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꿈을 이야기 할 때 직업을 꿈이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고는 한다. 그건 아마도 예전처럼 신분이 엄격했던 계급사회 시절에는 각자 신분에 맞는 직업만을 가질 수 있었기에 직업적 선택의 자유로운 측면만을 크게 부각해서 본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와서 더 이상 직업은 꿈이 아니며 그 실현 수단으로서 목적성이 강조되고 있다. '무엇이 되겠다'가 아니라 '무엇 무엇을 통해 무엇을 이루겠다'라는 의미인데 여기서 또 한번의 결정적 오류를 범하기 쉽다. 매순간 열심히 노력해서 꿈을 이룬 뒤에 더 이상 목표한 바가 없어 좌절하는 경우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많다.
한번의 성공이 그 이후에 이어지지 못하고 성공의 오류를 범하게 되는 역사적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여기 재미있게 느껴지는 사례가 있다. 지금 살펴볼 사례는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은 태국과 한국간의 역사적 평행이론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우선 신라의 왕자로 태어나 왕위 계승 문제로 한쪽 눈을 잃고 낮은 곳에서 미륵을 자처하며 후고구려를 세웠으나 결국 집권 후반 정신 이상적인 행동을 보인 인물이 있다. 바로 왕건의 고려 건국에 마중물이 된 궁예인데, 이런 궁예의 태국판이 바로 탁신대왕이다.
지금은 미얀마로 불리우는 버마는 지금의 국력과 달리 18세기에는 동남아시아의 강자로 군림하면서, 태국 즉 아유타야 왕국을 점령하고 이곳을 역사와 지도에서 지워버렸다. 방콕 근교 여행의 필수코스가 되어버린 아유타야 유적지가 그 때의 아픈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데, 머리가 없는 불상이나 불탄 흔적의 건물 잔해들을 보면 그 옛날 이곳이 얼마나 번성한곳이나 깨닫는 동시에 폐허가 된 모습을 보면서 또한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닫게 된다.
이후 위에 언급한 탁신대왕이 태국의 저항운동을 이끌어 버마세력을 몰아내고 방콕 근처 톤부리 지역에 새로운 왕조를 개창한다. 하지만 그는 위대한 장국이긴 했지만 유능한 통치자는 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버마세력을 물리친 뒤의 비전 또한 가지고 있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왕조수립이후의 혼란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지속적인 정복전쟁을 감행하여 오히려 국력을 쇠퇴 시켰다. 그리고 궁예와 마찬가지로 자신 스스로가 세상을 구원하는 부처라 생각하고 그에 반하는 사람들을 탄압해 역모에 빌미를 만들어 주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부하이자 지금의 라마왕조를 세운 차크리 장군에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탁신대왕이나 궁예의 역사적 사실에 기인하여 돌아보면 사람은 꿈을 위해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고난 속에서도 꿈을 위해서 버티고 버텨내어 그 꿈을 이루는 순간을 위해 사는 걸 보면 판도라 상자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희망이 바로 꿈의 다른 말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꿈이 어떠한 목표의 목적과 수단이 아닌 이정표가 되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오늘은 잠깐 멈춰 서서 나의 꿈은 뭐였는지, 그 꿈을 향해 가고 있는지, 그 이후의 또다른 문이 열리면 그때는 어떤 이상을 향해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자. 그러기 딱 좋은 날씨들이 이어지고 있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