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부 고용센터, 아침 8시 40분이 되자 긴 줄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온 분들이었다. 오전 9시를 넘어서자 곧게 늘어서던 줄은 한번 접히더니, 놀이공원의 바이킹 대기줄처럼 구불구불 이어졌다. 곧 건물 앞 대로변이 넘치기 시작했다.
모두 일자리를 잃은 분들이었다. 이렇게 줄을 서는 분들은 이곳 북부고용센터에서만 평일 기준 평균 1000명에 육박한다.
화요일 날 갔었는데, 월요일에는 사람이 더 몰린다고 한다.
위 사진 속 긴 줄에 합류한 50대 실직자 분을 어렵게 섭외했다. 일용직에 몸 담고 계셨던 분이었다.
조심스럽게 마이크를 갖다 대긴 했는데, 일자리를 잃은 분에게 당장 무슨 질문을 건네야 할지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그만 경찰서에서 수습기자들이 피의자에게 많이 던지는 질문을 덜컥 해버리고 말았다.
지금 심경이 어떠세요?
질문을 던지면서 아차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상투적인 질문이었다. 너무 뻔한 클리셰였다. '일을 못하니 힘들죠'같은 뻔한 답변이 나올 것만 같았다. 스스로 실수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다음 질문을 뭘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에, 예상을 깨는 답변이 나왔다.
"저는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일자리를 잃었는데, 그는 연신 감사하다고 했다. 이렇게 줄을 서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것만도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실업자가 실업급여를 받는 게 왜 감사한 일일까. 알고 보니 비정규직 가운데, 실업급여 수급 대상자는 절반이 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자신은 상위 50% 안에 든 행운아라는 의미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나마 고용보험에 가입된 사업장에 취직했더라도 뒤늦게 자신도 모르게 자격이 박탈되는 경우도 있었다. 파견직 노동자의 경우, 용역업체를 거쳐 비정규직 형태로 일터에 나가서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중간에 용역업체가 자신도 모르게 바뀌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일터는 동일한데 소속만 바뀌는 것이다.
이 경우 과거에 소속돼 있던 업체는 고용보험 가입 사업장인데, 소속이 바뀌면서 가입이 안 된 업체로 가게 되면 바로 수급 자격을 상실한다. 여기에 해당하는 분들은 자신이 실업급여 대상인 줄로만 알고 급여를 신청하러 왔다가 뒤늦게 대상에서 제외된 사실을 알고 허탈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고개를 숙이고 발길을 돌려도 담당자가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고 했다. 규정 상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아예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은 분들도 있다. 셔틀버스 노동자 같은 특수고용직들은 외견상 자영업자로 분류돼 사실상 직장에 소속돼 일하면서도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추락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있는데 안전망이 받아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4개월째 월급을 받지 못한 한 특수고용 노동자는 울분을 토하며 매 끼니 라면을 먹고 있다고 말했다.
넉 달째 월급을 받지 못한 셔틀버스노동자 분, 울고 싶다고 하소연 하시더니 인터뷰를 마친 뒤 라면을 드시러 갔다.
비정규직도 아니고, 특수고용 노동자도 아닌데 실업급여를 못 받는 경우도 있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그만둔 한 20대 직원이 그런 경우였다. 직장 내 괴롭힘에 못 견뎌 사직서를 냈는데, 자발적 퇴사자로 간주돼 역시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자발적 퇴사 여부를 회사가 판단하도록 되어 있다 보니 이런 촌극이 빚어진 것이었다. 일부 기업에서 "실업급여를 못 받게 해 주겠다"는 협박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이유였다.
실업급여는 보너스가 아니다.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하는 사회 안전망이다. 이 안전망에 구멍이 뚫려 줄줄 새고 있지만, 이런 분들은 통계에 잡히지 않고 있다.
방송 당시, 실업 급여 지급액은 월 9993억 원. 역대 최대 액수로 1조 원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이후, 1조 원의 벽은 맥없이 무너졌고 지난달엔 1조 1103억 원을 기록했다.매달 슬픈 최고치를 찍고 있다.
실업급여, 매달 1000억 원 가까이 늘면서 최고액을 경신하고 있다. (팩트맨 : 남형석 기자)
해고가 살인이 맞다면, 상당수를 누락시키고도
'살인 통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것이다.
일자리를 잃은 분들의 상당수는 가족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살인 통계'는 '단절 통계'이기도 하다. 바로 대화의 단절. 그래프가 치솟을수록 대화가 줄어드는 가정도 매달 최고치를 찍고 있는 셈인 것이다. 통계 밖의 가정까지 포함하면 아마 훨씬 더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