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포틀랜드 여행
누군가에게 내가 사는 도시에서 가볼만한 곳을 추천한다면, 나는 어디를 소개하게 될까? 처음 방문하는 여행자에게 꼭 가봤으면 하는 곳으로 가장 먼저 서점을 소개하는 도시는 어떨까.
힙스터(hipster)의 도시라 불리는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이야기다.
포틀랜드는 가기 전부터 기대가 많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그 도시에 관한 책을 찾아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포틀랜드는 계간지 '킨포크(Kinfolk)'를 포함해서 그 도시에 오래 거주한 사람들이 담아낸 독특하고 매력적인 에세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떠나기 전부터 기대에 부풀었다. 가보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 리스트를 작성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포틀랜드에는 오감을 자극하는 콘텐츠가 풍부하다. 각종 볼거리부터 스페셜티 커피와 맥주 브루어리, 푸드 카트로 대표되는 먹을거리, 개성 넘치는 축제와 대자연에서 트래킹 등 즐길거리, 수많은 로컬 브랜드가 있고, 심지어 텍스가 없는 도시라 쇼핑마저 좀 더 가볍고 적극적인(?)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
그날 우리는 포틀랜드의 대표적인 브랜드 중 하나인 나이키 매장에서 쇼핑 중이었다.
우리에게 다가온 직원은 친절하고 유쾌하게 장난을 치며 얼이에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가 이 도시를 처음 방문한 여행객임을 알게 되자, 그는 확신에 찬 환한 얼굴로 말했다.
아, 이 도시에 처음 오셨어요? 그렇다면 파웰 북스에 꼭 가보세요!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처음 방문한 사람에게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은 서점이란 도대체 어떤 곳일까. 마침 우리는 파웰 북스에 다녀온 참이었다. 이미 다녀왔다고 대답하자, 그는 활짝 웃으며 '정말 근사한 곳'이라고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이번에는 나도 함께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우리가 다녀온 그곳은 정말 그랬기 때문에.
포틀랜드에 도착해서 호텔에 짐을 풀고 커피를 한잔 마신 뒤 가장 먼저 향한 곳이 파웰 북스(Powell's Books)였다. 파웰 북스는 일단 그 규모가 압도적이다. 한 블록의 건물 전체가 서점으로 되어있다. 웬만한 백화점이나 쇼핑센터만 한 크기다. 내부에는 엄청난 규모의 장서가 섬세하고 애정 가득한 큐레이션으로 진열되어 있다. 서적뿐 아니라 파웰 북스 자체 기획상품과 로컬 브랜드 제품도 함께 만나볼 수 있고, 각종 책 관련 이벤트가 연중 이어진다. 누구나 자유롭게 책을 읽고 구입할 수 있고, 중고책도 바로 사고파는 것이 가능하다. 현재는 중단된 것 같지만 내가 읽었던 책에서는 몇 년 전까지 자체 출판 시스템으로 독립출판도 지원했다고 한다. 1층 가장 안쪽 넓은 공간에는 카펫과 낮은 책상을 두어 아이들이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게 해 두었다. 책장 위 넓은 창으로는 햇살이 비치고 빗소리도 들렸다. 누구나 가져갈 수 있는 귀여운 스티커도 있었다. 얼이는 그 공간을 정말 좋아했다. 우리는 원하는 책을 꺼내와 읽으며 그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포틀랜드는 미국에서 책을 두 번째로 많이 읽는 도시라고 한다. (가장 많이 읽는 도시는 시애틀이다) 파웰 북스에 들어서니 그 이유를 알 듯했다. 첫날 우리는 해가 뉘엿뉘엿할 때쯤에야 양 손에 종이백을 들고 서점을 나섰다. 그리고 포틀랜드에 머무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파웰 북스에 갔다. 포틀랜드가 더 좋아졌다. 이 서점을 가진 포틀랜드가 부러워졌다.
우리가 사랑했던 서점은 또 있다. 이번에는 도심 대로변이 아니라 작은 마을의 거리를 걸어 찾아갔다. 앨버타 아트 디스트릭트(Alberta Art District)의 그림책 전문 서점 그린빈 북스(Green Bean Books)가 바로 그곳이다. 그린빈 북스는 언뜻 보면 작은 가정집 같다. 아담한 규모도 그렇고, 알록달록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외관과 내부도 동화 속에 등장하는 집처럼 보인다. 아트 디스트릭트에는 그린빈 북스 외에도 우리의 눈길과 마음을 끄는 가게들이 많았다. 우리는 걸음마다 멈추어 보이는 문마다 들어갔다. 각기 다른 콘셉트의 독립출판 서점과 소품 숍, 문구점과 옷가게, 카페와 펍까지. 개성 넘치는 가게들이 거리를 따라 팝업북의 책장처럼 펼쳐졌다.
그리고 우리는 이 작은 서점을 발견해냈다. 서점에 들어서자 책과 장난감이 가득한 친구네 집에 놀러 간 기분이었다. 고심해서 골랐을 것이 분명한 그림책들이 인형, 장난감과 함께 책장을 채웠고, 얼이가 좋아하는 바닷속 이야기와 인체탐험, 강아지 책도 얼마든지 꺼내어 읽을 수 있었다. 그 작은 공간 안 구석구석 얼마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채워져 있었는지,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흠뻑 빠져들었다.
신난 우리에게 책방 주인 아저씨는 뒷문을 열어 작은 정원을 보여주었다. 뒤뜰에는 키가 작은 나무 아래에 제각각 다른 색과 모양을 가진 의자 여러 개가 자유롭게 놓여있었다. 이곳에서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시간을 가진다고 했다. 시간이 맞지 않아 참여할 수 없었지만, 우리는 포틀랜드에서 갔던 모든 곳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을 사들고 그 작은 서점을 나섰다. 물론 전부 책은 아니고 장난감과 퍼즐 같은 자질구레한 것이었지만, 우리는 앨리스의 원더랜드에라도 다녀온 기분이었다.
그 사람이 읽는 책이 그 사람이 누구인지 말해주고, 그 사람을 만들어 간다. 여행을 하며 서점을 꼭 들르는 이유는 그 도시에서 생산되고 그 도시를 구성하는 책이 궁극적으로 그 도시의 관심과 담론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점에서 그 도시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이 도시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포틀랜드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얼이는 그때 거기, 그 서점이 제일 좋았다고 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가장 그립고, 그 도시에 다시 돌아간다면 다시 가고 싶은 곳, 원더랜드를 찾아 우리는 서점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