전을 익혀야 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따로 차가 없어서 학원이 아니면 운전해 볼 기회가 없기에 더 막막했달까.


운전시험을 보려면 길 외우는 것도 큰 일이다. 영도구청부터 해양대, 고신대 일대가 시험코스였다. 운전을 배운 덕분에 부산 영도는 내 진짜 두 번째 고향이 되었다. 마치 사과는 애플처럼 머릿속에 아직도 길이 박혀있다. 온 신경을 집중해서 이쪽저쪽 잘 주시하면서 목숨 걸고(?) 길을 누벼보았기 때문이니라.


필기시험은 한 번에 통과했다. 처음을 가뿐히 넘기고 우쭐해졌던 걸까. 한 번에 해내야 한다는 욕심이 너무 컸던 걸까. 첫 기능, 도로주행시험은 시동도 못 걸어보고 불합격을 했다. 연습할 땐 한 번도 틀린 적 없었기에 더욱 허탈한 심정이었다. 얼마나 허탈했던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실패하는 것이 두렵지만 한번 미끄러져봤기에 더 우뚝 일어설 수 있는 법. 뼈저린 첫 번째 탈락이 사소한 디테일을 잘 챙기게 만들어주었다. 예를 들면 안전벨트 매기 같은 동작들 말이다. 두 번째 시도만에 면허를 취득할 수 있었다.


면허가 생기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 같았다. 막상 면허를 취득하고서도 내 생활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여전히 버스 타고 걸어 다니는 뚜벅이었다. 그냥 신분증이 주민등록증 이외에 하나 더 생겼을 뿐. 그리고 이력서 자격증 란에 든든한 한 줄 정도?


4년 전쯤 삼촌이 모닝을 물려주셔서 자가용이 생겼다. 장롱면허였지만 친오빠가 차근차근 가르쳐준 덕분에 점차 운전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갔다. 여전히 걸어 다니고 자전거나 버스 타고 다니는 생활이 익숙했다. 주말에 특별한 약속이 있지 않고서는 차를 몰지 않았고 장거리운전이나 혼자서 운전은 시도하지 않았다.


최근까지도 누군가 내 운전을 조언할 사람이 있어야 운전을 했다. 옆에서 꾸중을 듣더라도 위험감지는 혼자보다 둘이 낫지 않나. 혼자 운전하면 괜히 사고 날까 봐 불안했다. 조금씩 단거리를 똑같은 경로로 운전하며 익혀갔다.


서울은 대중교통이 너무 잘 되어있어서 운전을 거의 안 했다. 서울 사는 2년 동안 운전한 횟수는 열 손가락 안에 꼽는다. 주차공간이 넉넉한 곳은 집을 고른 1순위 도건이었다. 따릉이정거장도 있어서 차는 주차장에 고이 모셔두고, 자전거를 운전을 즐긴 것이 함정이지만.


시골에 오니 다 멀어서 자차가 필수더라. 불가피한 상황 덕분에 혼자서 운전하는 시간이 늘었다. 여유로운 도로사정 덕분에 조금 여유로운 마음으로 운전에 적응 중이다. 여전히 주차는 어려워서 꼭 두 칸 이상이 빈 곳에 주차하지만 말이다. 다행히 시골은 주차장이 넓어서 천만다행이라는 사실.


이 기나긴 사연을 적게 된 건 지난 주말에 운전해서 밀양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친구들이랑 오랜만에 만나서 물놀이하고 고기를 구워 먹었다. 눈치게임에 성공했는지 펜션에 우리밖에 손님이 없어서 더 즐거웠음이 분명하다.


초보운전자 혼자서 장거리 운전이라니. 무서웠다. 운전면허를 취득한 지 8년이 되어가지만 한 번도 나 홀로 장거리운전을 시도해보지 않아서 더 무서웠다. 전주에서 밀양을 바로 가는 직행버스나 기차가 있었다면 운전을 안 했을 거다.


그런 쉬운 교통편은 없었고 직접 자차로 가는 것이 남은 선택지였다. 운전을 결심했지만 가기 전 며칠 동안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에 잠들었다. 노심초사했었다는 말도 무사히 다녀온 지금에서야 꺼내본다.


왕복 7시간을 운전하고, 휴게소에서 주유도 꼬박꼬박 챙겨서 했다. 혼자서 모든 과정을 안전하게 책임지는 일. 그간 나보다 운전을 잘하는 사람들에게 잔뜩 기대 왔다는 걸 깨닫게 됐다.


흐트러지는 순간 바로 사고다 싶어서 바짝 긴장해 있던 시간들. 느리고 빠르기를 내 발로 조절하던 긴박한 순간들. 흡사 고3 수험생모드였다. 더 이상 장롱면허에 순응해서는 안된단 생각이 들었다.


조수석에서 편안하게 남들이 운전해 주는 걸 누려오며 차멀미로 쉽게 잠들었던 지난 날들. 스스로 장거리를 운전을 해보고서야 그동안 든든하게 운전대를 책임져준 분들이 어찌나 감사하던지. 너무 당연하게 받아온 것 같아 민망했다.


3시간 넘게 한껏 집중해서 운전에 성공하다니 독서실에서 책만 펴면 잠들던 내가 제법 어른이 된 것 같기도? 서울에서 부산까지 왕복운전하는 것이 버킷리스트인데 연습경기를 마친 기분이다. 첫 시도를 사고 없이 잘 다녀와서 두 번째 시도가 벌써 기대된달까.


 내 차 뒷편엔 언제나 노란색 삐약이 초보운전 스티커가 빛난다. 자랑스러운 8년 차 초보운전자로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도로를 누벼봐야지. 운전대를 당당히 차지해서 든든한 우리 가족 전용 택시운전사가 되어야지. 단단해져서 서울부터 부산까지, 외국 방방곡곡 가뿐하게 차로 누비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부릉부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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