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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탱볼에세이 Oct 14. 2023

내 자전거가 있다는 것

어디든 내 속도로 갈 수 있다는 기회

 한때 출퇴근을 함께했던 자전거를 시골에 와서 다시 만났다. 오랫동안 방치해서 흙먼지가 쌓이고 체인도 녹슬고 바퀴에 바람도 쏙 빠졌더라. 팔팔하게 달리던 자전거의 모습은 철저히 과거형으로 남았다.


 토요일마다 자전거 수리가 진행된다는 희소식을 들었다. 엄마랑 아침운동하다가 삘 받아서 방치된 자전거의 흙먼지를 대충 닦았다. 차에 내 자전거를 싣고 바로 면내로 향했다. 무심했던 시간만큼 큰 고장이 났을까라는 약간의 걱정도 함께 실은 채로.    


 우선 자전거를 뒤집어서 바퀴에 바람을 넣어주셨다. 바로 문제점 하나가 발견되었다. 바로 뒷바퀴에 바퀴 바람 주입구를 고정시켜 주는 구찌가 없던 것. 구찌 없이 방치하면 주입구 뾰족한 부분이 바퀴 쪽으로 밀려들어가서 바퀴가 구멍이 나서 위험하다고. 이런 기본적인 자전거 지식도 없이 그동안 자전거를 탔다니 뜨끔했다.

 

 다행히 바퀴가 터지진 않았다. 빵빵하게 바람만 넣었을 뿐인데, 자전거는 금세 살아났다. 한 바퀴 타보면서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 보라 하셨다.


 내 자전거가 다시 굴러간다는 기쁨도 잠시. 기어가 7단에서 변속이 안 되는 새로운 난관에 봉착했다. 빠르게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 의사 선생님께 집도를 맡겼다.


 조심스럽게 살펴보시곤 기어 부분을 힘줘서 조절해 주고 체인에 윤활제를 뿌려주셨다. 고장 났던 기어가 마법처럼 스무스하게 바뀌더라. 7단은 이미 망가져서 7단까지는 올리지 말라고 여러 번 주의를 주셨다.


 습관이 무섭다고 타자마자 바로 7단을 올려버렸고 바로 고장 나서 민망했다. 체인과 바퀴 사이에서 끼워진 플라스틱 가드가 박살 나버렸더라. 플라스틱 그거 쓸모없다고 안심시켜 주시곤 빠르게 재조정해주셔서 자전거는 다시 달릴 수 있게 되었지만. 호호. 앞으로 7단은 절대 금지다.


 자전거 의사 선생님들은 사실 동네 주민분들이시다. 자원봉사로 매주 토요일마다 자전거 수리를 해주신다. 죽은 줄 알았던 자전거가 다시 살아난 건 사실 선한 마음으로 귀한 시간과 노력을 쏟아주신 결과인 것. 앞으론 자전거는 곱게 타고 인사는 우렁차게 해야지.     


 오늘 자전거 의사 선생님이 내 자전거를 차라고 불러주신 게 인상 깊었다. 유독 뇌리에 남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초년생 시절, 지하철과 버스로 출퇴근하는 게 싫었다. 각자 지각하지 않기 위해서 치열하게 몸을 만원 열차 또는 만원 버스에 밀어 넣어야 했기 때문이다. 답답한 마음에 30만 원을 주고 나만의 자가용을 샀다.


 그렇게 나는 자전거 타고 출퇴는 하는 사람이 되었다. 1시간 반 넘게 다닐 거리를 30분 안으로 줄여주는 기특한 친구였다. 힘든 회사생활도 내 자전거 덕분에 조금은 버틸 수 있었다.


 출근할 때 한 번. 퇴근할 때 한 번. 하루에 두 번씩 자전거를 타며 자유롭게 누볐다. 안양천 변을 따라 신호 없는 길로 나의 속도대로 페달을 밟으면 되었기에. 어쩌면 자전거를 타기 위해 회사를 다닌 걸지도 모르겠다. 비가 오는 날에도 비옷을 입고 장화를 신고 타고 다녔을 정도였으니.


 이직하고 회사의 위치가 집에서 점차 멀어지면서 나는 다시 대중교통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꽤 오랫동안 내 자전거를 잊고 살았다. 다시 달릴 수 있게 된 지금, 내 자전거가 있다는 것의 의미를 곱씹는다.


 무한한 기동력이 생긴다는 것. 따릉이 대여할 때와 달리 과금 걱정도 없다.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어디든 내 속도로 갈 수 있다는 기회. 잠시 잊고 있던 소중한 것을 되찾은 기분이다. 더 이상 체인이 녹슬지 않도록 내 자전거의 페달을 힘차게 밟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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