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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센터에서 바퀴벌레를 줬다"

기본소득 담론이 꿈꾸는 미래는 유토피아 인가

by 염띠

기본소득, 받아보니 좋으시죠?

서구사회에서 기본소득은 영어로 Universal Basic Income, 줄여서 UBI라고 부르고 있다. 보편적으로(Universal) 지급한다는 건 조건 없이(Unconditional) 지급한다는 것과 같기 때문에 Universal의 U를 다시 Unconditional이라고 바꾸어 부르는 학자도 있다. 엎어치나 메어치나 UBI다. 즉, 나라에서 아무런 '조건 없이', '보편적으로' 매달 일정 금액을 국민들이 일을 안 해도 통장에 꽂아준다는 것이다. 실업자들이 돈을 받게 된다는 점에서 구직급여와도 대비되지만, 구직급여는 실업 기간 중에도 구직활동을 해야만 받게 되고 일을 하면 돈을 받을 수 없다. 또, 지급 기간도 한정돼 있으며 고용보험에 가입된 사람들이 주된 수혜 대상이다. 한마디로, 조건부 지급이다. 반면, 기본소득은 내가 구직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기한에 상관없이 지급된다. 앞서 말한대로 무조건적이다.


대선이 가까워오면서 여야를 막론하고, 이 기본소득에 대한 도입론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이제 우리 국민은 이걸 받으면 어떤 기분일지 대충 안다. 뜻하지 않게 코로나19가 덮치면서 전국민이 재난 기본소득을 받아 봤기 때문이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재난 기본소득을 추가로 지급하겠다고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고, 국가 차원에서 2차, 3차 재난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재난 기본소득도 어디까지나 기본소득이다 보니, 이제는 "아 대충 이런 것 이겠구나" 감이 잡히고, 굳이 재난이 없어도 받으면 좋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막연한 유토피아적 환상에 빠지기 쉬운 게 사실이다. 실제로 받아보니 좋지 않았나. 한우값이 오르지 않았나.


사실, 기본소득 담론은 시간문제였다.

지난 2016년 겨울쯤, 금융위원회에 출입하던 시기에 한 경제 관료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전기차 관련 보험 제도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바로 기본소득 얘기였다. 어찌보면 동문서답이었다. 나는 하드웨어에 대해 묻고 있었는데, 그는 소프트웨어에 대해 답한 것이다. 내가 물어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따로 있다는 듯이.


"불과 몇 년 안에 기본소득 논의가
우리 사회에서도 불거질 겁니다.

그래서 내부에서도 구상 수준이지만
이 문제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뜻밖이었다. 이 시기는 핀란드가 세계 최초로 기본소득 실험을 시작하기도 전이었다. 2016년이면 보수정권이었고, 기본소득은 당시 내 생각엔 일종의 '사회주의적 발상(Socialist concept)'이었다. 지금이야 기본소득 논의가 익숙한 듯 보이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당히 급진적인 정책, 생소한 담론이었다. 당시에 어느 정도로 파격적인 느낌이었냐 하면 당시 나는 기본소득 논의는 동성결혼 허용과 맞먹을 정도의 파장이 큰 사회적 담론일 거라 여길 정도였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자율주행자와 AI로 가속화될 '로봇 혁명'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전면적 자율주행이 시행되면 운전기사가 사라질 것이고, 기사들이 가입한 보험도 사라질 것이다. 버스회사도 없어지고, 택시회사도 망한다. 보험사도 줄어들 수 밖에 없다. 하다 못해 기사식당 마저도 없어질 수 있고, 이런식으로 관련 산업 생태계가 붕괴되면서 수백 만의 실업자가 양산될 것이다. 운송 노동자들의 경우, 특히 운전 기술 이외에 대체할만한 기술 육성이 쉽지 않다고도 했다. 버스 안내원 자리를 안내 방송이 대체하고, 전화 교환수가 사라진 것처럼 로봇 혁명이 운송업계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줄 것이란 얘기였다. 이 때문에, 이른바 로봇세(Robot tax)가 필수적이며 이를 인간에게 어떻게 분배할지가 우리 사회의 주요 담론이 될 것이라는 말도 했다. 플랫폼을 장악한 소수의 자본가만 살아남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기본 소득을 타 먹고 살아야 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불과 3~4년 만에 그의 말 중 일부는 현실이 되었다. 식당의 안내원, 아르바이트생은 키오스크로 대체되고 있고, 택시 기사들은 '타다'라는 운송 플랫폼이 나오자 생계의 위협에 내몰려 거리로 뛰쳐나왔다. 비록 지금은 타다 서비스가 사실상 중단됐지만 만약, 타다가 계속 남아있었더라면 아마 카니발은 추후 '무인 카니발'로 자연스럽게 바뀌었을 것이다. 타다가 사라지긴 했지만 나는 잠시 사라진 것으로 본다. 자율주행차의 출현과 함께 플랫폼은 언젠가 다시 가동될 것이다. 일시적인 유예라 보는 것이 합당하지 택시 산업이 계속 존치하리란 보장은 없는 것이다. 플랫폼을 위한, 플랫폼에 의한, 플랫폼의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에.


이런 와중에 코로나 19 사태가 터진 것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국민들이 기본소득의 개념을 몸소 경험하면서 또 시기가 대선 국면과 맞물리면서 공론의 장이 좀 더 빨리 마련된 것뿐이지 사실 이 논의는 시간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 관료도 코로나19까지 예측하진 못했을 것이다. 그는 '로봇혁명과 인간소외'에서 기본소득의 불씨를 찾아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리테일 붕괴'도 결국 원인만 다를 뿐 결과적으로는 그의 예측과 동일하다. 핵심은, 민생파탄이다. 국민의 삶이 파탄의 궁지에 몰리면 기본소득의 논의가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아직 로봇이 일자리를 빼앗지는 않았지만 대신 코로나19가 일자리를 빼앗아 다수가 궁지에 몰렸고, 그 결과 지금 우리는 기본소득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정치인들을 목격하고 있다. 이 때문에 나는 '국민 대다수가 궁지에 몰리면 기본소득 담론이 나올 것이다'라는 그의 대전제는 옳았다고 생각한다.

서울시가 만든 포스터, 응급상황엔 수액이 반드시 필요하다.


기본소득 그래서 얼마나 줄 수 있나요?
"간신히 먹고살 만큼"


액수가 궁금했다. 택시 기사님들이 그전에 벌던 월급만큼 받을 수 있는 건지. 로봇이 낼 세금은 얼마나 될지. 그는 이렇게 답했다. "월급을 보전하는 것은 불가능할 겁니다.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할 뿐인 거죠." 예단하긴 어렵지만 많아 봐야 월급의 반토막 정도를 받기도 힘들 것 같다고 했다. 물론, 소설적 상상이었다. 다만, 정책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늘공(직업공무원)'의 사견이라 마냥 무시할 수도 없었다. 내가 되물었다. "일종의 기초생활수급비를 준다는 건가요?" 이런 식이라면 절대 빈곤층에게 최저 생계비를 지원하는 기초생활수급비나 기본소득이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비슷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일자리를 가진 상태에서 기본소득을 받는 형태의 일종의 가욋돈이라면 모르겠지만 일자리가 없는 상황에서 받는 기본소득은 기초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금액 정도일 것이다.

실제로, 핀란드에서 실업자 2천 명을 대상으로 기본소득 실험을 할 때 지급한 돈은 매달 560유로, 명목상 우리 돈 70만 원 정도였다. 핀란드의 빅맥 가격은 우리 돈 9천 원 정도 한다고 한다. 북유럽의 높은 간접세와 물가를 감안하면 실질은 우리 돈 50만 원이 채 안 되는 돈일 것이다. 미국 오클랜드에서 실험적으로 지급했던 기본소득도 1000달러, 우리 돈 100만 원 정도였고 코로나 19로 지급된 대한민국의 특별 재난 지원금도 4인 가구 기준 100만 원, 1인당 25만 원 수준이다. 직업이 없다면 빠듯하게 먹고살만한 돈이다. 기본소득만으로 살아가는 삶, 넉넉한 삶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꼬리칸의 사람들, 프레카리아트(Precariat)


서울대 유기윤 교수 연구팀이 미래 사회를 예측한 보고서가 큰 충격을 준 적이 있다. 플랫폼 사회가 가속화되었을 때, 인간소외의 끝은 어디인가. 그 연구의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바로 2090년 미래 계급 전망이다. 지금의 주력 경제활동 인구는 인공지능이 맡게 되면서 인공지능이 3계급으로 대체되고, 기존 3계급은 4계급으로 주저 앉는다는 것이다. 4계급 밑에 다른 계급은 없다. 하층민 단순 노동자가 99.997%에 이르게 되리라는 것이다. 사회의 극소수가 받게 되면 기초생활수급비가 되지만, 99.997%가 받게 된다면 아마도 이것은 '기본소득'이 될 것이다.


손흥민, 김연아, BTS가 아닌 한 우리 모두 프레키아트가 되지 않을까?


이와 비슷한 상상이 이미 영화로 나온 적이 있다. 바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다. 설국열차는 계급에 따라 순서대로 탑승하도록 되어 있다. 맨 앞칸에는 클럽이랑 정원까지 완비돼 있지만, 꼬리칸에 탄 대다수의 하층민들은 최소한의 생계만 보장받는다. 연양갱처럼 생긴 '프로틴 블록'을 받아먹고 산다. 바퀴벌레로 만든 식량이다. 플랫폼과 AI가 장악한 미래 세상에서 기본소득은 바로 '프로틴 블록'이다. 바퀴벌레다.

영화 설국열차 중에서 꼬리칸에 탑승한 한 아이가 프로틴 블록을 먹고 있다. ( 출처 : 네이버 이미지 )

설국열차에서는 이렇게 생긴 프로틴 블록을 꼬리칸 시민들에게 나눠준다 (출처: 네이버 이미지 )

코로나 19는 기본소득 논의를 앞당겨 주었다. 여당뿐 아니라 야당까지 가세해 기본소득 논의에 불을 지피고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특별 재난 상황에서 기본 소득의 지급은 불가피하다. 당장 사람이 살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앞으로 직면할 기본소득의 시대는 '로봇혁명과 AI'라는 새로운 '특별 재난'까지 가세된 형태가 될 것이다. 코로나19는 백신과 치료제가 나올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두번째 특별재난은 그런 가능성 마저도 전혀 없다.


그래서 나는 기본소득이 반갑지 않다.

기본소득의 시대가 빨리 찾아온다는 건 그만큼 인간소외가 가속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본소득을 내가 받게 된다면, 그 시점에는 아마도 내 직업이 이미 사라져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기본소득을 받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건 그만큼 우리 주변에 힘든 삶이 많아진다는 의미일테니까. 그래서 피할 수는 없겠지만 가급적이면 늦게 맞이 하고 싶다. 영화 <설국열차>의 배경이 기차가 아니라 평범한 한국의 어떤 마을이었다면 봉감독은 아마도 이런 대사를 넣었을지 모른다.


"엄마, 주민센터에서 바퀴벌레 받아왔어"

-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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