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를 소방서에서 했다. 나는의무소방원이었다. 현역으로 군 복무를 마친 분들이나 군생활을 안 해본 분들은 의무소방원 출신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군대보다는 편해 보이고, 주로 도시에서 근무하다 보니까 혹시 공익근무요원은 아니냐고 되묻기도 한다. 진짜 몰라서 묻는 경우도 있고, 알면서 이죽대려고 묻는 경우도 있다. 질문의 의도가 어떤 유형이든 간에 그런 질문을 받으면 난 보통 이렇게 되받아친다.
"군대는 실전 경험은 못해보고 훈련만 하는데. 저는 2년 내내 실전에 투입됐죠."
허풍은 아니다. 나는 상황실에서 지휘차를 타는 보직을 맡았다. 지휘차는 중간 규모 이상의 화재가 발생했을 때, 혹은 인명사고가 발생했을 때 지휘관을 태우고 출동한다. 지휘가 필요한 현장, 당연히 중요한 현장이다. 그래서 소방서에서 지휘차가 출동했다는 건 인명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사회부 기자생활을 할 때도 화재나 구조현장 취재를 할 때 , "혹시 지휘차 나갔나요?" 이렇게 물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것은 "지금 상황 심각합니까?"라는 뜻이기도 했다. 이렇게 출동하는 현장들은 100% 실전이었다. 하루에 얼추 두세 번, 2년이면 얼추 수백 번은 출동했다. 내가 의기양양하게 답할 수 있는 이유였다. 보통 내가 이렇게 받아치면 그들은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이런 질문을 툭 던진다.
"음... 그럼 시체도 봤어?"
이번엔 실전 경험의 강도를 떠보는 것으로 응수한 것이다. 이 질문만 놓고 보면 질문자는 실전 난이도의 극한을 '시체 목격'으로 상정한 듯 보인다. 군인들도 시체를 보는 경험이 많지는 않을 테니. 그러면 나는 다시 이렇게 멍군을 놓는다.
"시체는 숱하게 보았지만 더 무서운 것도 많이 보았습니다."
군생활 허풍이 낚시꾼 허풍에 맞먹는다지만, 정말이지 시체보다 더 무서운 것이 두 개나 더 있었다. 지난 6월 마지막 주 앵커로그 <철도기관사> 편을 보다가 그것이 생각났다.
시체보다 '더' 무서운 것
찌는 여름 날씨였다. 오후에 삼성역 구 한전 건물에서 소방 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쌔-액 하는 소리가 났다. 굉장히 높은 음의 호루라기 같은 소리였다. 그리고 이어, 커다란 충격음이 났다. 추락사고였다.
이미 쇼크가 온 상태였다.
떨어진 동료는 몸을 떨고 있었고, 손바닥은 불에 덴 듯 그을려 있었다. 훈련 중 레펠 강하를 하던 동료 소방관의 안전장비가 빠졌던 것인데,호루라기 소리가 아니라 추락할 때 로프가 손에서 미끄러지면서 나는 마찰음이었다.떨어지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로프를 붙잡기 위해 손에 힘을 주면 줄수록, 로프는 더 요란한 소리를 냈던 것이다.
멀찌감치서 훈련을 지휘하던 구조대장부터, 로프 밑에서 확보줄을 잡아주고 있던 말단 의무소방원까지.현장에 있던 동료들이 모두 보았다. 사망 장면을 직접 목격한 것이다.
그간, 현장에서 본 시신들은 말이 없었다. 몇 번 보다 보면 그냥 마네킹이거니 무감각해지기도 했다.그런데, 누군가 고통스럽게 삶을 내려놓고 있는 과정은 마네킹이 아니었다.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는. 보는 이에게도 막다른 골목 같은 고통이었다.
그 장면은 한동안 아지랑이처럼 눈 앞에 아른거렸다.
시체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것
싸늘한 한기가 느껴지는 늦가을 밤이었다. 새벽 1시를 조금 넘겼던가?분당-수서 간 고속화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보통 신고자가 119에 전화를 걸면, 남산에 있는 119 수보대에서는 그걸 받아 정리한 뒤 다시 관할 소방서에 알려주는데, 그 무전을 내가 직접 받았다. 수보대에서는 현재 사망사고가 난 것 같다고 했다. 신고자가 주차돼 있던 트레일러를 승용차가 들이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장 지휘차 출동을 지시했다.
조금 이상했다. 신고를 한 사람이 있다는 건, 누군가 살아있다는 것이고. 신고할 정신이 있다는 건 중상은 아니란 얘기였다. 보통 중상을 입으면 신고할 정신도 없어서 주변 목격자들이 신고하거나 도움을 청하기 마련이다.
혹시 트레일러 앞에 누가 있다가 치인 건가? 오만 상상을 하면서 현장으로 출동했다.사고 현장은 멀리서도 한눈에 보였다. 귀신같이 알고 나타난 견인차가 쏟아내는 경광등 불빛이 사고 현장을 울렁거리며 헤집고 있었고, 그 빛 덕분에 힐끗힐끗 사고 차량들이 보였던 것이다.
짙은 어둠 속에선 육중한 트레일러 한대가 갓길에 우직하게 버티고 주차돼 있었고,그 뒤를 준중형 승용차 한 대가 들이받은 채로 있었다.특히, 조수석이 구겨진 채 트레일러 밑동에 처박혀 있는 상태였다.
다행히, 운전석은 멀쩡해 보였다. 그림자도 보였다. 운전석의 그림자는 미세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누군가 몸을 움찔거리고 있었다.
'저 사람, 살아있다.'
구조대원들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나도 함께 무전기를 들고 뒤쫓아갔다. 현장 상황을 살펴, 적정 소방인력을 추산한 뒤 지휘관 판단을 받아 적정 인원만 남기고 다시 소방서로 돌려보내도록 무전을 치는 게 내 임무 중 하나였기 때문에 보통은 현장을 함께 살피러 간다. 일단, 움직이는 그림자에 안도하며 조깅을 하듯 가볍게 뛰고 있었는데, 멀찌 감치서 먼저 도착한 구조대원들의 표정이나 몸짓이 좀 이상했다. 평소대로라면 당장 유압장비로 문짝을 뜯고 구조를 시작해야 하는데, 그들은 마치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듯 운전석 안쪽을 바라보며, 잠시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왜 구조를 안 하는 거야?'하며 나도 가까이 가는 순간.
아까 그 운전석의 그림자가 울부짖는 소리가 귀청을 찢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 직후 운전석 유리창을 들여다본 순간을 난 아직도 기억한다.
운전석에는 멀쩡하게 생긴 남성이 충혈된 눈으로 울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구조대원은 영문을 몰라 갸우뚱거리고 있는 나에게 손가락으로 안쪽을 한번 가리킨 뒤, 다시 손가락 2개를 펼쳐 보이며, 고개를 숙이듯 저었다. 안에 1명이 아니라 2명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조수석에는 그림자가 보이질 않았다. 운전자는 멀쩡했고, 조수석에 타고 있던 그의 여동생은 몸통만 남아있었다.
어두운 도로에서 갓길에 주차된 트레일러를 보지 못하고 달리다가 뒤늦게 핸들을 순간적으로 틀었는데, 운전석은 간신히 피하고 조수석만 그대로 빨려 들어갔던 것이다. 운전석도 일부 구겨지면서 운전자는 다리가 끼어 탈출하지도 못하고,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동생을 보며 망연자실한 상태로 울부짖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소방서 생활을 통틀어 그 다친 곳 없이 멀쩡한 운전자가 가장 무서웠다.정확히는, 눈 앞에서 죽음을 목격한 사람의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앞선 동료의 죽음이 아지랑이처럼 눈 앞에 아른 거렸다면, 후자는 눈을 감아도 보였다.
그래서 밤이 무서웠다.
이런 고통을 일상적으로 겪는 사람들이 또 있다. 바로 철도기관사 분들이다. 앵커 로그에서 이 분들의 트라우마를 다룬다고 했을 때, 이런 경험탓인지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그래서, 매주 출연하는 라디오 코너에서 이 분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투신 사고를 목격한 철도노동자만 지난 5년간 240여 명. 여기에 고라니, 새, 멧돼지까지. 기차에 부딪혀 죽는 동물들도 생명인 점을 감안하면 이들은 며칠에 한번 꼴로 죽음을 마주하며 살고 있다. 정확히는 죽음의 결과가 아닌 죽음의 과정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심지어 앵커로그를 촬영하던 날에도 새가 날아와 부딪혀 그 자리에서 죽었다.
'이 분들은 단순히 시체를 본 목격자들이 아니다.'
누군가가 내 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그 모습을 보고 괴로워하는 이의 모습까지 봐야 하는 일터. 이것이 일상인 일터. 그것은 필경 시체보다 무섭고, 시체보다 훨씬 더 무섭다. 땀샘까지 망가지는 이유일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