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탱탱볼에세이 Oct 04. 2023

서울을 여행하는 방법

서울둘레길 걷기

 올 추석엔 가족들과 서울둘레길을 내리 걸었다. 서울둘레길은 흙길이 많았다. 이 길을 맨발로 걸으면 건강에 좋다고 소문이 났다고 한다. 실제로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꽤 있더라. 중간중간 주인을 기다리는 신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자연스레 맨발로 걸으면 어떤 기분일지 호기심이 생겼다. 가을이라 나무에서 떨어진 밤송이가 즐비해서 맨발로 걸으면 찔리지 않을까 싶었다. 난 장거리를 걸을 때마다 어김없이 생기는 물집을 피해보고자 발가락양말을 신었는데 이번에도 물집이 생겼다. 맨발이면 물집대신 다른 걸 얻을 수 있으려나.


 높은 곳에 올라갈 때마다 롯데타워가 한눈에 들어와서 랜드마크의 존재감을 실감했다. 알고 있는 건물이 롯데타워와 남산타워밖에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디서든 눈에 띄는 롯데타워를 보면서 세계최고를 보여주고 싶었던 롯데의 의지만큼은 내게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롯데타워를 등대 삼아 나의 존재감도 어떻게 하면 빛낼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지.


 안양천을 걸을 때 몇몇 다리 밑에 야쿠르트 아주머니들이 계셨다. 새롭게 떠오른 야쿠르트만의 판매전략인 걸까. 운동하다가 우연히 야구르트 아주머니를 마주하니 반가워서 하나 마셔볼까라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튀어 오르더라.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익숙한 존재를 만났을 때 내 지갑이 쉽게 열리는 걸 깨달았다. 조심해야겠다.


 곳곳에서 동네 어르신들의 다양한 취미를 관찰할 기회도 생겼다. 더글로리를 연상시키는 장기부터 사뿐한 움직임에 집중한 파크골프와 프리테니스까지. 절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활동들이었다. 결국 인간은 혼자보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에서 더 큰 행복감을 느끼나 보다.


 걷다 보니 도심 속 작은 텃밭부지들이 보였다. 작은 규모이지만 나름대로 구역마다 이름을 붙여주었더라. 같은 땅인데도 이름에 따라 각자의 개성이 두드러지는 모습이었다. 독특한 이름일수록 식물들이 더 쑥쑥 큰 느낌이기도 했고. 새로 더 많은 걸 가지려고 애쓰기보다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이름을 붙이고 아껴주는 게 어떨까.


 마지막 날엔 가족들 다 같이 따릉이를 타고 한강변을 달렸다. 유모차를 끌고 열심히 뛰어가시는 분이 눈에 띄었는데, 처음 보는 광경에 모르는 분이지만 열정과 에너지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알고 보니 그 유모차엔 강아지가 타있었다. 당연히 어린아이가 타고 있을거라 생각했던 나를 반성했다. 잘 알지도 모르면서 편견에 사로잡혀 내가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나 돌아보게 된 계기였다.


 엄마는 어렸을 때 자전거 타다가 언덕에서 넘어져서 트라우마가 생겼다. 그녀에게 자전거 타기는 줄곧 무서움 자체였다. 이번에 가족들이랑 다 같이 자전거 타보려고 용기를 냈다. 처음에 어린이자전거를 탔는데 금방 오히려 무릎이 아프고 뭔가 불편함을 느꼈다. 오빠는 그 부분을 빠르게 파악하고 자전거를 바꿔주었다. 그리곤 엄마에게 어른자전거로 갈 수 있도록 뒤에서 북돋아주었다.


 점차 본인의 균형감각을 찾은 엄마는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앞으로 앞으로 향했다. 어렸을 적 두려움을 엄마 스스로 극복한 순간이었다. 머리로 어려운 일도 몸으로 부딪히면 결국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 무엇보다 우리 가족 다섯 명 모두 같은 방향으로 자전거를 탈 수 있어 행복한 추억이 되었다.


서울에 살 땐 미처 몰랐던 것들이 시골로 이사 와서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다르게 보였다. 가본 곳인데도 낯설게 다가왔고 생각보다 내가 알고 있어도 안 가본 곳이 많더라. 이미 알고 있다는 착각에 그동안 가려져 보물 같은 면면을 그동안 놓쳤던 것은 아닐는지.


서울 둘레길 스탬프 지점을 통과할 때마다 뿌듯함을 느꼈다. 모든 도장을 다 찍고 마무리했을 때 보람찼지만 여정이 보상이란 말처럼 가족들과 걷는 모든 순간이 의미 있었다. 삼 남매가 다 모여서 그런지 어느 때보다도 엄마아빠의 미소를 많이 보았다. 자주 가족들과 새로운 길을 함께 걸어봐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생애 첫 향교 방문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