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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클테디 Aug 15. 2020

삼겹살이 아니라 훈제였다니

아침부터 난리부르스


28일 토요일 아침. 평소 때와 같이 10시쯤 일어나 아침을 먹었다. 전날에 끓인 된장찌개와 누룽지 그리고 계란 프라이와 김치로 조촐하게 먹고 식후 빵과 과일 그리고 요거트까지. 



내가 봐도 나는 꽤 많이 먹는 편이다.


아침부터 약간의 이벤트가 있었으니. 사건의 발단은 화장실에서 시작되었다. 외출 준비를 위해 화장실 샤워부스로 들어가 흥얼흥얼 거리면서 샤워를 하던 중이었다. 샤워가 다 끝날 때까지 샤워부스 안이 어떤 상황인지 몰랐다. 단지 오늘따라 물이 잘 안 빠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느낌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샤워를 끝냈는데도 물은 점점 발목까지 차올랐다. 물론 유럽 화장실 구조가 건조식 화장실로 되어있고 샤워부스에만 하수구가 있어 물이 천천히 내려가는 건 알고 있었으나 보통 샤워가 다 끝날 때쯤 전부 내려가야 하는데 흥건한 상황.


물이 빠지기를 기다렸지만 하수구가 금세 막혀 결국 물이 역류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하지만 더 싸한 느낌이 들었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역시나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그 물은 주방 초입까지 흘렀고 물바다가 되었다. 


음.. 어..?! 아?! 


무척 당황했지만 일단은 물기가 더 번지지 않게 화장실 선반에 수건을 모조리 꺼내 물기를 전부 닦아냈다. 물기를 닦아내고 짜고 다시 닦고를 반복했다. 아침부터 참 생고생이었다.


얼추 물기를 제거하고 난 후 다시 샤워부스 안으로 들어가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자 하수구를 열었다. 뭐가 많지는 않았지만 막히는 이유는 역시나 듬성듬성 보이는 머리카락이었다. 물론 하수구의 구멍이 매우 촘촘하게 되어 있어 금방 막힐 거라 짐작을 했지만 이 정도로 구멍이 촘촘할 줄은 몰랐다. 


사실 체크인하는 날 바르텍이 


'테디 너는 머리카락이 남자치고는 길기도 하고 파마도 해서 하수구가 금방 막힐 수 있으니 혹시 모르니까 하수구 잘 확인해줘'


했을 때 그때까지도 에이 설마 하면서 듣고 흘렸지만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을 때 막혀 아침부터 일사천리로 물청소를 했다.  


남자 머리카락이 얼마나 길고 자주 빠지길래 이리도 막히나 조금은 억울하지만 그래도 집주인이 없을 때 일어난 일이라 다행이었다.  


그렇게 한차례 물난리를 해결한 후 나갈 채비를 끝내고 집을 나왔다. 늘 그랬듯이 먼저 rynek으로 갔는데 오늘은 웬일로 사람들이 북적북적했다. 크리스마스는 끝났지만 아직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그런지 크리스마스 특유의 분위기를 즐길 수가 있었다. 광장의 분위기와 함께 거리의 악사도 나와서 연주를 하고 있어 물씬 연말 분위기가 나기도 했다.


2019년 12월 28일










나중에 여기서 살까 봐



그러다가 문득 근처에 한국 슈퍼 마켓이 있는 게 어렴풋이 기억났다. 예전 브로츠와프를 왔을 때 광장으로 가는 길에 잠깐 지나쳤던 곳이라 금방 찾아갔는데 한국 마트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 온 김에 뭘 팔고 있는지 또 필요한 게 있지 않을까 해서 들리기로 했다.


가게 이름은 K-FOOD 마크는 SHIN FOOD 굉장히 한국스러움을 강조한 이름이랄까.


마트는 rynek 초입에 있다.

마트 규모는 크지는 않았지만 여러품목들을 팔고 있었다. 사실 꽤 많이 놀랐다. 난 그저 기본적인 한국 제품들만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봉봉과 갈아 만든 배 그리고 비타 500을 팔고 있다는 사실에 입을 닫을 수가 없었다.


여긴 찐이구나.


활명수와 박카스까지 있다는 디테일함에 또 한번 놀랐다.


마치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우리 동네 흔한 마트처럼 모든 게 친숙했다. 그 와중에 햇반 컵밥과 통단팥죽으로 시선 고정. 생각보다 비싸지 않고 딱 적당했다.




구경을 하다가 웃음이 났다. 


나는 왜 한국에서부터 이 먼 곳까지 고생해서 한식을 챙겨 온 거야(허탈)





녹차도 있고 매실도 있고 유자차도 있다니




쭉 한 바퀴 둘러보면서 필요한 게 갑자기 생각이 났다. 젓가락. 젓가락이 간절하게 필요했다. 며칠 동안 포크로만 사용해서 불편했는데 모처럼 온 김에 젓가락을 사기로 했다.   





저녁으로는 삼겹살을 구워 먹기로 해서 쌈장을 작은 거 하나를 샀다.


잠시 짜장면이나 국수를 끓여 먹어볼까 생각했지만 자신이 없어서 금방 포기  

 마지막으로 된장찌개 끓였을 때 남은 야채들이 조금 있어서 나중에 카레를 해 먹기 위해 오뚜기 카레를 샀고 혹시 필요할까 봐 한국 쌀도 샀다.




정말 집 근처에서 장보는 듯했다. 분명 폴란드에 있지만 잠시 한국을 왔다 간 기분이랄까







난 그저 삼겹살이 먹고 싶었을 뿐인데


집에 와서 잠시 폴란드어 공부도 하고 글도 끄적이다 보니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저녁으론 삼겹살을 구워 먹기로 해서 장을 보러 갔다. 전날 장을 보다가 혹시 몰라 삼겹살이 어딨는지 찾던 중에 소시지 파는 코너 바로 옆에 있길래 이건가 하고 스윽 보고 와서 아무 고민 없이 마트에 가자마자 한덩이를 담았다. 


삼겹살이 이렇게 밀봉해서 팔기도 하는구나. 신기하네


이때까지 몰랐다. 그저 삼겹살처럼 보였기에.



처음엔 삼겹살인줄 알았다.


그다음에 상추 비스무레한 걸 찾기 시작했다. 한국의 상추와 달리 유럽의 상추는 조금 생김새가 다르다고 들어서 야채 코너에서 한참을 헤매다가 확신이 서지 않아 두 종류의 풀떼기를 샀다.




집에 와서 잔뜩 기대를 하며 저녁 준비를 했는데 고기 비닐커버를 뜯는 순간 깨달았다. 


진득한 훈제향이 났다. 


그렇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바보처럼 훈제된 삼겹살을 샀던 것이었다. 그래도 뭐 같은 고기고 한국에서도 훈제 삼겹살 먹은 적 있으니 아무렴 어때 하면서 구울 준비를 했다.



겉보기엔 굉장히 먹음직스러웠다.



고기 굽는 사운드는 언제나 옳다.


고기가 어느 정도 읽을 때쯤 한 점을 먹어봤다. 


짜다. 짜도 너무 짜다.


아무리 훈제라지만 이 정도로 짜다니. 그래도 쌈 싸 먹으면 짠 게 덜하지 않을까 하여 일단은 구웠다.



바삭하게 고기를 구운 후 상을 차렸다. 반찬은 딱히 없지만 고기와 쌈 그리고 맥주면 충분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상추(?)와 함께 고기 한 점을 올려 쌈장을 찍어 바른 후 한입 크게 먹었다. 


그래도 짜다.


사실 짠 게 가시지 않았다. 입안에 맴도는 짠맛으로 계속해서 맥주를 마셨다. 그러나 부드럽고 야들야들한 식감 때문에 먹을만했다. 저녁을 먹은 후 정확하게 내가 뭘 샀는지 가계부를 작성하면서 조사해봤다. 오늘 내가 산 건 boczek wedzony. 구글 번역을 돌려본 결과  smoked bacon, 즉 훈제된 베이컨이었다.




그래서 수소문 끝에 정확히 삼겹살이 폴란드어로 뭔지 찾아냈고 다음엔 구이보다는 제육볶음을 해 먹기로 했다. 구이가 맛은 있었지만 집에서 환풍기를 틀었지만 고기 냄새 빼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 





우여곡절 끝에 정확히 삼겹살이 폴란드어로 뭔지 찾았으니 빠른 시일 내에 한 번 또 야무지게 해 먹기로. 









12월 28일 훈제지만 괜찮아. 어차피 고기서 고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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