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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종이 Nov 19. 2020

식단은 내 자존감

오늘도 상승했습니다

식단은 내 자존감


누군가가 나에게 '자존감을 어떻게 키우시나요?' 물어본다면 '글쎄요.. 전 자존감이 없어요..'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적어도 작년까지만 해도.


나의 최근 제일 큰 관심사는 바로 자존가 '키우기'가 아니라 '성립하기'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홀로서기를 시작하면서 그동안 부모님께라도 보여주기 위해 했던 나의 질 높은 라이프스타일이 완전히 무너졌었다. 질 높은?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난 대학생 때 새벽같이 일어나 옆 초등학교 운동장을 뛰었고, 돌아와 싹 씻은 다음 학교에 갔다. 수업 들으며 흘겨쓴 필기장을 보며 흐뭇해했고, 어젯밤 적어두었던 to do list에 빨간펜으로 쓱쓱 그으며 하나씩 없애는 것에 쾌감을 느꼈다. 하교를 하고 난 후에는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끝난 후에는 헬스장에서의 근력운동 (남자만큼 아령 드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컸을 때였다.), 그리고 집에 다시 돌아와 패션지를 보거나 피부관리, 셀프 바디 마사지, 그림 그리기, 글쓰기 등의 잡다한 것들을 하다가 잠드는 것. 이를테면 이러한 것들을 마치 플랜맨처럼 척척 해나가는 것이 나의 질 높은 라이프스타일이었다. 


그것 중에는 내 모습을 보면서 대견해하시는 부모님의 눈빛이 이유였던 것들도 분명 있었다. 그래서 미생에서 '난 부모님의 자부심이다'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나 보다. 정말 하나의 자부심에 부합하기 위하여 발버둥 치기도 했으니. 그리고 독립을 해 자취를 하다 보니 그 부분이 정말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난 관리의 여왕인 줄 알았건만 약 4년간 15kg가 쪄버렸고, 살이 찌면서 메이크업하는 것도, 옷을 예쁘게 입는 것도 다 관심이 없어졌다. 헤어숍 가는 일도 거의 없어졌다. 그 어떤 무언가를 하더라도 전혀 예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면서 친구들과 약속 잡는 일들도 사라졌다. 내가 앞에 나서기 창피했으니까. 예전에는 알바비만 받아도 꼭 한 달에 한 번씩 헤어숍 가는 것, 옷을 사는 것, 나를 위해 헬스장 등록하는 것, 화장품을 사는 것. 이들 중 두 가지 이상은 꼭 했어야 직성이 풀렸다. 평소에 나를 위한 식비는 엄청나게 아꼈어도 친구들이나 친한 동생, 언니들을 만날 때면 펑펑 쓰기 바빴다. 그러면서 스트레스도 풀었던 듯. 근데 어느샌가 그런 내가 사라졌다. 일하는 것도 재미없어졌고, 혼자 있을 때면 그저 폰으로 영상 찾아보는 것, 어떤 때는 귀찮아서 세안도 잘하지 않고, 쉬는 날이면 머리도 감지 않았고, 매일 했던 샤워는 언제 했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었다. 내가 그나마 꾸미는 때는 어쩌다 한 번씩 집에 내려갈 때. 부모님께는 최대한 잘 살아 보이려 애쓴 것 같았다. 그럴 때면 생각했다. 이렇게 꾸미면 안 꾸미는 것보다는 나은 것을, 이젠 진짜 부지런 좀 떨자! 곧 무너질 다짐이었고 그렇게 4년을 지내다 보니 서른을 앞두고 있는 요즘. 몸이 조금씩 이상해 진다는 걸 감지하기 시작했다. 아니, 올해 1년을 거의 내 몸 걱정하는 데에 소진한 것 같다. 영상이나 서치 하는 검색 단어의 주요 콘텐츠는 '암'이었다. 자그마한 증상부터 좀 큰 증상까지도 모든 것들을 시한부까지 상상하며 불안에 떠는 것이었다. 자가 테스트를 해보면 범불안장애에 가까웠다. 


'이러다 큰일 나겠어..!'


이제 더 이상 나를 방치해둘 수 없었다. 커진 모공, 탁해진 피부, 거칠어진 살결과 푸석푸석한 머릿결, 퉁퉁 불어난 내 몸. 겉으로만 봐도 거울보기 싫을 정도였다. 예전엔 거울 귀신이었건만. 패션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던 난 어디 갔지? 이건 그나마 낫다. 불규칙한 월경 주기에 툭하면 욱신거리는 무릎, 화끈거리는 다리, 툭하면 오는 두통, 골반통과 요통 등. 이너뷰티도 전혀 케어 되지 않은걸 나 스스로 느끼고 있으니 무서울 수밖에. 내가 큰 병을 앓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되었고, 그러면서도 '만일 그런 거면 너무하지 내가 그래도 전에는 얼마나 건강하고 바르게 살았는데!' 하는 되지도 않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런 위안은 불안을 잠재우지 않는데 말이지. 이 초조함을 잠재울 수 있는 건 단 하나, 지금 당장 바뀌는 거였다. 뭐부터 바꿔야 할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가장 처음으로 택한 건 꾸준히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이었다. 생활 때문에 버는 '돈' 이 아니라 내가 꾸준히 또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다. 과거의 내가 그래 왔던 것처럼. 올해 5월에 시작했으니 벌써 6개월째 이어오고 있고, 재미까지 붙였다. '자존감이 20% 상승했습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요 며칠 째 나의 또 다른 자존감은 '건강한 식단'이다. 다이어트 식단이라 쓰고 건강 식단이라 읽는다. 난 지금 간헐적 단식에 도전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 한 끼 한 끼가 아주 소중하더라. 또한 내가 좋아하는 셀럽들의 말에 따르면 내가 먹는 것은 곧 나다. 그래, 나도 이제라도 해보자! 그동안 몇 년을 바깥 음식에만 치우쳐 살았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대학생 때는 아르바이트를 가더라도 도시락을 따로 싸갈 만큼 난 나의 먹는 것을 아주 중요시했다. 그만큼 피부, 몸매, 이너뷰티 그 모든 것에서 티가 났으니까.(20대 초반에는 정말 사소한 것에도 변화가 빠르게 왔다. 좋은 부분에서) 이젠 조미료 가득하고 나의 귀찮음 수치까지 팍팍 들어가 있는 바깥 음식에서 벗어나 직접 요리하고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식단을 꾸역꾸역 신경 쓰고 있고, 그러느라 부지런함이 조금 상승했다. 그리고 나의 자존감이 되었다. 이 또한 앞으로 꾸준히 해볼 예정이다. 식단은 단순히 내 몸매와 건강, 식비 절약 때문이 아니라 나와의 약속이고, 누군가와의 약속이 아닌 나 자신과 한 것을 지켰을 때 자존감이란 것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것이란 걸 새삼 느끼고 살고 있다.  

오늘 먹은 닭가슴살 이용한 요리


요리명은 뭘로 붙여야 할지 모르겠지만 엊그제 닭가슴살을 구입한 뒤 이전에 사두었던 베이글, 가지, 양파를 굽고, 한켠에는 계란 프라이를 해서 자리 잡았다. 생각해보니 닭가슴살과 계란을 한꺼번에.. 그러고는 채 썬 양배추에 블루베리 요거트를 드레싱으로 활용해 산뜻함을 더해주었다. 솔직히 내 멋대로 식단이라 영양적으로 괜찮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속 좋고 건강한 느낌 (+배부르지 않은 느낌 ㅋㅋ). 그래도 나름 맛은 좋다. 간 1도 하지 않고 후추만 뿌렸는데 서로 맛의 궁합도 좋고 특히 베이글에 구운 가지와 양파, 계란 프라이를 올려 샌드위치처럼 먹으면 즙들이 팡팡 터지면서 노른자가 부드럽게 감싸주어 엄청 맛난다. 그때 닭가슴살과 양배추 샐러드를 곁들여 한입에 넣어주면 깔끔하게 마무으리- 아주 좋다. 배도 든든하고 마음도 든든한 느낌.


 


자존감이 30% 상승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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