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엉클테디 Aug 25. 2020

글로벌 인싸로 거듭나기

2019년 12월 31일 연말파티

2019년 12월 31일


2019년의 마지막 날 아침. 어느 정도 잠이 깰 무렵, 연말이라 그런지 단톡방이 벌써부터 떠들썩거렸다. 벌써 2019년의 마지막 날이라니. 오랜만에 연말연시를 해외에서 보낼 생각에 아침부터 들떴다. 또 한편으로는 한국과 폴란드의 8시간의 시차가 새삼 실감이 난다고 할까.


한달살기를 하러 브로츠와프라는 도시를 정하기 전까지만 해도 연말 계획은 딱히 없었다. 어차피 어느 나라를 가든 잠시 머무는 이방인일 뿐 연말은 그저 그 해의 마지막 날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브로츠와프를 가기로 결정하면서 현지 친구들에게 소식을 알렸고 연말 계획에 대해 물어봤다. 처음엔 다들 잘 모르겠다고 했으나 시간이 흘러 안나의 아파트에서 김밥을 말고 있을 때였다.


테디, 연말에 뭐해? 혹시 다른 계획이나 약속 있어?


아니, 나야 당연히 없지. 왜?


연말에 우리 아파트에서 연말 파티할 건데 너도 올래?


아 정말?! 나도 와도 돼? 나야 땡큐지


생각지도 못한 초대에 벌써부터 들떴다. 한 번도 외국의 파티 문화를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더더욱 기대감이 컸다. 흔히 해외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신나는 홈파티를 한 번쯤 꿈꿔왔기에.


처음엔 안나는 연말에 바르샤바에 사는 친구가 연말 파티를 한다고 해서 거기를 갈까 고민 중이었고 나 또한 뭘 할까 고민 중이었는데 이렇게 연말 파티에 초대를 해주다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리하여 연말 파티를 초대해준 친구들과 파티에서 새로 만나게 될 친구들을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하기로 했다. 뭘 챙겨갈까 고민하다가 부엌에 가서 냉장고를 열어봤다. 스윽 둘러봤을 때 일반 떡볶이와 짜장 떡볶이가 눈에 띄었다. 두 개를 다 챙길까 둘 중 하나만 챙길까


왠지 일반 떡볶이는 잘 안 팔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왜냐면 그들 입엔 너무 매울 것이라 확신했기에. 그래서 짜장 떡볶이를 챙기기로 했다. 덤으로 라면사리까지.


분명 짜장 떡볶이라면 달달한 짜장 소스로 외국 친구들도 먹기에 부담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떡볶이를 챙겨간 건 어쩌면  신의 한수였을지도



파티 시작은 오후 7시. 준비할 거라곤 딱히 없고 떡볶이 정도랄까.


파티에 가기  미리 안나에게 파티 준비를 도와주려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자기네들끼리 할 수 있다고 하면서 괜찮으니 시간에 맞춰서만 오라고 했다.


오후 6시 반쯤 슬슬 나갈 준비를 했다. 뭐라도 더 챙겨갈 게 없나 부엌을 잠시 확인한 후 집을 나와 15분 정도 걸어서 아파트 도착.


아파트로 가니까 술과 음식은 이미 다 준비되어 있었고 몇몇 새로운 폴란드 친구들이 와있었다. 성격상 어색한 분위기를 참지 못해 먼저 말을 붙이는 타입이라 약간은 어색했지만 자연스레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하던 중


너가 만든 김밥 우리도 먹었는데 맛있더라. 진짜 너가 만든 거야?


아?! 정말? 너희도 먹었어? 아이구 고마워라. 그럼. 내가 만들었지.


전날 김밥이 꽤 많이 남아 냉장고에 보관해서 계란에 부쳐서 먹으면 된다고 했는데 도란도란 모여서 나눠 먹었으려나.


약간 스시 같은데 스시는 아니지?


에이. 당연하지. 일본의 스시가 아니고 한국의 김밥이야.


스시와 김밥을 잘 모르는 외국인 친구들을 위해 다시 한번 김밥에 대해 설명해줬다. 단지 참기름을 넣어서 김밥이 고소해서 맛있어라는 말을 어떻게 표현할 수 없어 답답했을 뿐.


한차례 스시와 김밥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한국 음식을 설명해줬다. 마치 한국 홍보 대사처럼 적극적으로 한식 사진도 보여주고 한국이 어떤 매력이 있는지도 이야기해줬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매니저로 일했던 때가 생각이 났다.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 게스트에게 한국의 이런저런 음식과 명소들을 소개하면서 덩달아 나까지 신났던 때.


슬슬 사람들이 오기 시작해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몇몇 술들은 친구 중 하나가 직접 제조했다고 했다. 술맛은 마치 이탈리아 리몬첼로처럼 레몬 향이 진한 보드카였다. 생각보다 도수가 세서 두 잔 정도 마시다가 얼굴이 금방 달아올랐다. 몇 도냐고 물어보니 기본 보드카 정도라 했다.


나머지 폴란드 친구들은 아무렇지 않게 또 마셨다. 원샷을 하면 다시 잔을 채워주고 건배하고 마시고 반복


여러 새로운 친구들과 또다시 통성명을 하면서 내 소개를 했다. 내가 폴란드어를 못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은 영어를 할 줄 알아서 언어의 장벽은 그다지 없었다. 재밌는 건 여러 폴란드 친구들을 만났는데 단골 질문이 있었다.


폴란드엔 왜 왔어?


음, 작년에 폴란드에 한 번 왔었는데 너무 좋아서 또 오고 싶었어. 물가도 싸고 이쁜 도시들도 많았고 나에겐 다른 나라보다 폴란드라는 나라 매력적이었어. 무엇보다 안나를 본지도 오래되었기도 하고 겸사겸사 왔지.


다음 질문으로는


폴란드를 왜 좋아하니?


폴란드라는 나라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 폴란드도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한국도 비슷하게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어.  마치 너희 나라와 독일과의 관계처럼 우리도 일본과 그런 관계야. 한국에도 폴란드처럼 수용소가 있고 우리도 독립을 위해 계속해서 투쟁했어. 그래서 폴란드라는 나라가 더 애착이 가더라. 그리고 폴란드 음식이 유럽의 다른 나라 음식보다 내 입맛에 맞기도 해서.


장황한 설명이 끝나고 나니까 감동과 함께 모두들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다시 또 질문이 들어왔다.


폴란드에 한달동안 산다면서. 한 달 동안 뭐하고 지내?


다시 또 구구절절한 이야기 시작. 그러다 보니 조금씩 술이 깼고 계속해서 파티를 즐겼다. 신기하게도 대화 소재는 끊임없이 넘쳐났다. 확실히 문화권 자체가 다르다 보니 서로 공유할게 많았고 어쩌면 한국이라는 나라가 그들에겐 조금은 생소한 나라라서 관심이 있진 않았을까 생각을 했다.


문득 대화 소재가 풍성한 이유가 내가 여러 차례 유럽 여행을 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덧붙여 대학 다닐 때 교양 수업으로 짤막하게 배운 프랑스어와 독일어로 유럽어에 대한 감각이 있어서 대화가 조금은 통한다고 해야 하나. 로망스어와 게르만어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들 중 몇몇은 독일어를 고등학교 때 제2 외국어로 배웠다고 하면서 독일어와 폴란드어 둘 중 뭐가 더 어려운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독일어 문법이 제일 어렵다는 것에 대해 공감을 하기도 했다.  


그다음은 안나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다시 또 구구절절 시작. 



연말연시 가장 행복했던 때





파티가 점점 무르익을 무렵


슬슬 카운트 다운을 할 때가 되었다.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몇 초간 정적과 함께 누군가 카운트를 하기 시작했고 이젠 다 같이 카운트를 하기 시작했다.


00시 00분이 되자 맞자 창밖에 조금씩 폭죽이 터졌고 우리 또한 환호 소리를 지르며 새해를 축하했다. 한 명씩 서로 껴안아주면서 덕담 한 마디씩 주고받았다.


특별히 안나에겐


안나, 이렇게 재밌고 멋진 파티에 초대해줘서 진짜 고마워.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에서 정말 최고의 순간 중 하나야. 잊지 못할 거 같아. 다시 한번 고맙고 감사해.



파티엔 노래가 빠질 수 없다며 동네방네 다 들릴 정도로 노래를 틀었다. 꽤 큰 소음으로 민원이 들어오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이미 아파트 주민들한테 미리 이야기를 했고 허락까지 받아놓았다고 하니 만사 오케이.


여러 음악을 틀면서 한국 노래도 중간에 틀었는데 해외에선 역시 싸이 형님의 강남스타일이었다. 한국어 가사는 몰라도 말춤 하나로 대동단결. 후렴구가 나오자마자 10명 정도 되는 인원이 밑 층과 윗 층이 울릴 정도로 말춤을 췄다. 춤을 잘 추든 못 추든 술이 있고 음악이 있으니 그저 재밌었다.


둠칫둠칫 춤을 추다가 약간의 허기가 져서 잠시 잊고 있었던 짜장 떡볶이가 생각이 나서 다시 정신을 차리고 부엌에서 떡볶이를 만들었다. 만들면서 이게 현지 친구들 입맛에 맞을까 살짝 걱정했지만 달달한 인스턴트 짜장스프가 통했는지 다들 맛있다고 극찬을 했다.


겉보기엔 뭔가 하겠지만 짜장 라볶이가 맞다.



오후 7시에 시작한 파티는 새벽 4시가 돼서야 끝이 났다. 하나둘씩 집에 가기 시작했고 나 또한 집에 갈 준비를 했다. 안나와 안나 룸메이트들이 집까지 데려다줬는데 따뜻한 허그와 함께 작별 인사를 하면서 연말 파티는 마무리되었다. 


나에겐 2019년 12월 31일 연말 파티는 정말 꿈만 같았던 그런 멋진 파티였다. 


내 인생에 이토록 재밌는 파티가 다시 올까.  


깨알 손하트



Nazdrowie




방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 브로츠와프에 오길 잘했구나 생각이 들다가 곧 깊은 잠에 들었다.









2020년 1월 1일 Wesolych Swiat i Szczesliwego Nowego Roku






매거진의 이전글 폴란드에서 김밥을 말아봤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