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는 사람마다 마음에 품고 있는 버킷리스트가 한두가지씩은 꼭 있다.
나에게 그 중 하나는 바닷속에서 집채만큼 커다란 고래상어와 헤엄을 치는 것이다.
바닷속 탐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상상하는 경험. 마치 지구가 아닌듯한 또 다른 세상에 들어간듯한 느낌이랄까?
5년 전, 처음 발리 램봉안 섬에서 만타레이를 보았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때는 사실 만타를 보려는 목적은 아니었는데 운이 좋게 사람보다 더 큰 만타레이를 2마리나 보게 되었다. 정말 아무도 없는 시퍼런 깊은 바닷속에서 신비로운 생명체를 바로 앞에서 마주하는 순간. 나를 향해서 엄청나게 큰 생명체가 다가올 때 잡혀먹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의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위압감, 그리고 바닷속에서의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불편함을 오롯이 다 느껴야 했던 순간들.
사실 이런 것들이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었기 때문에, 그래서인지 더 큰 생명체인 고래상어를 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필리핀에서 커다란 야생 고래상어를 볼 수 있는 곳은 사실 오슬롭이 아닌 돈솔이라고 한다. 작년에 필리핀 레가스피로 여행을 갔을 때 현지 관광청 가이드님께서 돈솔의 전설 같은 고래상어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다 큰 고래상어가 바다 위로 올라올 때는, 마치 땅이 솟아오르는 느낌이라고 그 순간에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놀랍고 무서워서 순간 얼음이 되어버린다고 말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실제로 경험을 하는 것 같은 설렘과 두근거림을 느꼈고, 언젠가 꼭 한 번은 고래상어를 만나봐야지 하고 내 버킷리스트에 추가했었다.
세부 오슬롭에는 나의 상상과는 조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망망대해에 배 한 척에서 집채만한 고래상어를 마주할 수 있다는 돈솔과는 다르게 수많은 관광객들이 빼곡하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새벽 4시에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세부 막탄을 출발하면 오슬롭에 오전 7시에 도착한다. 꼬박 3시간을 불편한 차를 타고 가지만 고래상어를 볼 수 있다는 하나 때문에 그 누구도 힘들다 불편하다 불평하지 않는다. 어쩌면 평생에 한 번 볼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이니까.
도착하면 바로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곳에서 2시간 정도를 더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 마치 유명한 아이돌을 만나는 것과 같이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느낌이라고 할까? 실제로 고래상어가 있는 앞바다에 가보니 수백 명의 사람들이 빼곡하게 기다리는 모습은 동물원에서 사자나 원숭이를 보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한가지 다른 것이라면 그들을 가두고 있는 우리가 있느냐 없느냐의 정도. 그리고 고래상어가 배부르면 그냥 떠나간다는 그 정도라고 할까?
바닷속에 고래상어가 있기는 한 걸까? 불안한 마음으로 작은 배를 타고 앞바다로 나가는 순간!! 바로 배 아래로 까만 점을 가진 커다란 그림자가 다가온다.
아! 고래상어다.
실제로 배 아래에는 7~8마리의 크고 작은 고래상어가 새우젓을 먹으면서 아주 신나게 헤엄을 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실제로 물 속에서 마주한다는 건 정말 행운이다. 그렇다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 맞다. 물 밖에서 사람이 많아서 동물원과 같다는 생각을 했던 건 나의 착각이었다. 야생의 고래상어는 사람이 있으면 신기해서 가까이 가기도 하고 가만히 멈춰있으면 나를 가만히 바라보기도 하는 정말 예상할 수 없는 순간들 이것은 야생이 맞다.
마치 내가 아쿠아리움에 들어와 있는듯한 느낌이랄까? 굳이 동물원가 비유하자면 내가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것과 같은 기분이라면 이해가 갈 수 있을까? 한치도 예측할 수 없는 이 야생의 생명체 앞에서 나는 가만히 숨죽이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고래상어와의 안전거리는 5미터. 하지만 그 안전거리를 지키지 않는 건 내가 아니라 고래상어라는 사실. 두툼한 입술과 커다란 입을 벌리고 다가오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는데 이미 나는 안전거리를 지키지 못해서 제지를 당하고 혼난다. 가까이 다가오면 나는 알아서 헤엄쳐서 더 멀리 도망가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가이드 아저씨들한테 너무 가까이 갔다고 혼나니까...
먹이를 먹기 위해서 커다란 입을 벌리면 엄청난 물이 한꺼번에 소용돌이처럼 들어가고, 작은 먹이만 먹고 나머지 물은 아가미를 통해서 배출이 된다. 이 과정을 실제로 눈 앞에서 볼 수 있다는 건 정말로 행운이다. 이 엄청나게 커다란 생명체가 만타레이와 똑같이 플랑크톤이나 새우젓을 먹이로 먹는다는 것이 정말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가만히 고래상어를 바라보고 있으면 단추 구멍같이 귀여운 눈을 마주칠 수 있는데 어찌나 귀여운지 심쿵! 만타레이를 보았을 때와 같은 무서움 보다는 귀여웠던 기억이 더욱 생생하다. 어쩌면 생김새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만타레이를 보았을 때는 외계 생명체 같은 느낌이었는데, 고래상어는 정말 커다란 몸에 비해서 겁이 엄청 많고 호기심도 많고, 눈도 귀여웠던 착하고 신비로웠던 만화 주인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버킷리스트 달성! 세부 오슬롭 고래상어 투어.
다음 버킷리스트를 달성하기 위해 나는 다음 여행을 또 그렇게 계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