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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 관중들의 착각

인천국제공항공사 보안직원 정규직 전환 파동에 부쳐

by 염띠
"어느 날, 인사팀에서 해고를 통보했습니다."


2명의 자녀가 있는 A는 20년간 다닌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잘렸다. 가족들을 볼 낯이 없었다.


당연히 가족들에겐 말하지 못했다고 했다.

가방을 들고, 정장을 차려 입고 거리를 떠돌았다.

한 때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던 장면이었다.


그때 삐삐가 지-잉 하고 울렸다.

해고 일주일 만에 인사팀에서 연락이 왔다.


"어, 인력을 갑자기 줄였더니 사람이 모자라서 그런데, 다시 출근해 줄 수 있나? 책상도 그대로 있으니 그냥 오면 돼."


없던 일자리가 다시 생겼는데,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없다. 바로 다음에 이어진 말 때문이었다.


"하던 일은 그대로 하면 되는데, 월급은
원래 받던 것의 절반 정도만 나갈 거야."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했다. 밥은 먹어야 했기에. 아니 먹여야 했기에. 다음 이 말에 그는 소처럼 일했다.

"은행이 괜찮아지면 그때 다시 올려주든지 할게"


이것은 1997년 이후, 국내 4대 시중은행 중 한 곳에서 벌어진 일이다. 당시 IMF는 I'm fired의 줄임말이었다. IMF의 권고에 따라, 기업들이 대대적인 인건비 감축에
나서면서 시작된 이른바, '한국형 비정규직'의 시작이었다.


1998년 1월 12일 MBC 보도 ( 출처: 구글 이미지 )


1997년 12월 3일, KBS 보도 (출처: 구글이미지 )


돈 못 갚은 사람이 빚 독촉에 시달리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있는 일이지만 빚쟁이가 가족들에게 차등적으로 밥을 먹이라고 할 권리까진 없는 법이다.


차라리, 밥솥을 가져갔으면 가져갔지.


그런데, 그런 일이 공공연하게 벌어졌다. 집에서 부모가 밥을 퍼줄 때야 본인 밥을 덜고 아픈 손가락들에게 나눠줬겠지만 기업에선 이렇게 미운털이 박힌 사람부터

반 공기씩 배식을 받았다.


초기 화이트칼라 비정규직은 교내 장기자랑에서 강제로 무대에 떠 밀린 왕따처럼 이렇게 내부의 따가운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소수자로 무게를 버텨냈다. 비록 반공기 나마 가족들에게 밥은 먹여야 했기에 무대 공포증을 억지로 이겨냈던 것이다. 뒤늦게 학자들이 IMF의 요구 사항은 과도한 조치였다고 지적했지만, 그 사이 우리 사회 전반으로 비정규직은 확산됐다.


화이트 칼라에서 블루칼라, 인천공항 보안요원까지.


기업들은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직원들이 하던 일을 똑같이 하는데, 인건비가 절반으로 줄다니' 오병이어의 기적 같은 일이었다.


공적자금 수혈까지 받은 그 은행은 향후 실적이 개선됐지만, 남은 밥은 가족들에게 돌아간 게 아니라 배당 형태로 바다 건너 외국인 주주에게 돌아갔다. '주주 자본주의'는 무대에 떠밀린 '왕따'들의 비어있는 밥그릇, 반공기는 끝내 채워주지 않았다. A도 결국, 정규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사회생활을 마무리했다.




바로, 이 문제를 취재한 적이 있었다.


나는 당시, 해당 은행의 고위 관리직을 지냈던 B를 어렵게 만났다. 우리는 마치 정보기관에서 접선을 하듯 청계천 다리에서 만나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눴다.


본론으로 바로 들어갔다.


나는 그에게 밥이 남아도는데, 도대체 왜 그때 반공기를 채워주지 않았던 건지 물었다.

그가 고민 끝에 대답했다.


"은행 실적은 좋았습니다만 지점에서 1년에 1명씩만 정규직 전환을 했어요."


모순되는 말이었다.


정규직 전환을 1명이라도 해줬다는 변명인가.

지금 잘했다는 건가. 순간 답변 의도 파악이 잘 안 됐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요. 정말 열심히 해요.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
솔직한 말로 실적이 좋아지는 게 눈에 보입니다.


그 말에 비로소 머릿속에 하나의 그림이 그려졌다.


로마의 원형경기장.


A가 섰던 무대는 장기자랑 무대가 아니라 거대한 콜로세움이었다. 그 게임은, 원형경기장 안에

'비정규직'이라는 맹수를 풀어놓고, 누가 강한지 증명해야 살아남는 데스 매치였다.


B는 로마의 황제처럼 1년에 1명만 찍어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렸던 것이다.


콜로세움에는 28개의 맹수 전용 엘리베이터도 있었다고 한다.


자신도 말해놓고 멋쩍었는지 이런 말도 덧붙였다.


"그렇게 1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요.
거짓말처럼 그 사람의 실적이 떨어집니다.
일을 열심히 안해요."

"그래서 다 전환하면 실적이 떨어질 것 같은 겁니다. 그래서 그랬어요."


그는 변명 대신, 오히려 진솔한 자기 고백을 내놨다.

하지만, 그건 당연한 소리였다.


맹수에 시달려 도망만 치던 사람이 간신히 구조되면, 당연히 휴식이 필요할 테니까.

구출된 사람은 안도하고 잠시 숨을 돌린 뒤엔, 자연스럽게 함께 관중이 되어

다음 생존자를 구경했을 것이다.


그것은 스포츠였다.

문제는 이런 콜로세움이 우리 사회 곳곳에 수만 개, 수십만 개 있다는 것.

그나마 이런 콜로세움마저도 하나둘 셔터를 내리고

'맹수 더비'에 참가할 기회마저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


어찌 보면 콜로세움은 이제 사회 전체로 확대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콜로세움을 넘어 거대한 사파리가 되어가는 것 같다.


안전지대는 점점 줄고 있다. 사파리는 철갑 차량 안에 타고 있어야 사파리지, 차량 밖에 나가는 순간 세렝게티가 된다. 그래서 청년들에게 이 사회는 세렝게티다.

서글픈 삼단 논법을 곱씹던 와중에 그들은 인천국제공항공사라는 초호화 콜로세움에서
전격적으로 맹수를 없애기로 했다고 하는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 야생에서 사자에게 이렇게

치열하게 쫓기고 있는데..'


1900명이 단번에 구조된다는 소식에, 인류애 보다 분노가 먼저 치밀어 오는 건 어찌보면 인지상정일 것이다. 인류애적 가치가 생존권 보다 우선순위에 올 수는 없으니까.

바로 이것이 "정규직 전환엔 찬성한다. 하지만 공개경쟁 채용을 해달라"는 주장의 본질일 것이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논점을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관중석으로 올라와도 황제랑 똑같이 먹진 못한다. "는 식의 항변이 대표적이다.

연봉을 깎아내린다고 위로가 될 문제인가.


지금, 문제 제기를 하는 대다수의 청년들은 또 다른 콜로세움의 관중들이 아니다.

콜로세움 무대에도 들어올 기회 조차 얻지 못한 야생의 도망자들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맹수를 없애자는 담론이다.

방향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맹수를 동시에 없애지 못한다면 그것도 극히 일부에서만 진행된다면

그건 누군가에겐 더 큰 절망이 된다.

콜로세움 한 곳을 일시적으로 해방시키면, 오히려 야생에 남은 자들의 불안감은 더 커질 것이기에.


그래서, 우선은 위로가 필요하다. 세렝게티에서 살아남기가 얼마나 힘든지 보듬는.

그리고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맹수를 없애 나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세렝게티의 청년들은 콜로세움 관중석에 올라본 적이 없지만, 콜로세움 관중들은 대부분 세렝게티에 있어본 경험이 있다.


그 경험을 쉽게 잊고 지내는 것 같다.


만약 이번 인천공항공사의 정규직 전환이 사회 변화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희망이 있었다면 이 정도로 반발이 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변화에 대한 기대감보다 막차를 타지 못했다는 불안감이 더 컸다는 건 청년들이 비전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미 포기한 것이다. 어차피 모두가 구조될 수 없으니 공정한 룰이라도 적용해 달라고 외치고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저성장 시대의 비극이다.


지금이라도,

위로와 비전을 제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력의 시작은 그들이 처한 상황에 공감하는 것이고,

공감의 시작은 나를 포함한 콜로세움의 관중들이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번 인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파동의 본질이 단순한 청년들의 시기 질투가 아니라는 것.


그것은 생존투쟁이다.


-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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