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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탱볼에세이 Sep 07. 2023

고춧가루가 부른 나비효과

임실홍실

 정희이모가 고춧가루 사러 가신다고 해서 따라갔다. 고춧가루는 임실이 품질이 제일 좋다고 이미 입소문이 자자하다고. 최신식 기계로 깐깐하게 제조해서 쇳가루 없는 깨끗한 고춧가루라고 하니 솔깃했다.


찾아간 곳은 농업회사법인임실고추 앤 농산물가공판매장. 이모 아시는 분이 임실에 사셔서 고춧가루 판매장에서 만났다. 해마다 고춧가루는 빠르게 사는 게 신선한 고추로 만들어서 좋다고 하셨다.


임실분들은 이 동네 고춧가루가 얼마나 좋은 지 잘 알고 계시더라. 고춧가루의 장점을 하나둘씩 말씀해 주시는데 내 고장에 대한 자부심이 담뿍 느껴졌기 때문. 농민분들도 재배한 고추는 이곳에 맡기고, 고춧가루를 여기서 구매하신다고. 임실주민분들도 인정한 품질이란 사실에 아무 생각 없이 따라온 나도 고춧가루를 사고 싶어졌다.  


 고춧가루가 새빨간 것이 두 눈으로 보기에도 맛있어 보였다. 이미 많이 팔리고 몇 봉지 남아있지 않아서 다 팔리기 전에 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열된 제품은 보통맛과 매운맛이 있었다. 판매하시는 분께 매운맛 강도를 여쭤보니 너무 맵지 않고 얼큰한 맛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이모는 3kg짜리 매운맛 고춧가루를 다섯 봉지나 사셨다. 직접 찾아가서 고춧가루를 구매하니 고추 한 봉지마다 찹쌀 한 봉지를 서비스로 주시더라. 제품의 품질도 좋고, 정찰제라 피곤하게 가격네고를 하지 않아도 되니 편안했다. 많이 구매해서 양손은 무거웠지만 마음은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고춧가루 대쇼핑을 마치고 임실치즈마을에 갔다. 언덕에 올라가니 멀리 보이는 산 풍경이 멋졌다. 전체적으로 건물이 유럽풍이라 파주영어마을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가려고 한 카페가 휴무라 화덕피자로 선회했다.


마을 중심으로 내려오는 길에 스위스를 연상시키는 다리가 있었다. 예전에 어디서 본 듯한 친근감이 들었다. 동네분께 여쭤보니 스위스 루체른 카펠교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잠깐의 여행한 경험을 실무에 활용할 줄 아는 지혜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아직 나의 여행경험을 실무에 적용한 적은 없지만 내가 본 것이 어디서 유래되었는지 알아차릴 수 있어서 희망을 봤다. 그러니 앞으론 더 열심히 돌아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곳저곳 여행하며 눈에 담은 것이 차곡차곡 쌓여서 언젠가 내 분야에서도 접목할 수 있는 응용력이 생기길 바라면서 말이다.


 화덕피자가 두 판이나 있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내가 거의 한 판을 먹었다. 그동안 임실 치즈가 맛있다고는 들었는데 먹어볼 기회가 없었다. 먹어보니 치즈가 짜지 않고 고소하고 쫀득한 것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스위스에서 치즈가 유명해서 치즈를 많이 먹어보았는데 개인적으로 임실치즈가 더 맛있었다.


 이제라도 이 맛을 알아서 다행이다. 매운맛, 단맛, 짠맛. 요즘엔 자극적인 맛은 지천에 널렸다. 오히려 임실치즈는 자극적이지 않고 은은한 맛이 매력이다. 기본에 충실한 맛이 내 혀를 은근히 감싸서 자꾸 생각난다. 대단한 여운을 준다.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가까운 소중한 사람들이 절로 생각난다. 피자를 사랑해서 게임 닉네임마저 피자가 들어가는 동생을 서울에서 꼬셔서 데려오고 싶었다. 집 앞에 화덕피잣집이 있었다면 일주일에 한 번은 먹었을 것이 분명하다.


 정희이모의 또 다른 친구분도 임실에 사시는데 뒤늦게 합류하셨다. 이미 화덕피자를 양껏 먹어서 기분 좋게 배불렀지만 오랜만에 만난 소중한 인연에 소고기 식당으로 향했다. 소고기는 솜사탕처럼 입에서 살살 녹았다. 36개월 미만의 소만 잡아서 깊은 맛이 살아있다고 한다.


 배가 부른데도 여전히 맛있어서 젓가락질을 멈출 수 없었다. 공복에 갔는데 배가 땡땡하게 부르고 나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가득 배부른 상태를 싫어하는데도 너무 맛있는 음식들로 배를 채워서 그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고춧가루가 부른 나비효과는 상당했다. 마당발인 정희이모 덕분에 고춧가루부터 치즈, 한우까지 보물이 많은 동네 임실의 매력에 풍덩 빠진 하루였다. 누군가의 생일이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10월 6일부터 9일까지 4일간 임실 N치즈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임실에 갈 이유가 또 생겼다. 이쯤 되면 갈 이유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가야 하는 동네가 아닐까 한다.


최근에 본 드라마에서 "퀘렌시아"라는 단어를 배웠다. 심신이 지쳤을 때 편안하게 휴식과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공간. 나만의 퀘렌시아에 임실을 추가하겠다. 임실에서 치즈 만들기 체험할 날이 벌써 기다려진다. 이 설렘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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