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공이산(賢公移山)

<로드맨> '뜨는 제주, 닳는 제주'편, 용눈이오름 취재 후기

by 염띠

아흔 살 된 노인이 매일 흙더미를 조금씩 나른다. 왜 힘들게 옮기냐고 물어보니 이렇게 조금씩 날라서 산을 옮기겠다고 주장한다. 이 일화에서 유래한 말이 '우공이산(愚公移山)'이다. 직역하면 '어리석은 사람(愚公)'이 산을 옮긴다는 뜻. '우공'은 여생이 얼마 안 남았는데 이런 어리석은 일을 왜 하냐는 물음에 내가 다 못하면 내 아들이 하면 되고, 내 아들이 다 못하면 손주가 하면 된다고 맞받는다.



긍정대마왕 노인의 이야기를 녹여낸 사자성어가 바로 '우공이산'이다. ( 출처: 네이버이미지 )


바보 같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야기의 결말에는 반전이 숨어 있다. 이 말을 엿들은 신(神)은 우공의 의지에 감탄해 결국 산 2개를 번쩍 옮겨준다. 우공이 생전에 꿈을 이루고 만다. 그래서 '우공이산'이란 말은 산 자체를 옮기려는 어리석은 행위에 방점이 찍힌다기보다는 목표를 향해 묵묵히 나아가는 노력과 끈기의 상징으로 더 많이 소비된다. 어차피 산 자체를 옮기는 것은 신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니까.


그런데, 제주에 갔더니 산 자체가 옮겨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도 꽤 빠른 시간 안에 말이다. 사실이라면 우공이산 이야기의 대전제가 흔들리고 있는 셈이었다.


신화에나 나올 법한 일이 현실이 되고 있는 제주,

도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바로, 용눈이오름 이야기다.

용눈이오름은 제주시 동쪽에 있는 해발 247미터 높이의 산이다. 서울의 관악산이 해발 630미터쯤 되니까 관악산의 반에도 못 미치는 크기라고 보면 된다. 실제로, 오름은 '작은 산'이라는 뜻의 제주 방언이다. 제주도 자체가 화산지형이다 보니 이런 오름들, 따지고 보면 모두 화산 구멍의 흔적들이다. 그 흔적은 저마다 개성을 품고 있어 이름이 각기 다른데, 특히 이 곳은 용이 누워있는 모습 같기도 하고 위에서 보면 용의 눈처럼 보인다 하여 한자로는 '용와악(龍臥岳)'이라고 표기하기도 하고, 우리말로 '용눈이오름'이라고 부른다. 제주의 오름은 멀리서 보면 경주의 왕릉처럼 보이기도 한다. 부드러운 봉우리 위해 풀들이 흐드러져 아름다운 초원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용눈이오름은 정상에 오르면 성산일출봉과 우도 앞바다까지 조망할 수 있어 관광명소로도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용눈이오름이 어디론가 옮겨지고 있다고?


용눈이오름의 초원에서 방목 중인 말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 로드맨 직촬 )


직접 확인해보기 위해 환경단체 관계자와 함께 용눈이오름에 올랐다. 처음엔 야트막한 언덕을 따라 5분 정도 걸었는데, 별 다르게 훼손된 곳이 눈에 띄지 않았다. 특별히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산책로 주변에 흙바닥이 좀 더 보이는 정도였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요. 흙은 흙이다. 산속에 흙바닥이 보이는 게 무슨 뉴스라고. 그런데, 가다 보니 탐방로의 길이 점점 넓어졌다. 그러면서 흙이 점점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흙의 빛깔도 다채로워졌다. 황토색 흙이 검은색으로 변하더니? 다시 붉은색으로. 오름은 추상화 붓터치처럼 울렁거리고 있었다.


마치 기름때가 묻은 것처럼 검은 부분이 보인다. 오름이 패여 화산재 토양이 드러난 상황이었다.


파여 있는 흙바닥은 원형탈모가 일어난 부위처럼 점점 넓어졌다. 사실, 가을에 벌초하러 가서 할머니 봉분에 이런 곳이 있으면 떼를 심었더랬다. 이거 뭔가 문제가 있어 보였다. 게다가 이것은 알고 보니 그냥 흙이 아니었다.


제주의 오름은 크게 3겹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름을 옆에서 두부처럼 잘라 단면을 살펴보면 겉면에 식물이 자라는 토양, 내부에 검은 화산재, 그리고 안 쪽에 붉은 화산송이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관광객들이 늘면서 사람들이 오름을 자꾸 밞으면 우선 식물이 죽는다. 그리고, 그 안쪽의 토양이 벗겨지고, 검은 화산재가 드러난 뒤엔, 마치 상처가 난 것처럼 붉은 화산송이(Scoria)가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본 추상화의 정체였다. 용눈이 오름 곳곳에 나있는 붉은 자국들. 설명을 듣고 보니 그냥 흙바닥이 아니라 살점이 떨어져 나간 붉은 선혈 자국처럼 보였다. 이거 알고 보니 뉴스가 맞았다. 오름이 피를 흘리고 있었으니까.


검은색 흙이 더 패이다 보면 붉은색 송이층이 드러난다. 이 송이는 가루처럼 바스라진다. 그래서 바람에 날려 사라지고 만다.


문제는 이 화산송이가 단순한 붉은 돌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통 우리가 흔히 오르는 산의 경우에는 밑으로 파다 보면 내부에 기반암이라는 단단한 암석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 땅이 파이다가 막힌다. 그리고 훼손은 거기서 일단 멈춘다. 사람이 좀 밟는다고 암석이 쉽게 부서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제주 화산송이는 이렇게 생겼다. 구멍이 송송 뚫려있다. ( 출처 : 네이버이미지 )


그러나, 오름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화산송이의 경우 손으로 만져도 쉽게 부서진다. 화산송이를 직접 손으로 집어서 눌러봤다. 바로 바스러졌다. 마치 굳어 있는 설탕 덩어리 같은 느낌이다. 일견 돌처럼 단단해 보이지만 조금만 힘을 가해도 가루처럼 뿔뿔이 흩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이 화산송이를 관광객들이 밟게 되면. 그것도 여러 사람이 여러 날에 거쳐 지속적으로 밟으면 이 화산송이는 가루처럼 부서지고 만다. 이 가루들은 어디로 갈까. 바로, 제주의 특산물인 바람을 타고 그대로 흩어진다고 한다. 아름다운 제주의 오름이, 지금 막 자정이 된 신데렐라의 호박마차처럼 가루가 되어 먼지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용눈이오름 정상부의 모습 풀은 고사하고 군데군데 움푹 패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운데, 철골도 드러나 있다.


정상부로 갈수록 훼손은 더 심했다.

관광객의 기념사진 촬영 명소이기도 한 정상부엔 풀은 고사하고, 흙과 화산재. 그리고 그 토양층을 뚫고, 붉은 속살까지 드러나 있었다. 속살이 드러나다 못해 아예 파이기 시작해 등산로를 조성할 때 발판을 고정해둔 철골까지 흉물스럽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치 '노인과 바다'에서 상어 떼에 물어 뜯긴 청새치처럼 앙상한 모습이었다. 눈으로 어림 잡아 보니, 대략 한뻠 정도 이상 정상이 깎여 나간 상태였다. 이 정도면 대략 수년에 걸쳐 훼손이 이뤄졌겠구나 생각했는데, 환경단체 관계자는 손가락 다섯 개를 펼치며, 이런 변화가 불과 다섯 달 만에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5년이 아니고 5개월. 믿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환경단체에서는 주기적으로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어서 보관하고 있었다. 증거가 있으니 믿어야 했다. 환경단체에서 당장 용눈이오름의 탐방로 개방을 중단하고, 긴급 복원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이유였다. 다시 말하지만, 산에서 파인 흙은 다시 새 흙을 구해 덮으면 되지만, 한번 파인 오름은 바람에 날리면 그대로 사라진다.


불과 다섯달 만에 저런 철골이 용눈이오름 정상부 곳곳에 드러나 있었다.



코로나 19로 해외여행 길이 막히면서 제주를 찾는 관광객은 점점 늘어, 어느덧 작년 수준을 거의 회복하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앞으로 코로나 19는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고, 제주는 제2공항까지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 섬의 문은 점점 열리고, 섬을 찾는 손님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용눈이오름처럼 부상을 입은 자연도 함께 늘어날 것이다.


그래서, 그나마 해외여행객이라도 줄어든 지금이 어쩌면 마지막으로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한번 잃은 자연은 다시 복원할 수 없기 때문에.


제주를 사랑한 사진가 故 김영갑은 용눈이 오름을 누구보다 사랑했다. 그가 지금 모습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우리 후손들이 기억하는 용눈이오름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가 방문했던 날, 평일 궂은 날씨였지만 용눈이오름의 주차장은 만차였다. 용눈이오름이 주목받은 건 한 예능프로그램 때문이었다고 한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힐링 명소로 소개되고 난 뒤, SNS 명소가 되었고. 똑똑한 관광객들은 명소를 검색해서 찾아오고 있었다. 사실 지금 이 시간에도 똑똑한 손님들은 용눈이오름의 절경을 보며 힐링하기 위해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있을 것이다. 통신 기술의 발달은 정보를 평평하게 만들며 모두를 똑똑하게 만들어줬지만, 그 현명함은 이제 오름을 병들게 하고 있었다.


이제, 힐링이 필요한 건 오름이다.


만약 지금까지 '우공'이 살아있었다면 제주에 가서 기자회견을 열었을지 모른다. 똑똑한 사람들이 실제로 산을 옮기고 있으니 이제는 사자성어를 다시 써야 한다고 말이다.

'우공이산'이 아니라 '현공이산(賢公移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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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오늘의 3행시는 용.눈.이로 할까요?


(용)케도 버텨왔구나

(눈)치없이 밟고 있어서 미안하다.

(이)해하는 걸론 부족하고, 실천할게


굿모닝 FM 장성규입니다. <로드맨이 간다>

8월 3일 '제주의 눈물 편' 방송 中에서...



-tti-


https://youtu.be/R_49NujTl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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