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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탱볼에세이 Sep 04. 2023

낙엽을 쓸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쓱쓱쓱쓱

 마당 뒤편엔 엄청 큰 느티나무가 지키고 있다. 동네 사람들도 우리 집을 느티나무집 혹은 둥그나무집이라고 부를 정도로 거대하다. 이러한 연유로 마당엔 시도 때도 없이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 떨어지는 걸 보면 매일이 생일 같다. 생일축하 폭죽을 터뜨리고 남은 잔해처럼 마당이 낙엽으로 매번 난장판이 되어있으니. 폭죽은 예상대로 어김없이 터진다.


낙엽이 떨어지는 것은 자연의 이치일 뿐. 아무도 낙엽이 떨어지는 걸 막을 수 없다. 결국 누군가 떨어진 낙엽을 열심히 쓸어서 치워야 하는 것이다. 엄마가 제주도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 낙엽 쓸기를 인수인계 받았다.


 언제 마지막으로 낙엽을 쓸어보았더라. 사실 도시에 살면 낙엽을 직접 쓸 일이 많지 않다. 오랜만에 낙엽을 쓸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낙엽을 쓸어보았다. 고등학교 입학 첫날 친구들보다 1시간 일찍 등교한 것이 그 일의 시작이었다.


 새내기 국어선생님은 같은 날 부임하셔서 교내아침정화활동 담당을 맡게되셨다. 난 이른 아침 교실에 온 몇 안 되는 학생들 중 하나였다. 간곡한 선생님의 부탁에 빗자루를 쥐게 되었다. 그렇게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교내를 쓸고 다녔다.


 아침 한정 부지런을 떨기 좋아하는 습관 덕분에 교내 빗자루질은 하루로 끝나지 않았다. 고등학생 3년 내내 계속됐다. 학교에서 버스 타고도 40분 거리에 사는 집이 먼 학생이었지만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보다 일찍 교실에 도착해서 깨끗하게 주변을 정리하는 일은 스스로에게 극강의 상쾌함을 주었다.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아침에 제일 먼저 교실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키우는 강낭콩 화분에 물 한 컵을 듬뿍 주는 일. 아무도 관심 없던 일이었지만 그렇게 나는 내 부지런함을 이용해서 나를 키웠다.


 그렇다. 사실 이 글은 엄마가 제주도에 여행 간 3박 4일 동안 마당 낙엽 쓸기를 했다는 생색을 내기 위한 독서감상문 같은 것이다. 직접 일군 깨끗한 마당을 본 것은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더러워진 낙엽더미를 보면 파블로프의 개가 된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빗자루를 쥐게 되었으니 말이다. 쓱쓱쓱쓱. 낙엽을 쓸면 쓸수록 조금씩 깨끗해져 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목격할 수 있다. 물론 실시간으로 새로운 낙엽이 떨어지는 것도 확인한다는 것이 함정.


 빗질을 하면 핸드폰을 못 보기 때문에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시작하고 나면 그저 묵묵히 낙엽 쓸기에 집중한다. 땅바닥에 고개를 숙이고 눈에 보이는 낙엽들을 족족 쓸어 모아 쓰레받기에 담는 것이다. 큰 빗자루로 구석진 곳에 낙엽을 있는 힘껏 모은다. 작은 빗자루로 작은 낙엽을 섬세하게 모은다. 빗자루 돌려가며 낙엽을 쓸다 보면 핸드폰을 볼 시간이 없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나 혼자만의 갈등이 시작된다. 빗질을 이쪽저쪽 쓸어내듯 내 마음도 이래저래 저울질한다. 내가 어차피 낙엽을 쓸어도 또 떨어질 텐데 과연 이걸 계속 쓸어야 할까? 마당이 깨끗한 건 어느 한순간뿐이고 얼마나 깨끗한지 아무도 신경도 안 쓰는데 적당히 여기서 그만 멈출까? 이걸 열심히 한다고 돈이 벌리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낙엽 쓸기에 대한 사기가 송골송골 땀방울과 함께 뚝뚝 떨어진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낙엽 쓸기가 깨끗한 마당을 보고서 끝난다. 그때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스스로만 알아차리는 만족스러운 수준까지 해내야만 느낄 수 있는 그 기분. 형용할 수 없는 뿌듯함이 밀려온다. 그렇게 스스로를 인정해 준다.


낙엽을 쓸기 전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누군가가 묵묵하게 낙엽을 쓸었기 때문에 깨끗한 모습을 당연하게 볼 수 있었음을. 낙엽을 쓸고 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졌다. 이제 깔끔한 거리를 볼 때마다 나는 생각이 들 것이다. 누군가가 치열하게 깨끗하게 치운 아름다운 모습이구나 하고 감사함을 느낄 것이고.


 깨끗해진 마당은 한여름 밤의 꿈같다. 결국 또 낙엽이 떨어져 마당을 어지럽힐지라도 나는 꾸준히 낙엽을 쓸어볼 작정이다. 쌓여가는 낙엽처럼 내 생각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끝내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깨끗한 마당 같은 글을 남기겠다고 소망한다. 누군가는 내가 쓸어낸 깨끗한 마당을 보고 잠시동안 뿌듯해질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런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순간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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