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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탱볼에세이 Oct 13. 2023

밭에서 캔 진짜 보물

주렁주렁의 기쁨

 엄마는 내가 오늘 아침에 일찍 일어나길 기대했다고 한다. 밭에 고구마를 캐러 갈 친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나랑 같이 고구마를 캐면 1시간 정도면 금방 캘 것 같다면서.


 우리 밭은 집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다. 농막에서 큰 갈고리, 큰 괭이, 낫, 작은 호미를 챙겨 고구마밭으로 향했다. 고구마가 두 줄만 심어져 있어서 엄마말대로 금방 끝날 것 같았다. 엄마는 낫으로 고구마 줄기를 걷어냈고, 나는 큰 갈고리로 고구마 뿌리 부분의 지반을 들썩였다.


 캐자마자 묵직한 고구마 2개가 등장했다. 엄마의 입꼬리가 활짝 올라갔다. 수확의 기쁨이 이런 걸까. 꽤 많은 고구마의 수확이 기대되는 시작이었다.


 기대와 달리 대부분 쭉정이만 나왔다. 가끔씩 보통의 고구마가 등장했지만 갈고리에 걸려 상처가 났다. 갈고리질 몇 번 했다고 에너지가 모자랐는지 머리가 핑 돌더라. 농사엔 특히 체력이 필요하구나 느낀 순간이다. 점심을 맛있게 먹으려고 아침도 안 먹고 왔는데 밥이라도 먹고 올 걸 싶었다.


 어렸을 때 체험학습 가면 고구마밭에서 호미질 몇 번에 줄줄이 고구마가 나왔던 즐거운 경험이 있다. 덕분에 우리 고구마밭도 그러지 않겠냐는 기대감이 있었다. 일확천금은 아니지만 보물을 캐겠다는 흑심을 품고 계속 땅을 들썩였다. 파면 팔수록 기대와 멀어짐을 느꼈다. 얻은 것은 땀과 흙, 그리고 갈고리에 패인 고구마였달까.


 동네 만순이모가 밭에 놀러 오셨다. 이모는 어제 고구마 두 줄기를 캤는데, 튼실한 고구마가 주렁주렁 달렸더라고 행복해하셨다. 같은 고구마 줄기인데 왜 우리 고구마는 망했나 싶더라. 이모 말씀에 고구마를 심을 때 잘 심어야 한다고 팁을 주셨다.


 이모의 손길로 작업에 속도가 붙었고 빠르게 고구마 두 줄을 다 캤다. 엄마는 처음에 고구마를 캐자마자 묵직한 두 개가 나와서 기뻤다고 한다. 고구마를 이렇게 많이 캐면, 누구에게 주면 좋을까 행복한 고민을 했다고. 엄마에게 있어서 수확은 주변에 나누고 싶은 마음을 캐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고구마 씨앗값도 안 나왔을 정도로 조금밖에 못 캤다. 열심히 캤는데도 고구마 한 박스가 안 나왔으니 올해 고구마농사는 대실패다. 초보농사꾼은 이렇게 경험으로 뼈아프게 배운다.


 이모는 땅콩도 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작년에 원룸에서 땅콩을 키웠었다. 덕분에 땅콩 풀이 어떻게 생겼는지 안다. 땅콩은 한 줄이라 금방 끝날 거 같더라.  


 고구마와 다르게 땅콩은 주렁주렁 열렸다. 우리 밭에서 주렁주렁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것에 감사했다. 흙에 파묻혀있던 땅콩다발이 과자 캐러멜땅콩과 비슷하단 생각을 하며 신나서 열심히 땅콩을 땄다.


 수확의 기쁨을 맛보면 힘들다는 생각이 사라진다. 금세 한 소쿠리 가득 땅콩이 담겼다. 꿩 대신 닭처럼, 생각했던 고구마 대신 생각지 못했던 땅콩을 얻었다.


 엄마는 수확한 고구마와 땅콩을 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활짝 올라간 엄마의 입꼬리를 보니, 내가 오늘 밭에서 캤던 건 단순히 고구마와 땅콩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더라. 밭에서 캔 진짜 보물은 엄마의 웃음이 아니었을까. 앞으로도 엄마의 보물 같은 웃음을 더 열심히 캐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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