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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뜨고 TTGO Aug 14. 2019

골목에서 길을 잃고 싶은 도시, 스페인 론다

#1

론다에 들어서자 흐리던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고 숙소에 도착할 무렵에는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던 날씨는 완전히 사라졌다. 날씨가 맑아서였기도 했지만 스페인의 여느 도시와 확연히 다른 느낌이 론다를 감싸고 있었다. 눈부시게 빛나는 햇살의 지중해의 어느 바닷가에 있으면 더욱 어울릴 것 같은 도시였다. 언덕 뒤에 자리잡은 도시는 흰색 그대로였다.


가까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카메라를 꺼내 골목을 누비며 돌아다니고 싶었다. 마음이 다른데 쏠리면 눈 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걸까? 그 많던 주차장이 다 어디 갔는지 같은 길을 몇 번이나 돌고나서야 차를 세울 수 있었다.


온통 흰 벽의 마을은 어느 골목으로 들어서도 내겐 천국이었다.





#2

예약한 론다의 아파트는 오래된 성당 뒷편에 있었다. 방에 앉아 창을 열면 성당과 파란 하늘이 보일 것이라는 상상에 가슴이 콩닥콩닥했다. 숙소는 1층에 중정을 갖고 있는 특이한 건물이었다. 낡고 부족한 부분이 많았지만 긴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것처럼 편안했다. 그리고 예상했던대로 침실 창으로 가슴 설레게하는 도시가 펼쳐지고 있었다.


하늘이 다시 흐려지더니 후두둑 소리를 내며 비가 내렸다. 비가 내려도 우산을 쓰지 않고 다니는 사람이 많은 유럽의 도시에선 왠지 비를 맞아도 괜찮아, 여행이 아니면 언제 그래 보겠어라고 생각하며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비가 내리기 전에 숙소에 들어온 것에 안도하는 것을 보니 아직 여행이 부족한가보다. 피식 웃음을 지었더니 리셉션 직원이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활짝 웃는다.





#3

여름의 유럽은 역시 해가 길었다. 어두워지길 기다리다 지칠 것 같아 숙소를 빠져나와 다시 누에보 다리 방향으로 걸었다. 워낙 작은 동네라 중심가를 몇 번 왔다갔다 하다보면 지나치며 만났던 사람들을 여기저기서 계속 만나게 된다. 그러다보니 처음 지나칠 때는 단지 행인 중 하나였는데 두 번, 세 번 마주치니 눈인사를 나누게 되고 어느 커피숍에서 만나서는 원래 알고 지낸 이웃처럼 반갑다는 생각도 들었다.


성당 벽면의 조각상을 그리다가 고개를 드니 기념품 상점에서 눈인사를 했던 노신사가 엄치를 치켜세우고 웃는다.





#4

누에보 다리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가는 길에 올려다 본 하늘엔 하얀 반달이 걸려 있었다. 여전히 파란 하늘이었지만 희미하게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하는 골목은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마치 그 안으로 들어서 골목 모퉁이를 돌면 중세의 론다가 펼쳐질 것만 같았다. 곧 도시의 가로등 빛이 더 진해지고 어둠이 짙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작은 십자가 아래 카메라를 들여다보고 있는 여행자의 모습이 너무나 자유롭고 아름다워 보였다. 내 여행도 언제나 저렇게 아름다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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