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썩은 잡채를 먹었다

감사와 자유, 후각이 사라진 세상에서 마주친 것들

by 염띠


아이들에게 줄 음식이 너무 뜨거울 때, 의식을 치르듯 직접 먹어보는 버릇이 있다. 일단 한입 먹어 보고 시간을 끌며 식히면서, 그다음엔 입술에 대 온도를 잰 뒤 아이들에게 먹이는 것이다.

두 달 전쯤 토요일 점심도 그랬다. 아이들에게 밥을 차려주려고 잡채를 데웠는데, 너무 뜨거웠다. 그래서 그날도 그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숟가락으로 밥을 넉넉히 떠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잡채를 훌러덩 얹어서 휘휘 감아 한 입 크게 넣었다. 호빵의 뜨거운 팥소가 혀에 닿은 듯 "허~ 허~" 소리를 내며.


여보, 지금 뭘 먹고 있어?


아내가 정색을 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 표정은 마치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베어그릴스가 벌레를 먹는 모습을 봤을 때랑 비슷해 보였다.


아내는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이라도 당한 것처럼 황망한 얼굴로, 잡채 그릇을 빼앗아 얼굴 가까이 가져가더니 그대로 코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이내 측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내는 잡채가 상했다고 했다.


그것은 썩은 잡채였다.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다는 데 나는 몰랐다.

이렇게 썩은 걸 아이들한테 먹일 뻔했다고?


그런데,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아마 아이들은 나보다 먼저 썩은내를 맡고 아내처럼 코를 움켜쥐었을 것이니까.


나는 사실 4월 중순부터 후각 기능이 상실된 상태였다.




# 사람냄새는 사람의 냄새다.

내가 냄새를 잘 맡지 못한다는 건, 사실 썩은내 같은 강한 냄새가 아니라 의외로 매우 약한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보통 새벽에 일어나 잠든 아이들의 머리칼을 한번 쓰다듬고 안아주면 아이들의 기분 좋은 냄새가 은연중에 코를 툭툭치곤 했는데, 그 행복한 노크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당황스러웠다. 그 자리에서 심폐소생술을 하듯 잠이 든 아이의 머리칼에 코를 대고 피톤치드라도 빨아들일 기세로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긴급 처방된 '냄새 소생술'은 실패로 돌아갔다. 기대했던 아이 냄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냄새가 제거된 아이들은 졸지에 아동복 마네킹처럼 삭막하게 느껴졌다. 문득, 마네킹에 사람 냄새를 넣으면 사람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거란 생각까지 들었다. 흔히 우리가 사람냄새, 사람냄새. 이런 말 여기저기서 훈훈한 의미로 많이 쓰는데, 정말 우리 아이들에게서 사람냄새가 안 났다. '사람냄새'라는 말은 관념적 표현이 아니라 실체적, 물리적 표현이라는 사실을 후각을 잃고 나서야 깨닫게 됐다.


# 세상과 단절된 '코머거리'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혹시, 내 코는 정상인데 아이들이 문제는 아닐까. 괜스레 곤히 잠든 아이의 눈꺼풀을 열어 보고, 가슴에 귀를 대봤다. 심장은 착실하게 뛰고 있었고, 눈꺼풀을 만지자 아이도 뒤척거리며 반대 편으로 획 돌아누웠다. 아이들은 정상이었다. 그냥 내가 비정상이었다. 정확히는 내 코가 비정상이었다. 흔히, 청각과 시각 등에 비해 후각이 사라지는 건 인지하기가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나도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그랬다. 냄새는 그냥 있으나 없으나 그런 거겠거니 하고 살았는데, 막상 당해보면 시각과 청각만큼이나 영향이 크다는 걸 바로 알 수 있게 된다. 삶에 미치는 답답함과 불편감이 귀에 물이 들어갔을 때의 먹먹한 느낌만큼이나 강력하다. 우리가 흔히 평소에 아무 냄새가 안 나고 있다고 느꼈던 상황은 실상은 엄청난 세상의 공기 냄새, 이른바 '화이트 센트(white scent)'를 쉴 새 없이 맡고 있었다는 사실. 부처의 깨달음처럼 불쑥 다가온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이 좋은 이유는 들을 음악이 있으니까 다른 소리를 제거해주는 게 좋기 때문인 것이지, 만약 아무 음악도 없이 모든 소음이 전부 차단된다면 마치 우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답답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무 냄새조차 못 맡는 '코머거리'도 코가 너무 조용해서 복장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 눈과 귀의 대체 근무, 두려워서 지치다

'코 먼 자들의 도시'는 '눈먼 자들의 도시' 만큼이나 두렵다. 냄새가 사라지면 내 삶을 노리고 있는 위험과 만나게 된다. 냄새가 사라진 그날, 그 순간부터 시각과 청각을 지팡이 삼아 이 험한 세상을 헤쳐 가야 한다는 사실에 직면한다. 나의 방귀 냄새가 심하다는 것도 코를 막고 방에서 뛰쳐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눈으로 알았고, 국 냄비가 졸아서 타기 일보 직전이었다는 사실은 덜덜 거리는 냄비 뚜껑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만 알 수 있었다. 만약 방귀 냄새나 냄비가 아니라 그것이 유독가스나 화재였다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이 계속 똬리를 틀고, 삶의 전반에 불안이 도사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면, 의식적으로 눈과 귀가 예민해진다. 경계 태세가 강화된다. 나를 지켜주던 방패 하나가 사라지니 다른 감각기관이 초과 근무를 하는 것이다. 다른 감각기에 날을 세우고 살면 체력 소진도 빨라지고, 일상에 금세 지친다. 나는 온몸에 모래주머니를 차게 된 것처럼 쉽게 번아웃이 되었다. 순전히 냄새를 못 맡는 것 때문에.


# Literally 무미건조한 일상


쾌락도 사라졌다. 먹는 재미. 냄새가 사라지면, 맛도 사라진다. 과학 시간에 배운 대로 세 치 혀로는 5가지 맛만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다가오는 것이다. 과학책은 옳았다. 혓바닥은 거들뿐. 겪고 보니, 세상의 수만 가지 맛은 다 코로 맡는 것이었다. 일단, 갈비구이는 불맛과 육향이 사라진다. 갈비에서 이 둘을 빼면 뭐가 남겠나.

' 갈비구이 - ( 불맛 + 육향 ) = 닭가슴살' 이런 공식이 성립한다. 모든 고기가 닭가슴살처럼 아무 맛이 없어졌다. 식감에 따라 어떤 고기는 지우개를 씹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에일 맥주에서는 소주에 물을 탄 것 같은 맛이 났고, 와인은 청하 같았다. 커피는 쓴 물약을 먹는 것 같았고, 우유는 쌀뜨물 같았다. 심지어 흰쌀밥도 맹탕이 됐다. 진기가 빠져나간 찐 밥, 심할 때는 식혜 밥알을 건져 올린 것 같은 쭉정이를 먹는 기분이 들었다. 이럴 때는 매운맛과 짠맛이라도 넣어야 내가 살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평소보다, 정확히는 후각이 살아있을 때 보다 소금을 많이 넣었다. '나는 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를 확인이라도 하듯이 더 짜게, 더 맵게 먹었다. 이런 변화를 체험하고 나면 노인들이 주로 짜게 드시는 게 단순히 기호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후각이 망가졌기 때문이란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나는 우리나라 성인병과 소화기 질환의 원인은 잘못된 식습관이 아니라 망가진 후각 때문일 수도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있었다.


# 이재명과 홍석천, 이연복을 다시 보게 되다


인간은 상대적 동물이다. 나의 시련을 내 힘으로 극복하지 않고, 남의 힘으로 이겨내더라.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을 보니 힘이 났다. 나만 그런 게 아니야. 슬퍼마. 나를 위로하는 것이다. 일단, 나랑 비슷한 분들이 많이 보였다. 임신부는 외출하면 임신부만 보이고, 군인은 외출하면 군인만 보인다더니. 그러고 보니 대학 때 댄스동아리를 할 때 나는 길거리에서 무용수를 꽤 많이 만났다. 일반인들은 아마 무용수를 만났는지 모를 테지만 무용 신발을 담는 신발주머니, 체형, 걸음걸이, 발끝을 오무리는 유연성을 보면 춤추는 사람이란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또, 사회부 기자 시절에는 종로경찰서 맞은 편의 한 카페에 가면 나는 저 사람이 기자인지 아닌지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수첩을 들고. 전화기를 붙들고. 어리버리한 표정. 혹은 능숙한 표정. 혹은 거만한 표정. 다 기자들이었다. 그런데, 후각이 망가지니 후각이 망가진 사람만 눈에 띈다. 식당에 가서 차나 음식을 먹기 전에 코를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는 사람, 그리고 설렁탕 같은 음식에 후추나 소금을 조금 많이 뿌리는 사람. 커피 대신 주스를 마시는 사람. 내 눈엔 후각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보였고, 그중 80% 정도는 확신이 왔다. 힘드시죠? 멀리서 마음속으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유명인 중에도 후각 장애 환자가 어찌나 눈에 잘 띄던지. 이재명 경기도지사, 방송인 홍석천 씨, 이연복 셰프 모두 후각이 상실됐다는 사실도 시나브로 알게 됐다. 그 사람들을 보며, 그래! 나도 저렇게 잘 살 수 있어. 이렇게 나 혼자 내 어깨를 두드려줬던 것이다.



# 언어의 불완전성을 깨닫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후각이 조금씩 돌아오면서 벌어졌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스테로이드를 코에 들이부어서 인지, 한 달여 만에 조금씩 냄새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렇게라도 후각이 조금이나마 돌아왔으면 기뻐할 법도 한데, 내가 문제라고 생각한 이유는 다시 맡게 된 냄새가 바로 내가 예전에 맡던 냄새와 달랐기 때문이다.

나에겐 뇌에 강렬하게 각인된 몇 가지 냄새가 있었다. 갓 지은 밥에 버터를 녹였을 때, 딸기잼 뚜껑을 열었을 때, 햅쌀로 밥을 지어 뜸을 들일 때, 빵 집에서 빵을 갓 구워내고 있을 때. 에스프레소가 추출되자마자. 이런 기분 좋은 냄새들은 내가 뇌에서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냄새였다. 비록 후각이 마비되어도 이 냄새는 머리로 기억하는 그런 각인된 향기. 내 비록 냄새는 못 맡지만 문자 그대로 '뇌피셜' 냄새는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전형적인 냄새들이 내가 알던 냄새와 달랐다. 차라리 냄새가 안 날 때는 그런가 보다 했을 텐데, 냄새가 나긴 나는데 약간씩 다르게 나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햇빛에 블라인드를 치면 그 블라인드에 가려, 줄무늬 그림자 틈새로만 해가 든다. 나에게 돌아온 냄새라는 것도 마치 그런 느낌이었다. 남들은 블라인드가 없이 온전하게 햇빛을 받아들이고 있는데, 나는 그림자에 가려진 줄무늬 빛을 받아들이고 있는 느낌. 내 후각세포를 통해 들어오는 냄새가 군데군데 잘려나간 듯 느껴졌다. 그러니까 똑같은 딸기에서 나던 딸기 냄새가 '줄무늬 딸기 냄새'로 바뀐 것이다. 설명하기가 어렵다. 쉽게 말해, A가 A'이 된 것이다.


처음엔 답답했다. 이건 원래 이 음식의 냄새가 아닌데, 뭔가 부족한데. 딸기의 실루엣은 느껴지지만 질감까지는 다가오지 않는 듯한 애매한 냄새였다. 한동안은 머릿속에서 A와 A' 사이에 선을 긋고 살았다. 원래 냄새가 아닌 냄새라는 걸 의식하면서 계속 언젠가 나머지 냄새가 회복될 거란 주문을 외우고 그냥 버텨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선긋기 투쟁은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겐 '줄무늬 딸기향'도 그냥 딸기향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내 뇌가 딸기는 A'라는 냄새라고 적응하기 시작했다. 내 후각이 이제 달라진 것이다. 달라졌다는 사실조차 인지 하지 못할 만큼 적응이 된 것이다. 아마도 내가 지금 맡고 있는 딸기향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맡고 있는 딸기향과는 다른 향임에 분명하다.

재미있는 건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딸기를 먹으면서 아내는 A라는 향을 느끼고, 나는 B라는 향을 느낀다. 둘 다 다른 향을 느끼고 있지만 우린 각자 이걸 딸기향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대화에는 문제가 없다. 우린 서로 다른 냄새를 느끼고 있지만 이건 저마다의 '딸기향'이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B라는 향기를 아내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답답했다. 가슴이 막혀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너무나 불완전하다. 인간의 언어라는 것은 자신이 느끼는 걸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냥 자기가 아는 걸 머릿속에 그리고, 말은 서로 합의된 용어를 쓰는 관계. 그래서 처음엔 이렇게 생각 했다.


' 응 그러니까. 내가 맡고 있는 딸기향은 말이야. 당신이 아는 딸기향과 분명 달라. 내가 처음 알고 있던 딸기 냄새와 다르거든. 당신과 나는 지금 다른 냄새를 맡고 있어. 하지만, 나는 이것을 설명할 방법이 없어.'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것도 상당히 오만한 생각이었다. 사실 나는 아내가 무슨 딸기 냄새를 맡고 있는지 모른다. 어쩌면 아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B라는 냄새를 딸기향으로 알고 자라왔을 수도 있다. 그럼 우린 이제 같은 냄새를 맡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아내가 맡는 딸기향은 C일 수도 있다. 딸기 냄새 분자의 형태는 물리적으로 고정돼 있지만 이걸 후각세포가 받아들여 뇌에 토스해주는 형태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내 코가 삐뚤어지면서 달라졌듯이 말이다.

나는 바다색이 파란색이고, 단풍잎이 붉다고 배웠다. 그런데 극단적으로 다른 사람 눈에는 바다색이 빨갛게 보이고, 단풍잎이 파랗게 보일 수도 있다. 내가 아는 색과 정반대의 색을 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역시 소통엔 지장이 없다. 태어날 때부터 파란색은 파란색이라고 알고 자랐으니, 그게 설령 자기 눈에 보일 때는 빨갛든 파랗든 간에 그 색은 파란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모든 대화가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불완전한 행위이다. 언어 자체가 불완전하다. 대화는 하지만 서로 생각하는 건 완전히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미쳤다. 감각기가 접촉하는 대상의 물리적 실체는 동일하더라도 이걸 각자 감각세포가 받아들여 그걸 뇌가 수용하는 형태는 모두가 저마다의 고유번호를 가질 수도 있다. 이렇다면,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굉장히 어리석은 짓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엔 빨간색이 어울린다"라고 주장하거나 설득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 사람이 보는 색이 어차피 나와 다른 색을 보고 있으면 우리는 하나마나한 대화를 하고 있는 거니까. 그래서 내 생각과 다르다고 누군가를 욕할 이유도 없고, 같은 이유로 누군가에게 욕먹을 이유도 없다. 감각이 모두 다르니, 취향도 모두 다르다. 이런 차이를 바로잡기 위해 식당에 소금과 후추가 항상 마련돼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 그래서 후각을 잃은 뒤 감사를 얻었다.


나는 임사체험을 한 사람처럼 후각이 0%인 세상에 갔다가 후각이 50%인 세상에 돌아왔다. 다시 돌아온 세상은 감사한 것 투성이었다. 매일 아침 아이들의 냄새를 맡고 일어나면 그것만으로 하루에 채워야 할 감사함이 일단 가득 찬다. 그리고 출근길에 나서면 나무 냄새, 풀 냄새, 눅눅한 곰팡이와 비 냄새가 감사함을 채워준다. 이미 완충된 휴대폰에 충전기를 계속 꽂아둔 것처럼 일상의 잡냄새를 맡고 있으면 감사함이 계속 전해진다. 악취라고 다르지 않다. 흡연구역을 지날 때 나는 탁한 담배 냄새, 버스가 품어내는 매연의 매캐한 냄새는 내가 직접 보지 않고, 직접 듣지 않고도 나에게 당장 거기서 대피하라는 위험 신호를 전해준다. 악취 덕분에 나는 내 눈과 귀를 쉬게 할 수 있다. 코가 괴로우니 몸이 편안해졌다. 악취마저도 감사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매 끼니때는 오케스트라 연주에서 작은 타악기의 소리까지 잡아내는 마에스트로처럼 향신료의 작은 냄새에도 위안을 받았다. 살짝 불에 그을리고, 맛기름을 내고, 육수를 내는 행위의 특별함이 미세한 냄새를 통해 감사함을 채워주었다.


# 그래서 후각을 잃은 뒤 자유를 얻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취향에 속마음으로도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남들과 비교하지도 않는다. 어차피 서로 보는 세상이 다를 것이기에. 감상에 대한 토론은 하지 않는다. 감상을 말하고 들으면 그걸로 그뿐이다. 다만, 나와 다른 생각의 사람을 만나면 그가 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볼 따름이다. 보는 세상이 다 다르다면, 권위는 허상이다. 허상은 두렵지 않다. 더 이상 누군가의 평가에도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평가는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권위와 평가가 사라지면 자유가 찾아온다. 더 이상 노래를 부를 때 공기 반, 소리 반에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 나의 취향과 감각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그게 설령 불완전한 것이라도. 귄위자를 찾지 않는다. 나에 대한 권위는 오로지 내 머릿속에서만 내 마음속에서만 나올 수 있다.




원효대사는 선진 불교를 배우러 당나라 유학길에 오르다가 해골물을 마신 뒤에 충격을 받고 유학을 포기했다고 전해진다. 밤에 동굴에서 해골바가지에 담긴 썩은 물을 맛있게 마셨다가 다음날 구역질을 하는 자신이 하찮게 느껴져서. 그 길로, 왔던 길로 돌아가 그는 '일심(一心)'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이야기했다. 인식의 본질은 결국 한 줄기에서 나오고,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그의 사상은 그가 귄위를 버리기로 마음먹고, 자유를 얻은 이후에야 세상에 나왔다. 국사 시험을 볼 땐 그냥 달달 외웠던 것 같은데, 이젠 그가 무엇을 말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철학이 별거냐. 나는 해골물 대신 썩은 잡채를 먹었을 뿐이다.


-tti-




P.S : 후각 장애 치료 과정에서 저는 코로나 19 검사 결과 음성 판정을 받았습니다. 후각 장애 환자의 10% 미만 정도는 원인 불명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잭과 로즈, 그리고 노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