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살기를 하기로 했으니 우선 바르샤바행 항공권을 끊었다.(항공권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는 걸로) 그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숙소를 예약할 차례. 우선 여러 가지로 따져 봤을 때 호스텔보다는 에어비앤비가 제일 괜찮았다. 그 이유는 짧은 여행이라면 잠시 잠만 자는 공간으로 호스텔에 머무는 게 여러모로 편하다. (개인적으로는 커튼이 달린 침대를 선호한다.)
하지만 도시를 옮겨 다니는 배낭여행이 아닌 한 달 동안 살아보는 듯한 이 여행엔 개인 공간이 필요하다. 되도록이면 '살아본다'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 그래서 호스텔은 마지막으로 차선책이라 생각했고 에어비앤비를 가입해 여러 숙소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폴란드에서 한 달 동안 내가 머물렀던 곳은 브로츠와프라는 도시다. 브로츠와프는 폴란드 남서부에 있는 도시로 독일의 드레스덴과 체코의 프라하와 가깝다. 인구는 2017년 기준으로 637,683명
매력적인 위치가 아닐 수 없다.
폴란드의 많은 도시들 중에서 브로츠와프를 선택했던 건 여러 이유가 있었다. 우선 2년 전에 폴란드 여행을 하면서 몇몇 도시를 방문했었는데 제일 마음에 들었던 도시가 브로츠와프였다.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Rynek이라는 컬러풀한 넓은 광장이었다.
2018년 2월
2020년 1월 5일
날씨 맑음
물론 여태껏 유럽여행을 하면서 항상 도시의 '광장'은 빼놓지 않고 갔다. 늘 처음에 도착하면 자유일정으로 광장을 첫 번째 일정으로 잡았다. 왜냐면 광장에 가면 그 도시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현지인들과 여행객들이 어우러진 광장은 언제나 늘 활기찼다. 그래서 나는 유럽의 광장을 좋아한다.
처음 브로츠와프 광장을 갔을 때 다른 광장들과 달리 그냥 마음에 들었다.
컬러풀하고 유니크한 건물들과 고풍스러운 성당. 어찌 보면 유럽의 어느 평범한 광장이기도 한데 나도 모르게 브로츠와프 매력에 빠졌나.
하지만 꿈에도 몰랐다. 브로츠와프에서 에어비앤비 숙소를 예약하는 게 그렇게나 힘들 줄
에어비앤비는 처음이라
에어비앤비를 들어갔다. 절차상 필요한 가입과 과정을 마치고 나서 브로츠와프 숙소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목적지 브로츠와프, 체크인 2019년 12월 23일, 체크아웃 2020년 1월 23일, 성인 1명 검색.
우선 요금부터 줄였다. 한 달이니까 어림잡아 50-60만 원 정도가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요금 기준을 70만 원까지 정했고 개인실 위주로 알아봤다. 브로츠와프는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보다는 숙소가 적은 편이었다. 가격과 위치 그리고 편의시설을 확인했을 때 몇몇 괜찮은 숙소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몰랐다. 에어비앤비 예약이 부킹닷컴이나 아고다 같은 OTA처럼 쉽지가 않다는 것을.
먼저 가격대가 저렴한 숙소를 예약하려고 했다. 그냥 간단하게 예약하기를 눌렀고 게스트가 지켜야 할 사항들에 대해 동의를 한 후 결제를 진행하려 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했다.
에어비앤비는 게스트와 호스트 직접적인 컨텍을 통해 예약을 하는 시스템이고 호스트들마다 예약을 수락하는 방식이 달랐다. 첫 번째 숙소 예약 방식은 호스트가 예약을 수락해야 예약이 확정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약을 확정받기 위해 호스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Dzien Dobry :D
I'm from South Korea. I made an early reservation. Is it possible to make a reservation? It's December, so I made a reservation very early because it looks like it's the peak season. I'll arrive at maybe before 6pm.
첫 번째 컨텍 실패
처음으로 정성스럽게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하루가 지나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렇다. 기간 만료로 예약이 자동으로 취소되었다. 첫 번째 에어비앤비 예약은 실패. 무척 아쉬웠다. 그 이유는 숙소가 매우 저렴했고 위치 또한 좋았기 때문이다. 역시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걸까.
그다음으로 두 번째 에어비앤비 숙소 예약 시도를 해봤다.
어쩐지 느낌이 싸한 두 번째 컨텍
답장이 오긴 왔으나 기약 없는 기다림과 함께 12월 초에 다시 연락을 달라고 하는데 그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다시 예약을 취소하는 수밖엔 답이 없었다. 두 번째 시도 또한 좋았으나 결론은 실패.
두 번째 시도까지 실패하니까 갑자기 걱정이 앞섰다. 이미 항공권은 끊었고 브로츠와프에 사는 폴란드 친구들에게 간다고 말까지 했는데 이리도 숙소 구하는 게 어렵다는 게 말이 되는 건지.
오기가 생겼다. 기필코 에어비앤비에서 숙소 예약을 하고 싶어 졌다. 무척이나 간절해졌다.
사람이 간절해지면 어떻게든 뭐든 한다고 하는데 딱 그 상황이었다.
총 8번의 컨텍 그리고 실패
총 8번의 컨텍을 했지만 전부 실패였다. 대부분의 이유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이라 다들 고향을 가거나 여행을 가기 때문에 집을 비운다는 것이었다. 어떤 호스트는 특별가를 제안하면서 기존 가격보다 높게 부르는 경우도 있었고 또 다른 호스트는 예약에 대한 답장이 늦어서 기간이 만료되어 불가능이 돼버리기도 했다.
막막했다.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호스텔인가.
이젠 거의 반 포기한 채로 어떻게든 하나라도 걸려보자라는 마인드로 마지막 9번째 컨텍을 하기 시작했다. 여러 세부사항들을 다시 한번 꼼꼼하게 본 후 예약하기를 눌렀다. 게스트가 지켜야 할 규칙들에 대한 동의도 눌렀다. 다음 페이지를 넘어가는데 감사하게도 여기 호스트는 그냥 바로 결제를 하면 예약이 확정되는 방식이었다.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도대체 이게 뭐길래 별게 다 감동인건지. 그래서 곧바로 신용카드를 입력하고 결제하기를 눌렀다.
하지만 약간의 걱정이 있었다. 설마 결제까지 했는데 '정말 미안한데 우리 12월에 바쁠 예정이라 깜빡하고 예약을 받아버렸어. 미안하지만 예약을 취소해야 할 거 같아'라는 새드 앤딩이 아니길 빌면서. 예약을 하고 나서 메시지를 보냈다.
구구절절 정성스럽게 보낸 메시지
답장이 하루 이틀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호스트님께서 많이 바쁜가. 결제는 되었는데 아무 문제없겠지 생각했지만 하루빨리 예약 확정을 짓고 싶었다. 그래서 에어비앤비 호스트 소개에 나와있는 전화번호로 국제전화를 했다. 몇 초간 신호음이 가고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에어비앤비로 당신의 숙소를 예약한 한국인 게스트 Teddy라고 합니다. 혹시 Bartek인가요? 에어비앤비 메시지 답장이 안 와서 걱정이 돼서 연락했어요. 저 예약 확실히 된 거 맞죠?" 라면서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했다.
처음엔 Bartek도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브로츠와프에 없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엔 예약을 취소하고 나서 공동 호스트인 여자 친구와 이야기를 한 후 방 키를 어떻게 건네줄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처음엔 바르샤바에서 건네줄 계획이었다. 나의 항공권이 인아웃이 바르샤바였고 마침 Bartek 본가 또한 바르샤바라서 잠깐 만나면 되겠다고 했지만 계속해서 이야기를 해보니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했다.
그러므로 최종적으로 "Ok Ted, all fine. I think we wil manage everything. Dont worry. See you on December;)"라는 메시지와 함께 예약 확정이 되었다. 기뻤다. 한 달 동안 해외에서 내 집처럼 편하게 지낼 방이 생겼다는 게 너무 감격스러웠다. 몇 주간의 근심과 스트레스가 사라졌다.
출국날이 오려면 한참 남았지만 행복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Bartek이 너무 고맙다. 약 일주일 간 게스트 혼자 남기고 집을 비워 두는 게 선뜻 내키지 않을 텐데 처음 본 나를 믿어줬다는 게 감사했다.
Dziękuję bardzo
숙소까지 구했으니 다음으로 중요하게 할 일은 딱히 없었다. 단지 한 달 동안 그곳에서 무엇을 할 건지에 대한 계획만 세우면 될 듯했다. 그래서 조금씩 한달살기 버킷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