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린종이 Nov 10. 2020

엄마와 굴로 소통하기

결혼하면 어떤 기분일까?

엄마와 굴로 소통하기

정말 요리에 재능 없는 내가 홀로서기 한지 어언 4년 만에 직접 해 먹기에 눈을 떴다. 잘 하진 못하더라도 시간 날 때마다 뚝딱뚝딱 오랜 시간에 거쳐 완성된 나의 한 끼를 보자면 은근히 힐링이 된다. 다들 굴 철이라고 하던데 나도 한 번 굴요리 좀 해볼까? 하고 쿠팡을 뒤적거렸다. 통영 굴이 350g에 할인까지 하길래 요놈이다! 하고 바로 구매했다. 가격도 좋았지만 로켓 프레쉬를 몇 번 이용해 본 결과 꽤나 실하고 싱싱하게 온다는 것이 나를 안도하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양도 적지 않아 이틀을 나누어 먹었고, 무엇보다 탱글 하니 오동통하게 살 오른 굴이 세척까지 하고 나니 참 예뻤다. 나처럼 요알못들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건 거의 해산물 요리인 것 같다. 싱싱하기만 하면 자체만으로도 맛을 내니까! 굴전 역시 별 것 없이 금방 해냈고, 술 한 잔도 제대로 마쳤다.


그래 놓고 홀로 자랑할 곳 없으니 사진 왕창 찍어 블로그도 올릴 준비를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굴 안 좋아하지? 그래도 요즘 굴 철인데 굴요리해 먹어야지!"


정말 오래간만에 요리 한 번 해놓고는 마치 당연히 이때쯤이면 해 먹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당차게 얘기했다. 조금은 황당하기도 하고, 당황할 법했던 엄마의 반응은,


"왜? 굴요리 맛있게 하는 데 있어?"


아마도 취업 후에 부모님께 하는 거라곤 매월 용돈 보내드리기와 가끔 맛난 거 사드리는 것밖에 없다 보니 내가 식당을 알아놓은 줄 아셨나 보다.


"아니 그게 아니라~통영 굴 꽤 괜찮게 팔아서 나 굴국, 굴전 해 먹었어!"


세상 자랑스러운 일인 듯 말하면서 내가 어디서 샀는지, 얼마에 샀는지 알려주었다. 그러고는 엄마도 해 먹으라며 링크까지 공유해 주었다. 그날 밤 어찌나 헛웃음이 나던지. 내가 엄마랑 주방 일에 대해서 공유를 한다고?


어렸을 때부터 엄마랑 대화는 정말 많이도 나누었지만 실질적으로 쌍방향이었던 티카 타카는 없던 것 같다. 난 아이돌 가수와 옷에 관심이 많았고, 엄만 이모들이나 집안일 얘기들로 서로에게 들려주는 식이었다. '아 그랬구나~' 이런 반응이 오가야 하는 우리의 대화에서 '어디서 산 건데? 상태가 어때? 굴 어떻게 씻었어?' 등의 진짜 소통을 하고 있다는 게 나로서는 조금 웃겼던 것 같다. 그것도 주방 일로..ㅎ


몇 년이 지난 후에 내가 결혼까지 하게 되면 엄마와 어떤 소통을 하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도 된다. 이렇게 나이를 같이 먹어가는구나 싶기도 하고, 왜인지 모르게 신기하면서 기분이 좋았다. 남편 흉을 같이 보기도 할까? 아이 키울 때 유일하게 여유를 두고 조언해줄 수 있는 육아 선배겠지? 또 새로운 먹거리로 소통하기 위해 앞으로 요리를 종종 해서 엄마한테 자랑 좀 해야겠다.


내가 했던 굴전 레시피!
큰 것들만 골라 골라~

굵은소금 두 스푼, 식초 1스푼*2회 깨끗이 세척!

씻는 건 너튜브에서 어떤 먹방인이 말했던 방식대로 식초와 소금을 넣아 살살살 뒤적거리며 같은 방법을 2회 반복했다. 그랬더니 회색 구적 물이 다 나가고 뽀얀 굴이 윤기 좔좔 흐르며 '날 드시오~' 하고 유혹하는 것 같았다. 곧장 큰 놈과 작은놈들을 골라냈다. (거의 반반? 정도 된 것 같다.) 큰 것들은 굴전을 할 예정이었고, 남은 작은 굴들은 일회용 봉투에 담아 굴국을 위해 냉동고에 넣었다. 냉장고에 넣어둬도 바로 먹으면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초짜 요리사(?)인 나는 겁이 나서 냉동고로 직행했다. 다음날 무와 배추, 애호박 넣고 해동시킨 굴로 국 끓여 먹었는데 보신탕이 따로 없었다. 쌀쌀한 겨울 연출하려 창문까지 열어두고 호로록 한 숟가락씩 즐기기~이렇게 힐링할 수 있구나 ㅎㅎ

난생처음 해 본 굴전, 대강 부쳐도 JMT

계란, 청양고추, 당근, 대파, 밀가루

굴전에는 생각보다 별게 들어가지 않았다. 굴에 밀가루를 착착 묻혀서 계란물을 바른 다음 지글지글 기름 끓는 프라이팬에 구워주면 된다. (참고로 난 집에 남은 버터에 구웠다. 그래도 꿀맛~) 계란물에는 취향껏 넣으면 되겠지만 난 파, 당근, 청양고추를 넣어 매콤한 맛과 영양가를 더해주었다. 살 찌고난 후부터는 (나이도 먹어가고..ㅎ) 그렇게 영양을 따지게 되더라는..ㅋ 어찌 되었던 계란물이 노릇노릇해지면 거기서 꺼내어 바로 흡입했다.



엄마, 이번엔 닭볶음탕 했어:D


작가의 이전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