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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뜨고 TTGO Jul 30. 2019

아이와 유레일 여행  #1 준비편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표현을 종종 듣는다. 생의 어느 지점에서만 가능한 것. 지나치면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어쩌면 삶의 모든 순간에 적용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삶의 여러 순간들 중 아이의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이와 공유하는 기억을 갖고 싶은 바람은 누구나 가져봄직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의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에) 타이밍을 포착하고 함께해야 할 것이기에... 나는 열한 살 아이의 시간에 '함께 떠난 유럽여행'의 기억을 끼워 넣기로 했다.


유럽을 선택한 이유는 아이가 읽고 있는 책과 앞으로 접하게 될 세계사에 등장하는 랜드마크들이 뷔페처럼 다양하게 차려진 곳, 시대를 잇는 오래된 역사의 흐름 속에 우리의 기억을 덧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이에 더해 아이와의 오롯한 시간을 누리기 위해 운전대를 버리고 기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11살, 아이와 함께 떠나는 15박 16일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유레일여행'이 시작되었다.


파리 개선문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을 위한 준비는 은근히 까다롭다. 부모와 11살의 취향 맞추기도 쉬운 일이 아닌데 두꺼운 여행책을 서너 권을 훑어봐도 아이와 함께 떠날 만한 곳, 꼭 챙겨 가야 할 것들은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아빠로서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설렘을 경험할 수 있기에, 그 느낌이 여행 준비의 적잖은 지원군이 되어 주었다. 이 여행의 기록이 아이와 유럽여행을 준비하는 부모들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혹은, 이 여행기를 통해 아이와의 여행을 꿈꾸게 되기를...


스위스에서 밀라노로 향하는 유레일 1등석 패밀리 좌석


경로를 정하고 숙소와 교통편을 체크한다.

여행 전 유럽에 관련된 책과 영화를 아이에게 제공하고 가고싶은 곳을 노트에 적도록 했다.

런던아이, 패딩턴, 에펠탑, 개선문, 자연사박물관, 진실의입, 베네치아의 곤돌라 등 숨바꼭질하듯 우리가 찾아야 하는 여행의 보석들이 긴 시간에 걸쳐 아이의 노트에 채워졌다. 여행지의 선택은 다음 세가지를 고려하는 것이 좋다. 첫째, 추억을 새기기 위한 여행이므로 시간이 지나도 없어지거나 변하지 않을 곳. 둘째, 아이가 자라서 다시 찾아가게 될 곳. 셋째, 아이가 지루해하지 않을 곳. 이렇게 선정된 스팟을 연결해 일정을 만들고 유레일 패스를 예약했다. (짧은 기간 여러나라를 방문해야 했기에 글로벌 패스를 이용했다) 숙소는 유레일 기차역을 기준으로 별 3개 정도의 호텔로 예약했다.


베니스 수상버스 위



일정짜기의 원칙

'절대 무리하지 않는다!'

'내 보폭이 아닌 아이의 보폭으로 계산한다.'

일정을 잡으며 가장 중요하게 여긴 원칙이다. 물론 모든 일이 원칙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 일정을 잡았다. 런던 - 파리 - 루체른(베른) - 밀라노 - 베니스 - 피렌체 - 로마 며칠 밤낮을 검색한 정보량에 비하면 새로울 것 없는 단출한 계획표지만, 이 평범한 일정 속에는 한 타래의 추억을 위한 아빠의 열정이 녹아 있었다.


짐 꾸리기

15박 16일, 4개 나라 8개의 도시. 도시마다 다른 숙소를 찾아야 하는 일정이기에 최대한 짐을 줄였다. 카메라도 반드시 필요한 렌즈만 준비하는 것이 좋다. 떠나기 전, 여행을 상상하고 그에 맞는 렌즈를 선택하곤 하는데 유럽여행에 하나의 렌즈만 챙겨야 한다면 광각계열 줌렌즈가 답이다. 16mm~35mm 정도까지의 줌렌즈가 좋겠다. 우산보다는 우비를 준비하는 편이 좋고 복잡한 도시 여행에서 아이의 가방과 복장은 멀리서도 쉽게 눈에 띄는 단색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그 밖의 준비물로 여행 중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것을 마련하면 더욱 좋다. 예를 들면 일상보다 시계가 빠른 여행에서 노트와 연필을 준비해 그날의 기억을 일기로 기록하는 것도 좋다.


유레일 여행 일정

템즈강과 런던시내

8개의 도시를 유레일로 여행하려는 계획은 다음과 같다.

런던(3박) - 파리(3박) - 루체른(2박) - 밀라노(1박) - 베니스(1박) - 피렌체(1박) - 로마(3박) - 런던

런던에서 아이가 꼽은 곳은 런던아이(대관람차)와 패딩턴 역(영화 패딩턴에 등장하는)이다.

런던에서의 숙소는 히드로 공항에서 런던 지하철의 복잡한 맵을 무시하고 15분만에 닿을 수 있는 패딩턴 역 인근 호텔로 정했다. 장시간 비행으로 누적된 피곤을 고려해서다.

장난감 가게 햄리스도 일정에 포함시켰다. 그 외에도 대영박물관, 자연사박물관, 뮤지컬 알라딘 관람을 넣어 넉넉히 3박 4일간의 일정을 잡았다. 남는 시간은 여유롭게 템즈 강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템즈강은 한강과 마찬가지로 도시의 단면을 보여준다. 강변을 따라 산책을 하면서 타워브릿지, 더 샤드, 세인트 폴 대성당, 빅벤, 런던아이 등 도시의 랜드마크를 모두 볼 수 있다.


파리

파리 크레미유 거리에서

파리북역에서 내린 우리가 이동한 곳은 리옹역이다. 리옹역에 숙소를 잡은 이유는 스위스로 이동하는 테제베(TGV)가 이곳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리옹은 구시가로 파리의 옛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에펠탑, 루브르, 자연사박물관, 개선문 등이 일정을 잡았다. 파리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먹어볼까 했지만 계획대로 되진 않았다.


스위스

루체른 빈사의 사자상 앞 상점가

파리에서 스위스 루체른으로 가기 위해 바젤에서 기차(IR 열차)를 갈아탔다. 루체른에서의 유일한 일정은 리기산이었다. 아이에게 융프라우의 설산 풍경보다 리기산의 썰매타기가 더 기억에 남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밀라노

루체른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이탈리아로 간다. 밀라노에 특별히 볼 것은 없지만 거리와 시간이 꽤 걸리니 무리하게 베네치아까지 이동하는 것 보다는 쉬어가는 차원에서 하룻밤을 머물렀을 뿐 밀라노 대성당을 잠시 구경한게 전부다.


베니스

베니스 산마르코광장 앞 곤돌라 탑승장

베니스에서는 오후 반나절 산마르코 광장과 곤돌라를 즐겼다. 저녁에는 현지 여행사를 통해 나이트 가이드 투어에 참여했는데 아이의 만족도가 높았다. 이후 이탈리아 여행은 모두 현지 가이드 투어 상품을 이용하게 되었다.


피렌체

피렌체 미켈란젤로 공원에서 바라본 피렌체 시내 풍경

베니스에 이어 피렌체도 현지 가이드투어를 이용하고 다음날 오전에는 미켈란 젤로 언덕에 다녀왔다. 피렌체에서 조금 더 머물기 위해 유레일 시간표를 미리 조정했다. 유럽은 자신의 시간과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도록 현지 가이드 프로그램이 세분화 되어 있어 자유여행을 하며 적절히 활용하기에 좋았다.


로마

로마 콜로세움

로마에서 하루는 시내구경을, 하루는 바티칸시티를 관람했다. 나머지 시간은 천천히 쉬면서 여행을 마무리했다. 밀라노, 베니스, 피렌체와 마찬가지로 로마에서도 역 근처에 호텔을 잡았다. 유레일패스가 있다면 테르미니역에는 피우미치노 공항까지 공항철도를 이용할 수 있다.


유레일 패스 예약 및 사용팁

파리에서 스위스로 향하는 테제베 식당칸

런던-파리 유로스타는 레일 플래너 앱을 통해 예약했다.

파리-바젤-루체른 파리에서 바젤까지 운행하는 TGV는 현지 기차역에서 예약하였으나 바젤에서 루체른 구간의 IR 열차는 별도의 예약없이 이용 가능했다.

루체른-밀라노 트랜 이탈리아 웹사이트를 통해 EC 열차(직행)를 예약 (chiasso-milano 구간) 밀라노 - 베니스 - 로마 이탈리아 내 열차는 레일 플래너 앱을 통해 예약하지만 트렌이탈리아를 통해 온라인 예약이 가장 편하고 빠르고 정확하다. 현지 기차역에서 할 수 있지만 성수기에는 대기줄이 길다.

*유레일패스로 유럽 내에서 거의 모든 열차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고속 열차 또는 야간열차, 그리고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내의 열차는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런던 패딩턴역 작은 동상


여행계획과 준비가 완벽하기란 어렵다. 대부분의 여행자는 그 전에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모든 계획이 완벽한 여행은 계획대로 되면 설렘은 반이 되고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우리는 반쯤 비어있는 계획표를 들고 출발했다.


비행기는 빠른 속도로 우리를 먼 곳으로 데려가고 있었지만, 우리는 작은 여유를 누리면서 여행의 시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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