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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클테디 Jul 21. 2020

한달살기 버킷리스트

요리왕 비룡은 아니지만


한 달이라는 시간은 어쩌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그 말인즉슨 뭘 하냐에 따라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르다는 것이다. 말이야 한달살기지만 정확히는 35일이다. 그 이유는 바르샤바에서 브로츠와프를 오고 가는 시간과 비행기 시간을 포함하면 33박 35일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이렇게 긴 여행은 처음이라 조금은 낯설었다. 제일 길게 가본 게 24일 정도. 더구나 여러 나라 여러 도시를 가는 게 아니라 한 도시에 진득하게 있을 예정이라 단타에 끝내는 것 말고 꾸준히 실행할 수 있는 버킷리스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예전부터 만약 내가 한달살기를 하면 집에 주방이 있을 때 현지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서 요리를 해보고 싶었다. 물론 여태껏 공용 키친이 있는 여러 호스텔들에서 지냈을 때도 간단한 음식은 해먹기도 했지만 삼시세끼 중에 겨우 한 끼 정도 먹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자주 해 먹진 않았고 주로 외식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 이왕 간 김에 한 달 동안 외식비도 아끼고 직접 주기적으로 장을 보면서 현지 물가도 파악하면서 야무지게 이것저것 만들어 먹겠노라 다짐했다.


더구나 원래 장보는 걸 좋아하고 현지 마트를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그 나라 또는 그 도시를 더욱 알아가기 위해 여러 명소를 방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디테일함을 위해 현지 마트나 중앙시장을 방문하는 게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요리하는 자체를 좋아했기 때문에 한달살기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현지 마트에서 산 재료로 한식 만들기 또는 폴란드 요리 도전해보기


장을 보고나서 기록하기 위해  



아무리 사도 2만원이 넘을까 말까한 경우가 많았다.





한 번쯤은 알뜰살뜰하게 살아보는 연습을 위해


다음으로 생각한 건 가계부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가계부를 작성하는 게 버킷리스트라는 게 간혹 의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겐 가계부를 쓰는 게 꽤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 이유는 무려 한 달 동안 생활하는데 배낭여행처럼 쓰다 보면 금방 돈을 다 쓸 수 있을 우려 때문이었다.


물론 배낭여행을 하면서 흥청망청 쓰지는 않았지만 일일이 오늘 하루 지출 비용이 얼마였는지 또는 잔액은 얼마 남았는지 매일매일 확인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 정해진 예산보다 조금 더 지출하는 일이 있었다. 그땐 영수증을 따로 모으지도 않았고 가계부조차 꼼꼼히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 한달살기를 통해 '언젠가 내가 해외에서 살게 되었을 때 한 달 생활비는 어느 정도 들까?'에 초점을 맞추려고 했고 되도록이면 매일매일 노트에 가계부 작성과 함께 영수증을 첨부하기로 했다. 그래야 일일, 주간, 월간 지출비용을 파악해야 나의 씀씀이를 정확하게 알 수 있으니까. 이왕 하는 김에 엑셀로 간단히 수식을 집어놓고 표를 만들어 더 꼼꼼하기 적기로 했다.


이렇게까지 하는 건 한달살기에 몰입하고 싶었다. 어쩌면 두 번 다시 이런 특별한 살아보는 듯한 여행을 할 수 없을 거 같았다. 그리고 미리 연습하고 싶었다. 언젠간 해외에서 살 기회가 생긴다면 이 경험이 분명히 큰 경험이 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다.


한달동안 열심히 썼던 가계부 노트

한 달 동안 영수증이란 영수증을 많이 모았다. 그리고 모은 영수증들을 일별로 분류를 하고 노트에 착 붙였다. 확실히 꼼꼼히 쓰다 보니까 일일 지출비용을 확인하면서  다음날 지출을 어느 정도 해야 과부족하지 않은지 알 수가 있었다.


간단히 엑셀 서식을 만들어 유용하게 사용했다.





그래도 한 나라 한 도시 한 달이니까


나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데 관심이 많다. 배울 기회가 생기면 주저하지 않고 일단 생기초부터라도 천천히 시작한다. 물론 끝을 보는 경우가 많진 않지만 공부를 하는 동안 그 언어에 대한 기초 지식과 더불어 그 언어권을 사용하는 나라의 문화와 생활과 여행에 대해 같이 공부하는 편이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운이 좋게도 교양수업으로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수강하기도 했다. 학점은 생각보다 괜찮게 나와서 유종의 미를 잘 걷을 수 있었다. 또한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중고등학교 때 외국어 선택과목으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중국어를 공부하기도 했다. 최근엔 시원스쿨에서 생기초 일본어를 수강하기도 했다.


어쩌다 보니 아주 짤막하게 할 줄 아는 외국어가 늘어났다. 물론 영어 말고는 어느 정도 일상회화가 되는 외국어는 아직 없지만 그래도 잡학의 범위가 넓어져 스스로 만족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계속해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자 하는 학구열이 불탔다. 이번에 폴란드를 한 달 동안 가니까 폴란드어 공부를 해보기로 했다. 아주 가볍게.


어떻게 공부할지는 미리 계획을 짜 놓았다. 폴란드 친구 Ania가 폴란드어 공부할 때 유용하다며 생기초 폴란드어 회화 팟캐스트로 네이버 오디오 클립을 소개해줬다. 교재는 따로 사지 않고 노트를 하나 사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노트에 요약정리를 하기로 했다.


 

어떻게 읽는지만이라도 알아가는게 목표였다.

처음엔 열심히 들으려고 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조금은 게을리했다. 하지만 한달살기가 끝날 무렵엔 어느 정도 폴란드어를 읽을 줄 알게 되었다.




간 김에 새로운 취미를 가져볼까 해서


나의 취미 중 하나는 새로운 취미를 갖는 것이다. 특히 여행을 다니면서 여행과 관련된 취미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여행을 다니면서 자연스레 사진 찍는 게 취미가 되었고 여행을 다녀온 후 기록하고 싶어서 블로그를 했다가 이젠 브런치에서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종종 글을 쓰고 있다.


가끔 SNS에서 여행 관련 페이지에서 손재주가 좋으신 분들이 여행을 하면서 가는 곳마다 드로잉으로 추억을 남기곤 하는 걸 본다. 볼 때마다 나도 한 번 드로잉을 해볼까 하면서 연습장에 잠깐 그려봤지만 나 자신도 무엇을 그린 건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드로잉을 잘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에 한달살기를 하기로 하면서 시간도 넉넉하니까 드로잉 연습을 조금씩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선 드로잉 연습을 단계별로 하기 위해 드로잉 연습 교과서로 어떤 게 좋은지 미리 서칭을 한 후 가장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구입했다. 책과 함께 준비물로는 작은 드로잉 노트와 2B ,4B, HB 각각 연필 한 자루씩 세팅을 했다.



첫 드로잉

개인적으로 처음 드로잉을 시작하는 입문자에게 굉장히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책에 대해 짤막하게 이야기하자면 단계별로 드로잉을 연습할 수 있어서 천천히 단계를 밟아 가면서 드로잉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기도 한다.


자동차 하나 그리는데 2시간이나 걸렸다고 한다.



과일 그리기 도전

귀국하고 나서도 틈틈이 그리는 중이다.














그래도 한달살기 버킷리스트 중 우선순위는


한달살기 버킷리스트를 만들면서 가장 처음으로 적은 건 글쓰기였다.


2018년 7월, '브런치 작가'가 되면서부터 한동안 꾸준히 글을 썼었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게 생각만큼 잘 써지지 않았다. 처음엔 잘 써 내려가 싶었지만 본업은 학생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핑계로 조금씩 글 쓰는 것을 게을리하게 되었다. 브런치 작가가 된 이후로도 몇 번의 여행을 다녀오니까 점점 써야 할 여행기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왜냐면 나의 여행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니까.


항상 언젠가는 다 쓰겠지 막연히 생각을 하던 중 한 달이라는 시간이 생겨서 다시 써보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엔 끄적일 건 브런치에 발행하는 짤막한 여행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가 담긴 자서전을 쓰고 싶었다. 보통 자서전이라는 게 중년이나 노년에 여태까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면서 인생의 중간지점 또는 인생의 종착점에 들어서기 전 마무리하기 위해 쓰인 책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젊어서 나의 감정과 기억이 어느 정도 생생하고 또렷할 때 자서전을 쓰고 싶었다.


한 달 동안 자서전을 쓴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다른 글과 달리 '나'에 대한 이야기니까 글을 쓸 때 그 당시 내가 어떤 감정이었는지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기억하는 과정이 조금은 쉽지 않았다. 방법은 인생에서 주요 사건과 갈등은 무엇이었는지 목차를 쓰는 것이었는데 한 가지 또 다른 고민이라면 어디서부터 나의 이야기를 써야 하는지였다. 출생부터 아니면 유년시절 또는 20대 들어서면서부터일까.


그래서 핵심적으로 간추리려고 했다. 또한 내 인생에서의 전환점은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까 그 부분을 중심으로 쓰고자 했고 조금씩 하나의 책으로 완성되어 갈 땐 출판까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출판을 할 때 내 글이 독자들에게 콘텐츠 측면에서 읽을만한 무언가가 있는지가 중요한다는 점은 알고 있다.


자서전은 긴 호흡으로 차분하게 써야 한다. 그 말인즉슨 한 달 살기가 끝났지만 아직도 쓰고 있다. 나는 처음엔 한달살기 동안 탈고는 못해도 반이상은 쓸 줄 알았지만 도입부만 쓰다 말았다.



하지만 첫 단추를 끼우긴 했으니 늦지 않게 마무리를 지을 수 있지 않을까





이밖에도 많은 버킷리스트가 있으나


버킷리스트를 쭉 적다 보니 너무 많았다. 한달살기는 처음이라 그런지 해보고 싶은 게 많은가 보다. 한달살기 버킷리스트 중 정말 평범한 것도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산책하기, 집 주변 탐방, 서점 가서 폴란드 책 사기, 현지 사람들 많이 만나기 등등


쓰려다 보면 한도 끝도 없어서 우선순위를 정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한 달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도 않은데 뭘 그렇게 많이 썼는지. 웃음이 나왔다. 모든 게 처음이었기에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이 나왔나 보다.





한 달, 그 짧고도 긴 시간 동안 많은 경험을 하고 싶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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