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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종이 Nov 10. 2020

엄마와 굴로 소통하기

결혼하면 어떤 기분일까?

엄마와 굴로 소통하기

정말 요리에 재능 없는 내가 홀로서기 한지 어언 4년 만에 직접 해 먹기에 눈을 떴다. 잘 하진 못하더라도 시간 날 때마다 뚝딱뚝딱 오랜 시간에 거쳐 완성된 나의 한 끼를 보자면 은근히 힐링이 된다. 다들 굴 철이라고 하던데 나도 한 번 굴요리 좀 해볼까? 하고 쿠팡을 뒤적거렸다. 통영 굴이 350g에 할인까지 하길래 요놈이다! 하고 바로 구매했다. 가격도 좋았지만 로켓 프레쉬를 몇 번 이용해 본 결과 꽤나 실하고 싱싱하게 온다는 것이 나를 안도하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양도 적지 않아 이틀을 나누어 먹었고, 무엇보다 탱글 하니 오동통하게 살 오른 굴이 세척까지 하고 나니 참 예뻤다. 나처럼 요알못들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건 거의 해산물 요리인 것 같다. 싱싱하기만 하면 자체만으로도 맛을 내니까! 굴전 역시 별 것 없이 금방 해냈고, 술 한 잔도 제대로 마쳤다.


그래 놓고 홀로 자랑할 곳 없으니 사진 왕창 찍어 블로그도 올릴 준비를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굴 안 좋아하지? 그래도 요즘 굴 철인데 굴요리해 먹어야지!"


정말 오래간만에 요리 한 번 해놓고는 마치 당연히 이때쯤이면 해 먹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당차게 얘기했다. 조금은 황당하기도 하고, 당황할 법했던 엄마의 반응은,


"왜? 굴요리 맛있게 하는 데 있어?"


아마도 취업 후에 부모님께 하는 거라곤 매월 용돈 보내드리기와 가끔 맛난 거 사드리는 것밖에 없다 보니 내가 식당을 알아놓은 줄 아셨나 보다.


"아니 그게 아니라~통영 굴 꽤 괜찮게 팔아서 나 굴국, 굴전 해 먹었어!"


세상 자랑스러운 일인 듯 말하면서 내가 어디서 샀는지, 얼마에 샀는지 알려주었다. 그러고는 엄마도 해 먹으라며 링크까지 공유해 주었다. 그날 밤 어찌나 헛웃음이 나던지. 내가 엄마랑 주방 일에 대해서 공유를 한다고?


어렸을 때부터 엄마랑 대화는 정말 많이도 나누었지만 실질적으로 쌍방향이었던 티카 타카는 없던 것 같다. 난 아이돌 가수와 옷에 관심이 많았고, 엄만 이모들이나 집안일 얘기들로 서로에게 들려주는 식이었다. '아 그랬구나~' 이런 반응이 오가야 하는 우리의 대화에서 '어디서 산 건데? 상태가 어때? 굴 어떻게 씻었어?' 등의 진짜 소통을 하고 있다는 게 나로서는 조금 웃겼던 것 같다. 그것도 주방 일로..ㅎ


몇 년이 지난 후에 내가 결혼까지 하게 되면 엄마와 어떤 소통을 하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도 된다. 이렇게 나이를 같이 먹어가는구나 싶기도 하고, 왜인지 모르게 신기하면서 기분이 좋았다. 남편 흉을 같이 보기도 할까? 아이 키울 때 유일하게 여유를 두고 조언해줄 수 있는 육아 선배겠지? 또 새로운 먹거리로 소통하기 위해 앞으로 요리를 종종 해서 엄마한테 자랑 좀 해야겠다.


내가 했던 굴전 레시피!
큰 것들만 골라 골라~

굵은소금 두 스푼, 식초 1스푼*2회 깨끗이 세척!

씻는 건 너튜브에서 어떤 먹방인이 말했던 방식대로 식초와 소금을 넣아 살살살 뒤적거리며 같은 방법을 2회 반복했다. 그랬더니 회색 구적 물이 다 나가고 뽀얀 굴이 윤기 좔좔 흐르며 '날 드시오~' 하고 유혹하는 것 같았다. 곧장 큰 놈과 작은놈들을 골라냈다. (거의 반반? 정도 된 것 같다.) 큰 것들은 굴전을 할 예정이었고, 남은 작은 굴들은 일회용 봉투에 담아 굴국을 위해 냉동고에 넣었다. 냉장고에 넣어둬도 바로 먹으면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초짜 요리사(?)인 나는 겁이 나서 냉동고로 직행했다. 다음날 무와 배추, 애호박 넣고 해동시킨 굴로 국 끓여 먹었는데 보신탕이 따로 없었다. 쌀쌀한 겨울 연출하려 창문까지 열어두고 호로록 한 숟가락씩 즐기기~이렇게 힐링할 수 있구나 ㅎㅎ

난생처음 해 본 굴전, 대강 부쳐도 JMT

계란, 청양고추, 당근, 대파, 밀가루

굴전에는 생각보다 별게 들어가지 않았다. 굴에 밀가루를 착착 묻혀서 계란물을 바른 다음 지글지글 기름 끓는 프라이팬에 구워주면 된다. (참고로 난 집에 남은 버터에 구웠다. 그래도 꿀맛~) 계란물에는 취향껏 넣으면 되겠지만 난 파, 당근, 청양고추를 넣어 매콤한 맛과 영양가를 더해주었다. 살 찌고난 후부터는 (나이도 먹어가고..ㅎ) 그렇게 영양을 따지게 되더라는..ㅋ 어찌 되었던 계란물이 노릇노릇해지면 거기서 꺼내어 바로 흡입했다.



엄마, 이번엔 닭볶음탕 했어: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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