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마사이마라 여행기 - 아이와의 여행편
5월이었다. 봄이 한창 무르익은 서울을 떠나 비행기를 두 번 갈아타고 우리는 막 케냐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했다. 아프리카 여행의 시작이었다.
일상에 틈이 나는 대로, 빼곡한 검은 날 사이에 빨간 날을 모아 여행을 떠났지만 아프리카 여행은 좀 달랐다. 일단 휴가와 각종 연휴를 모두 끌어모았다. 그 해 5월에는 여러 개의 연휴와 주말이 연달아 황금연휴라 불릴 만큼 긴 휴일이 있었다. 우리는 케냐 나이로비행 항공권을 예약했다. 빨간 날을 한껏 모아 붙였어도 긴 비행시간에 일정이 빠듯했고 원래는 사파리를 할 계획이 없었다. 나는 십여 년 전 혼자 아프리카에 갔을 때 이미 세렝게티에 다녀왔고, 남편은 (본인 말로는) 동물을 보러 가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했다. 아직 어린 얼이는 마냥 신이 났다. 고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갈 수 있을까. 우리는 사파리를 일정에 포함했다.
나이로비에서 사파리를 하는 지역과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나이로비에서 차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나이바샤 Naivasha 호수가 있다. 호수 내의 크레센토 섬은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배경이 된 곳으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사파리를 하게 된다. 다만 이 곳에는 기린, 임팔라, 하마 등 초식동물만 살고 있다. 나이바샤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달려가면 세계 최대 플라밍고 서식지인 나쿠루 Nakuru 호수가 있다. 호수 주위를 분홍빛으로 물들이며 내려앉은 수십만 마리의 플라밍고를 볼 수 있는 곳이다. 탄자니아 국경과 인접한 곳에는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을 볼 수 있는 암보셀리 Amboseli 국립공원이 있다. 헤밍웨이가 이 곳에 머물며 ‘킬리만자로의 눈’을 집필했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널리 알려진 국립보호구 마사이마라 Masai Mara가 있다. 나이로비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드넓은 초원지대로 케냐에서 가장 많은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는 곳이다. 국내에는 세렝게티가 언론에 자주 소개되며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실은 거대한 하나의 땅으로 탄자니아 쪽을 세렝게티, 케냐 쪽을 마사이마라라고 부른다. 역사가 그은 반듯한 국경선 위로 동물과 마사이족은 자유로이 흩어져 살아가고 있고, 사파리를 하다 보면 우리 역시 그 선을 넘나들게 된다.
우리는 마사이마라로 가기로 했다. 이동시간이 길긴 하지만, 다양한 풍경과 동물을 보고 싶었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시기’였다. 우리가 떠나는 5월이 케냐의 우기였던 것이다. 동물들은 우기와 건기에 따라 물과 풀을 찾아 지역을 오가며 이동한다. 마사이마라 여행 성수기는 대이동이 이루어지는 7-8월이라고 한다. 여행시기를 바꿀 수 없었던 우리는 그냥 마사이마라로 가기로 했다. 도착하니 공기는 촉촉하고 바람이 선선하게 불었다. 한 번씩 비구름이 몰려와 폭우를 흠뻑 쏟아내고 이내 깨끗하게 개었다. 덕분에 장점도 있었다. 성수기가 아니어서 붐비거나 복잡하지 않았고, 날씨는 쾌적했으며, 무엇보다 모기가 없었다. 십여 년 전 건기의 세렝게티를 여행하는 동안 말라리아 약을 먹으면서 밤마다 모기와 전쟁을 벌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 큰 장점이었다.
차를 타고 나이로비를 출발해서 대여섯 시간을 달려 마사이마라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출발한 지 꼬박 24시간 만이었다. 마사이마라 사파리 투어는 보통 여행사를 통해 진행한다. 숙소에서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미리 현지 업체를 검색하여 원하는 일정으로 예약을 했다. 투어에는 대부분 마사이마라까지 왕복 이동과 입장료, 일정 중 숙소와 식사, 운전과 가이드 등이 포함된다. 몇 년 전 방영된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편처럼 다른 국립공원에서는 차량을 렌트하여 직접 운전하는 경우도 많지만, 마사이마라에서는 셀프 드라이브를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너무 넓어 길을 잃기 쉽고 동물은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사이마라 사파리는 온통 지평선뿐인 초원에서 이루어진다. 지프차나 뚜껑이 열리도록 개조된 마타투 matatu를 타고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쉼 없이 오프로드를 달린다. 현지 가이드는 다른 차량들과 무전을 주고받으며 표지판도 없는 거친 평야를 노련하게 가로질러 동물을 찾아간다. 오프로드를 운전하는 것도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이 능숙하다. 당시에는 며칠 전 쏟아진 폭우로 곳곳에 웅덩이가 파이고 길이 유실되었는데, 한 사파리 차량이 진흙에 빠지자 곧 다른 사파리 차량들이 무전을 받고 달려와 힘을 합쳐 그 차량을 끌어내기도 했다.
투어는 코스와 숙소, 인원과 기간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나이로비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만에 마사이마라로 올 수도 있고, 열기구를 타고 둘러보는 것도 가능하다. 숙소는 주로 롯지나 텐트에서 지내게 되는데, 이것 역시 비용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롯지에서 지냈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이고 이동시간이 긴 만큼 숙소는 편안하고 아늑한 곳을 선택했다. 모든 식사는 롯지 내에서 뷔페나 코스요리로 완벽하게 제공되었고, 수영장이 있고 밤에는 공연이 진행되었다. 오래전 여행에서는 마사이 마을 근처의 텐트에서 잠을 잤다. 화장실이나 샤워시설은 없었고, 머무는 기간 내내 지프차에 싣고 간 들통에 담긴 물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해가 지면 불빛이라곤 모닥불뿐이었다. 여러 도시와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실상 가장 부유한 사람들과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어디를 가나 비슷하다. 오지에 가도 호화로운 고급 숙소가 있고, 부유한 도시 한복판에도 구걸을 하는 이가 있다. 그 가운데에 놓인 기회가 다양하고 두터운 곳이 여행을 하기에도, 살아가기에도 좋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프리카는 중간에서 선택할만한 여지가 충분치 않다. ‘평범하고 무난한’ 숙소가 많지 않다는 의미다. 우리는 안전하고 편안한 여행을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했다. 이것은 고스란히 여행의 부담이 되지만, 아프리카 여행의 특징이기도 하다. 보통 일정 대비 높은 비용이 든다. 물론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그 외에도 아프리카 여행이 가진 특징이 있다. 앞서 언급한 긴 이동시간이 그러하고, 예방접종도 필요하다. 치안이나 위생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면 사파리는 어떨까. 우리는 다음 날 하늘이 어슴프레 밝아올 무렵 이른 아침을 먹고 마사이마라로 달려 나갔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 위로 태양이 떠오르자 그 땅에 살고 있는 진짜 주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린 듯 우아한 곡선을 가진 톰슨가젤이 곳곳에서 풀을 뜯었고, 그림처럼 서 있던 기린이 달려왔다가 이내 멀어졌다. 얼룩말이 선연한 자태를 드러내고, 버팔로가 바위처럼 우직하게 서있었다. 코끼리 가족이 우리를 지나쳐 걸어가는 것을 보고 환호하다가, 해질 무렵에는 치타가 수풀 틈에 누워있는 것을 차의 시동을 끄고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아기 사자 여럿이 강아지처럼 뛰어노는 사자 가족을 만났을 때는 우리 셋 모두 사진을 찍을 생각조차 못하고 숨죽이며 들여다보았다. 사파리에서는 동물을 만질 수 없다. 놀라게 하거나 먹이를 주거나 가는 길을 막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우리는 그저 멀리서 발견하고 곁으로 다가가 바라보다가 탄성이 담긴 인사를 하고 조용히 멀어졌다. 나는 사파리가 두 번째고, 남편은 동물을 안 봐도 된다고 했던가? 우리는 내내 할 수 있는 가장 격한 감탄과 감동으로 모든 동물을 만났다.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하늘에 닿아 탁 트인 땅 위를 마음껏 달리는 것도 신나는 경험이었다. 우리 셋 모두 아이가 되었다. 우리는 뚜껑을 열고 달리는 차 안에서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마주 보고 깔깔 웃었다. 그리고 그 땅의 외부인답게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돌아왔다. 어디서도 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누군가 어느 여행지에 대해 물으면 나는 종종 이렇게 대답한다.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야. 다 똑같아. 괜찮으니 걱정 말고 가보라는 말도 덧붙인다. 마사이마라에 다녀와서도 질문을 많이 받았다. 거기는 어때? 아프리카 사파리는 어땠어? 이번에는 대답한다. 거기는 달라. 사람도 있지만, 동물들이 살고 있어. 그리고 이번에도 같은 말을 덧붙인다. 괜찮으니 걱정 말고 꼭 가보라고.
아,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 빠트렸다. 현지에서는 ‘사파리’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는다. 우리가 의례히 생각하는 사파리라는 표현 대신 ‘게임 드라이브(Game Drive)’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럼 사파리는 무슨 뜻이야? 물었더니 대답이 돌아왔다. 사파리는 스와힐리어로 ‘여행’이라는 뜻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