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엄마 컨디션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리고 오늘 뇌에 부은 혈관을 측정해보기 위해 '조영술'이라는 걸 받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만 봤을 때는 다행히 당장 문제가 있는 건 아닌 걸로 나왔다. 지난주 처음으로 이걸 다시 검사해봐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집에 걸어가던 엄마는 나와 통화하던 중에 눈물을 훔쳤다. 흐느끼는 목소리가 귓가에 힘없이 들려왔고, 엄마 판박이인 나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전에 그 시술을 받아본 적이 있었어서 더 무섭다고 했다. 그런 엄마에게 나는 괜찮을 거라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물론 나도 두근거리고 걱정이 됐지만 괜히 울고 울적한 생각만 하게 되면 엄마가 마음적으로도 너무 나약해질 것만 같아서 밝은 목소리도 내보고 차라리 지금 발견된 게 다행이란 말만 반복했던 것 같다. 전혀 위로되지 않았는데 도리어 나를 안심시키려 '그래 괜찮을 거야~' 하는 목소리가 두려워 보였다.
얘기를 들어보니 심각한 건 아닌데 어느 정도 부은 건지 사이즈 측정하려고 진행하는 거라고 했다. 만일 수술을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머리를 직접 열고 하는 게 아닌, 혈관을 통해 치료 시술하는 정도라고 했다. 그러니 확실한 건 일찍 발견해 큰 위험을 막은 것이니 정말 운이 좋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마음을 좀 편히 했으면 했다. 계속해서 걱정만 하지 말고 차라리 다른 생각을 하기 위해 친구들이라도 만났으면 했다. 엄마는 좀처럼 의욕도 없고 잠도 안 오며 신경이 쓰이니 스트레스만 쌓인다고 했다.
"너무 안 좋은 상황까지 생각하지 말고.. 괜찮은 거라니까 맘 편히 놔. 의료진들이 그랬대 다행인 거라고.."
내가 이러면 엄마는,
"남 일이니까 그렇게 얘기하지. 검사하는 것도 무섭고.. 좋은 생각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돼."
그런 엄마와 통화하면서 조금은 답답한 마음도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 밤, 최근 들어서 내내 불면증에 시달리는 나는 새벽에 생각하는 시간들이 길어지면서 엄마를 떠올렸다. 평소에 우리 가족들은 엄마를 울집 막내라고 해도 된다며 우스갯소리를 했었다. 그래서인지 두려움도 더 심한 것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곰곰이 곱씹어 내가 엄마였다면, 이라는 상상을 해봤다. 이미 받아본 '조영술'이라는 게 일반적으로 예상 가능한 과정을 거치는 게 아니라 온 몸이 뜨거워지기도 하고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었다. 30분 이상을 어두컴컴한 수술실 비슷한 곳 안에서 고요한 침묵으로 꼼짝 못 하고 검사를 받아야 하며 통증의 정도가 높은 편이라고 했다. 그런 걸 한 번 경험해 보고는 '다신 아프지 말아야지, 건강 챙길 거야' 한지 1년 조금 지났다. 그러니 그때의 느낌이 생생했을 터. 내 앞에 영상이 펼쳐지듯 검사받으러 들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이 아른거리면서 갑자기 가슴이 조여왔다. 두근거리고 한숨을 크게 몇 번이나 내쉬어야 할 만큼 갑갑했다.
나도 가끔은 정말 하기 싫은 것들, 아니면 몸이 조금이라도 안 좋아진 것 같으면 정신 나간 듯이 마구 울기도 하고, 하기 싫다고 떼쓰고 싶기도 하다. 그놈에 책임져야 할 것들은 왜 그리도 많은지. 내가 만들어놓은 것들도 아닌데 난 왜 뭔지 모를 무게감을 가져야 하는지. 이 상황에서 도망치면 난 '어른답지 못한 행동'으로 어떤 눈초리를 받게 될지. 그냥 무섭고, 하기 싫고, 그만하고 싶다고 발 동동 거리면서 울면 누구든 와서 등을 토닥여주고 사탕발린 말로 위로도 해주며, 같이 발 동동거려줄 수는 없는 건지. 그럴 때가 있었고, 요즘에도 종종, 아니 자주 그런다.
나만 그런 줄 알았나 보다.
어렸을 적부터 봐왔던 우리 엄마는 깔깔깔 웃으며 소녀같이 새침데기 같은 모습도 있었지만, 보통은 아주 크고 강한 사람 같았다. 내가 잊어버린 물건들을 금방 찾아줬으며, 일을 하면서도 힘든 몸으로 우리에게 간식을 꼬박꼬박 해주셨고, 한 달 내내 쉬는 날 없이 일해도 저녁에 맛있는 거 하나씩 쥐어주면서 웃으셨던. 아토피가 있던 나를 위해 여기저기 낫게 할 방법들을 수소문하면서 다녔고, 비염을 고쳐주기 위해 아는 수단을 총동원하기도 했다. 생활고에 시달려 아빠와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어도 내가 다니고 싶다는 학원은 곤란한 내색 하나 없이 웃으며 보내주었고, 휴일이 있을 때면 틈틈이 놀아주셨다. (물론 우리 아빠도 단 하루를 쉬더라도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보여주기 위해 운전의 피로감을 자처하고 가족여행을 이끌어주셨다. Thank you!)
그랬던 엄마가 병원에서 받는 검사 때문에 걱정된다고 자꾸 약한 소리를 하니까 내가 순간 '왜 자꾸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스트레스를 만들까' 했던 것 같다. 나는 어른을 거부하면서도 엄마는 강인한 사람이라고 나도 모르게 오해했던 것 같다. 치과 가서 사랑니 하나 빼려고 해도 그렇게 악쓰고 소리치고 울고 싶으면서, 그거 하나도 참아야 하냐고 억울해하면서. 내 엄마는 강하고 약해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이기적이었던 내 모습에 한동안 멍해졌다.
어른이 무엇일까. 부모님과 이런 주제로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내린 결론은, '어른'이라는 가면을 쓴 사람이다. 나이가 사회적 레벨도 아니고, '나'라는 사람의 수준을 나타내는 것도 아니며 그저 자연스럽게 쌓아지는 책임, 무게, 짐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마음은 아직 어리고, 나도 양보하기 싫으며, 소유욕이 강하고, 이기적이기도 하면서, 울고 떼쓰고 싶기도 하고, 작은 일에 칭찬도 받고 싶은. 별일이 아닌 것에 흐뭇한 미소를 받는. 그런 아이이고 싶지만. 누군가가 보란 듯이 나를 방해했고 숫자가 붙어졌다. 매년 1월 1일이 되면 한층 더 성숙해야 하고 할 일도 많은데 나이에 걸맞은 가치도 갖추도 있어야 한다. 아프고 힘들어도 참는 법을 익혀야 하며 나름 잘했다고 느끼는 것들은 혼자 뿌듯해야 한다. 괜찮다는 말을 달고 살아야 하며, 어디에라도 의지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인생은 역시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거야~'라는 말을 쿨하게 내뱉어야 한다. 난 혼자가 아직 두려운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