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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종이 Nov 22. 2020

너는 알까?

너의 '요새'라는 말이 날 복잡하게 했다는 걸

너는 알까?

아침 나의 늦잠을 깨운 너의 카톡

쌀쌀하니 아침에 눈뜨기 싫어 늦잠을 잤다. 그것도 평일에.. 일만 잘 마무리하면 되겠거니 하고 충분히 자다 출근하기 직전에 뜬 눈, 희미한 눈으로 바라본 휴대폰. 역시 톡은 많이도 쌓였고(거래처 등 업무로 톡은 항상 쌓인다.) 별일 아니겠거니 하고 넘기려던 찰나에 친한 동생에게 온 톡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평소에도 아주 아무것도 아닌 일들로 시시콜콜하게 대화를 오가는 터라 항상 차순으로 답장을 하지만, 이번엔 가장 먼저 눌러볼 수밖에 없었다.


'아 요새 왜 이러지..'


이 한 마디에 잠이 다 깼다.


'뭐지?' 순간 놀라서 바로 답 톡을 했다. 그리고 체감상 1~2시간이 지났는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약 15분가량 지나 있었다. 돌아온 답은 '그냥 ㅋㅋㅋ'


그걸 보면서 바로 답할 수 없었다. '뭐야~' 라며 나도 아무 일 아닌 듯 넘어갈까, 아니면 꼬치꼬치 물어볼까. 생각이 많아졌다. 보통 나한테 이런 얘길 털어놓는 애도 아니고 성격이 수더분한 편이라서.. 그리고 집, 회사, 연애, 친구들 만나 여행도 자주 다니고.. 친한 동생이라 어느 정도의 일상 패턴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항상 무탈하게 즐길 것들 즐기면서 잘 지내는 모습이 가끔은 부럽기까지 했기 때문에.. 근데 '요새'라는 말에 내가 착각을 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되돌아보면 나의 망가진 하루도 별것 없었던 일상 중에 발생했던 거였는데. 참지 못하고 뭐가 그냥이냐며 캐물었다. 이일 저 일이 한꺼번에 겹쳐서 몰려오니까 펑하고 터진 기분이라는 말을 듣고 일을 하다 말고 전화를 걸었다. 그 동생 또한 일을 하고 있었기에, 그리고 나처럼 속 얘기하는 것에 도가 튼 사람도 아니기에 선뜻 말을 꺼내진 못했지만 울고 싶으면 울고, 짜증내기도 하고, 속상해할 만큼 속상해해라, 괜찮다는 말을 여러 마디로 되짚어 주었다. 나에게 위로해줘서 고맙다고 했지만 도리어 난 깊이 말하진 않았어도 물꼬 정도 터준 것에 대해 고마움이 몰려왔다.


단 1살 차이 나는 이 동생과는 대학생 때 같은 아르바이트생으로 만났다. 그리고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로 깔깔거리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가끔은 술 한잔 하면서 속 얘기도 서로 내놓곤 했다. 2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연애, 일 그 모든 것들로 바빠지고, 거주하는 곳 조차도 달라지면서 연락만 근근이 하다가 1년에 한, 두 번 얼굴 볼까 말까 하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도 난 일하다 힘들면, 가정 내에서나 홀로서기하다가, 혹은 연애하면서 어렵고 괴로운 일이 발생하면 전화로, 톡으로 시시때때로 한탄하기 바빴다. 그러다 문득 너무 힘든 얘기만 하는 나를 벅차 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그 동생이 나에게 그런 티를 낸 건 아니었지만 나이 먹으면서 괜히 보이는 눈치였달까. 희한하게 주변에 있는 지인들 누군가에게는 항상 좋은 얘기만 하고 싶고, 또 누군가에게는 진짜 마음을 마구 쏟아붓고 싶어 진다. 이 동생이 아마도 나에게 후자였지 않을까 싶다. 어느 날 들었던, 이제는 내 연락을 받을 때 '또 무슨 일 있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전화하는 횟수를 줄이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힘든 일에 톡을 할 때면 웃긴 말들로 에두르으기도 했으며 연락이 먼저 올 때까지 일부러 하지 않기도 했다. 무슨 마음인지 명확하게 답을 내리기는 힘들지만 그냥 내 사람을 잃지 않을 방법으로 조금 거리두기를 택한 것 같다.


그렇게 웃음으로 에두른 말들만 오가면서는 정말 연락하는 게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난주 '아 요새 왜 이러..'라는 톡을 받았다. 처음엔 놀랐고, 그다음엔 장난이길 바랬으며, 나중엔 힘들 때 티 내준 것에 대해 고마웠다. '요새' 라면 적게는 근 며칠간, 길게는 올 한 해를 뜻하는 건데 내가 정말 몰라줬구나. 어쩌면 그동안 쉴 새 없이 힘들다는 말을 해왔던 나였기에 나에게 말조차 꺼내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서투른 위로의 말들을 진심을 다해 다 꺼내었다. 이제는 너의 안부도 가끔 먼저 물어볼 수 있는 내가 되길, 여유를 갖는 내가 되길 바라며.



이젠 힘들 땐 '오늘' 말해줘. 언제나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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