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세종대왕이 부럽지 않은 이유

행복의 조건에 관한 개똥철학의 수학적 증명

by 염띠
행복(H)의 함수가 있다면 이럴 것 같다.
H = a / d

a : 가진 것 (acquired asset)
d : 욕망 (desire)


내가 갖고 싶은 것. 즉, 나의 욕망(desire)을 분모에 두고, 내가 가진 것(acquired asset)을 분자에 두는 것이다. 쉽게 말해, 내가 100개를 갖고 싶은데, 50개만 갖고 있다면 나의 행복도는 50%, 0.5가 된다. 만약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이라면, 분자에 50개만 더 채우면 100% 즉, 1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열심히 살아보기로 한다. 자, 그럼 열심히 살아서 50개만 더 모아보자.


그런데 이 함수가 묘하다.


분자가 커질수록 분모는 더 커져버린다. 내가 50개를 더 가져서 100개를 채우면 비로소 1이 되어야 하는데,

뒤를 돌아보면 어느새 내 분모는 300이 되어 있는 것이다. 50/100에서 100/300이 됐다. 0.5에서 0.33으로 오히려 행복이 줄었다. 나는 분명히 더 노력했는데, 그래서 더 많이 가졌는데 불행하게도 불행해졌다.


그렇다. 분모 d는 상수가 아니라 변수였다.

d는 a와 양의 상관관계를 가진 내생변수를 품은 또 하나의 함수인 것이다.


가진 게 많아지면 갖고 싶은 게 더 많아진다.

아반떼를 사니 그랜저가 생각나는 것도, 그랜저를 사니 제네시스가 생각나는 것도 이런 이치겠지.



심지어 무언갈 사기도 전에 분모가 확 커져버리는 경우도 있다. (출처: 다음 블로그)


다시 말해, 욕망(desire)은 취득한 자산(acquired asset)에 관한 함수이다. 따라서, d = d(a)이다.


특히, 가진 게 많아질 수록 욕심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때문에 d 함수의 기울기는 1보다 클 것이다.


그래서 함수를 이렇게 고쳤다.

H = a / d(a) [ 단, d'(a) > 1 ]

a : 가진 것 (acquired asset)
d : 욕망 (desire)


이런 상황이라면 a를 늘리는 것은 완전한 행복 추구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분자를 높이려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절대 1에는 도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가진 게 많아질수록 분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더 많이 가졌는데 더 불행질 수 있는 것이다. 남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재벌들이 돈을 더 벌기 위해 갖은 편법을 동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분모는 놔두고 분자만 높일 방법은 없는 것인가.


있긴 있다. 바로, 내가 가진 것(a)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모든 가치는 희소성에서 나온다. 흔한 것은 싸다. 하지만, 내 노력으로 똑같은 물건도 흔하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의미 있는(meaningful) 물건으로 바꾸면 된다. 7만 원짜리 지갑. 누가 보면 명품 지갑에 비하면 초라하고 흔하겠지만 '대학생 때 아내가 용돈을 모아 사준 지갑'이 되는 순간. 세상에 하나뿐인 물건이 된다. 마티즈는 첫 월급으로 뽑은 차. 내가 직접 커스텀한 손목시계. 나만 알 수 있는 의미부여를 통해 내가 가진 것의 값어치를 높일 수 있다.


10여년 전, 취업준비생이던 지금의 아내가 사준 지갑이다.


중저가 브랜드 등에서 유명인과의 콜라보를 통한 물건들을 만들어내는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만 원짜리 시계라도 유명인의 싸인 한줄, 유명인의 컨셉 한 가닥이 들어간 물건으로 바꿔주면 한정판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품절된다.



2013년 스와치가 팝가수 미카와 콜라보로 낸 제품, 30주년이 된 스와치와 당시 서른살이 된 미카가 손을 잡았다. 포장도 안 뜯었다. 아마 세월이 흐를 수록 가치는 올라갈 것이다



그래서 나는 a에다 '의미부여 계수' m을 곱한다. m은 정신승리 계수라고 불러도 좋다. 20년 된 차를 안 바꾸는 사람들. 첫 월급으로 산 싸구려 전자시계를 차는 사람들. 자신도 모르게 쉴 새 없이 m을 곱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볼 땐 낡은 소형차도,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 깃든 차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정신승리를 하면 조용히 나의 자산이 불어난다.


그래서 '정신승리 계수'를 넣어서 함수를 고쳐봤다.

H = ( m x a ) / d(a) [ 단, d'(a) > 1, m > 0 ]

a : 가진 것 (acquired asset )
d : 욕망 (desire)
m : 의미부여 (meaningful)


나도 이 함수에 따라 싸구려 시계를 모으면서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고 있다. 한 20개 정도 모았는데, 저마다 자잘한 이유와 의미가 숨어 있다. 그래서 이것들이 단순한 '싸구려'는 아니다. 가격은 불과 몇만 원 짜리지만 그중엔 롤렉스와도 절대 안 바꿀 시계도 있다. 아우라가 깃들면 바나나도 작품이 되는 세상이다. 우리 집에 나만의 '바나나'를 차곡차곡 늘려나가려고 노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MBC 브랜드스토어가 문을 닫게 되면서 단종돼, 마지막 남은 문화방송 쿼츠시계였다. 선택2020 개표방송 때 착용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분모를 줄여라."

내가 가진 것에 '정신승리 계수'를 아무리 곱한 들, '바나나'는 어디까지나 바나나일 뿐이다. m을 높이는 것만으로, 행복의 궤를 달리하는 혁명적 변화를 이끌어 내기는 어렵다. 그럼 계속 욕망의 분모에 휘둘린 채 우리는 만족을 모르고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법정 스님은 무소유를 내세웠다. 무소유를 통해 a를 줄인다면, d도 줄어들 테고. 적어도 앞서 살펴본 0.5가 0.33이 되는 역설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법정스님의 해법도 한계는 있다. 우리는 성직자도 아니거니와 a를 줄인다고 행복의 절대치가 올라가진 않는다. 다만, 감소하는 걸 늦출 뿐이다.


이 때문에 진정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분모 d를 적절히 통제해야 가능하다. 즉, 욕심(d)을 버려야 행복지수가 올라가는데, 욕심을 덜어내는 건 감사(gratitude)한 마음에서 나온다.


d1이 태생적 욕심이고, d2가 후천적 욕심이라면 d2 =욕심(d1) - 감사(g)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함수를 다시 고쳤다.

H = ( m x a ) / ( d(a) - g )

[ 단, d'(a) > 1, m > 0 ]

a : 가진 것 (acquired asset)
d : 욕망 (desire)
m : 의미부여 (meaningful)
g : 감사 (gratitude)


자, 이제 a와 무관하게 g값을 높이기만 하면, 마음 수행을 통해 욕심을 줄이면 행복은 올라갈 것이다.

이론상 감사한 마음을 되새기는 수행을 무한대에 가깝게 늘리면, 아마 행복도 무한대로 수렴할 것이다.


그럼 어떻게 g값을 올려야 할까.



"누구나 부러워하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다."


나는 g값을 부러움에서 찾는다. 누군가에게 부러움(jealousy)을 살 때, 감사(gratitude)가 나온다.


"불행하게도 나는 돈이 없다."


"불행하게도 나는 친구가 없다."


"불행하게도 나는..."


부러움의 씨앗은 불행이다. 우리는 내가 부러워하는 대상만 보고 산다. 한마디로, 위만 본다.

위만 보고 내려오면 나의 불행과 눈이 마주친다.

그런데, 어딘가에는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반드시 누군가는 있다. 이 사실을 자각하는 것,

얼마나 아래까지 내려다볼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행복의 시작이고, 하한선이다.


나보다 위인 사람과 아래인 사람이 반드시 한가지 개념 징표로 고정되리란 법은 없다.

돈은 가졌지만 건강은 잃은 사람, 건강한 사람이 볼 땐 아래에 있고, 돈 없는 사람이 볼 땐 위에 있다.

이처럼 위와 아래는 기준에 따라,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또, 내가 얼마나 관점을 바꾸느냐에 따라 위에 있는 사람도 내 밑으로 둘 수 있다. 동일한 대상을 놓고도 위만 보면 나의 불행이 보이지만, 아래를 보면 남의 불행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비로소 내가 보인다. 그리고 g값이 올라간다. 즉, 감사(gratitude)는 누군가 날 부러워한다는 사실(jealousy)을 돌아보는 데서 시작된다. g는 j에 관한 함수인 셈이다.


즉, g= g(j)이다.


타인의 불행에 공감하면서도 "내가 아니라 다행이다"라는 묘한 감정을 느껴본 경험. 혹은 '강 건너 불구경'이라는 속담이 나온 배경도 결국 g의 함수에 관한 담론들이다. 타인의 불행을 살피고 보듬을 수록 '부러움'을 발견할.가능성이 높아진다. 부러움은 감사를 낳고 이를 매개로 내 욕심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기부 마라톤을 이어가는 기부 중독자 분들도, 타인의 아픔에 끊임없이 연대를 보내는 분들도 자신도 모르게 g값을 매개로 행복이 올라가는 일종의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경험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함수를 이렇게 고쳤다. g자리에 '부러움' 변수 j를 추가해 g(j)로 치환했다.

H = ( m x a ) / ( d(a) - g(j) )

[ 단, d'(a) > 1, m >0, g'(j)>0 ]

a : 가진 것 (acquired asset)
d : 욕망 (desire)
m: 의미부여 (meaningful)
g : 감사 (gratitude)
j : 부러움 (jealousy)


나는 세종대왕이 부럽지 않다.


그래서 나는 나보다 덜 가진 사람.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볼 때는 물론이고, 나아가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을 만날 때도 저 사람은 나의 어떤 점을 부러워할까 생각한다. j를 보는 것이다. j는 감사의 씨앗이 되고, 행복의 기반이 된다.


예전에 국회의원까지 지낸 모 재벌 오너를 취재했을 때도, 이런 생각을 했다.


"저 사람은 적어도 내 젊음은 부러워하겠구나."


또, 학문이 깊은 교수님을 만나 뵐 때는

그 깊이와 해박함에 압도당하면서도 이렇게 생각했다.


"적어도 공부하시느라 재즈댄스 동아리는 못해보셨겠구나"
( 모교의 재즈댄스 동아리는 2000년대 초반에 생겼다. )

이런 생각을 떠올리며, 정신 승리를 한다.


심지어, 조선왕조실록을 읽을 때는

"세종대왕은 망고 빙수를 못 드셔 보셨겠구나",


"해시계, 물시계만 모았지. 나처럼 오토매틱, 쿼츠를 종류별로 모아보진 못하셨겠구나."


"한글을 만들기만 하셨지. 이렇게 잘 쓰이는 건 못보셨겠구나"


"세종대왕님, 정신승리해서 죄송합니다 ;;;"


그래서 결과적으로,

"통시적으로는 내가 조선시대 왕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구나"라는 엉뚱한 생각도 가끔 한다."


그래서 나는 세종대왕이 부럽지 않다.


정신승리, 내가 해보니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

m깂도 j깂도 모두 정신승리를 하면 커진다.


'정신 승리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을 너무 길게 했다.



-tti-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