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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종이 Oct 24. 2020

아직 연습이 필요해

그건 장미 스티커야! (파이팅)

#1 아직 연습이 필요해

그건 장미 스티커야!

이번 여름휴가 때 오랜만에 집에 내려가 열흘 푹 쉬고 왔다. 그놈의 코로나 덕분에 우리 가족은 누가 먼저 밖에 나가자고 하는지 눈치 게임하는 것 같았다. 그나마 답답함을 가셔 주기 위해서 옥상 마루에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조금은 낯설고 생소한 느낌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서로 수다 떨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하루는 아침 먹고 나른함을 이겨보려 옥상으로 올라갔는데, 그곳에서 사용하는 좌식 테이블 위에 내 새끼손톱보다도 조그맣던 아기 꿀벌이 위잉- 날아와 앉았다.  평소 같으면 벌레라며 난리 부르스를 쳤겠지만 얘는 그러기엔 자꾸 시선을 끌었고, 심지어 귀엽기까지 했다. 선명한 노랑, 브라운 줄무늬의 통통한 뒤태가 애니메이션 같은 데에서나 볼 수 있는 아기 벌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그보다 더욱 관찰하게 되었던 이유가 있었다. 한동안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것 같더니 자세히 보니 테이블에 붙어있는 장미 모양의 시트지에 빨대를 꼽고 있는 것 아닌가.


 "엄마 얘 봐봐! 진짜 이게 꽃인 줄 아나 봐!"


그러고는 내 동생까지도 깔깔깔 저 멀리 있는 산까지 들릴 정도로 대박 웃음이 터졌다. 그 와중에도 열심히 일하느라 궁둥이를 위아래로 왔다 갔다 하며 빨대를 꼽는 아기 꿀벌이 무척 신기하고 귀여웠다. 실제로 벌은 향기로 움직이는 편이라고 하는데 이 아이는 왜 이러는 걸까?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우연이라기엔 살짝 날랐다가 또다시 앉아서 쪽쪽 빨아보고, 그 일을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른다. 잔망스럽고 관찰하는 즐거움이 생기는 동시에 안타까운 마음까지 들었다. 서둘러 가서 "그건 장미 스티커야!" 하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였으니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새어 나온다.


 괜찮아, 다음엔 꼭 꿀을 찾길!


어쩌면 나도 지금 장미 스티커에서 꿀을 찾고 있는 것인지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처음으로 생을 살아가는 것처럼 모든 순간마다 아기 꿀벌처럼 서툴고 실수를 한다. 나름 야무지고 뭐든 상황에 닥치면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나였는데, 엄마 품을 떠나 홀로서기를 하고 나서부터는 모든 것들이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조금씩 책임의 무게가 쌓이는 느낌이 아니라 자취 후에는 한꺼번에 묵직하고 큰 것들에 부딪혀야 했다.


생각해보면 그건 독립해서만 느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으로 학교에 진학했을 때, 친구들을 사귀어야 할 때,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때, 취업 준비를 하거나 친구들과 트러블이 생길 때, 첫 연애 경험 등. 내가 여태 지내오면서 새로운 것들을  몇 번이나 마주쳤을까? 얼마나 '틀린 것'에서 힘을 빼고, 아등바등했을까?


누군가는 시간을 버렸다고 할 수 있겠지만 처음이라서 모르고 실수했던 그 모든 순간들이 나에겐 소중한 자양분이 되었고, 여전히 새로운 것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실수를 하기도 한다. 물론 정확하게 알고, 꼼꼼한 정보력으로 완벽하게 해내면 그보다 효율적인 것은 없겠지만. 소모에서 오는 생산적인 것들, 실수에서 오는 깨달음들은 그 이상의 나를 만들어낸다. 효율적이지 못했을지라도 최상의 것은 만들 수 있다. 꼭 당장 해내지 못했다고 해서, 꽃 그림에 빨대를 꼽고 힘이 빠졌다고 해서 세상이 끝난 것이 아니다. 단지, 연습이 필요할 뿐이다. 그러니 바보 같았다고 좌절하거나 자책하지 말고 다음엔 꼭 탐스러운 꽃에서 꿀을 찾을 거야! 하고 털어버리면 그만이다.


세상에 꽃들이 얼마나 많은데, 헷갈릴 수도 있지. 괜찮아:)


 그래서, 이제는 꿀을 찾았니 아기 꿀벌아?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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