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니까 지지고 볶고
난 매일같이 저녁 상을 차린다. 어쩔 땐 식판에, 어쩔 땐 접시, 그리고 밥 그릇 등등. 항상 더블로. 누가 보면 가정집 혹은 신혼집의 상차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남편 아니고 7년 된 남자친구와 함께 하는 밥상이다.
우리는 거의 6년째 '따로 또 같이'의 생활을 하고 있다. 동거는 아니지만 퇴근을 하고 저녁을 먹는 시간, 주말, 공휴일 등 휴일, 휴식 시간마다 자연스럽게 나의 집에 모인다. 그동안은 내 집에 뭐가 있어서 모인 게 아니라 그냥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연애 초반부터 여태까지 우리는 어떠한 여가 시간이든 붙어 있어야 하는 줄 알고 싸우더라도 붙어 있었다. 그래서 지출되었던 배달 음식 비용이 얼마며 피씨방을 가게 되도 더블, 맛집을 가게 되도 더블, 심지어 내 집에서 사용하는 물세, 전기세 모두가 더블이니 남자친구가 생활비를 나에게 냈을 정도.(지금은 아예 월급을 나에게 맡겼다.)
작년에 우리가 서른이 되고 나서부터 슬슬 결혼 얘기를 해야 하지 않겠나 시동을 걸 때쯤 남자친구의 건강에 적신호가 왔다. 대단하지 않은 것 같지만 대단한 지변 '당뇨'가 심해진 것이다. 그렇다. 남자친구는 소아 당뇨를 앓았었고 완치라는 것 없이 꾸준한 관리만이 답인 것인데 그동안 함께 하면서 크게 자각하지 않고 서로 맛있는 것만 먹고 즐기는 데에 치중을 한 것이다. 그러다가 합병증으로 '당뇨망막병증'이 온 것이다. 황반에 혈관이 막히다가 터진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처음에 눈에 이상한 게 보이면서 점점 시야를 가려 놀란 마음으로 병원을 찾아갔는데 그날 돌아오면서 나는 통곡을 했다. 길거리에서 누가 보든 말든 그냥 눈물이 나왔다.
그 눈물의 의미는 아무도 모른다. 나도 잘 모른다. 당장 남자친구가 잘못된 것도 아닌데, 치료 방법이 수술이냐 레이저 치료냐 나뉜 것 뿐인데도 순식간에 이 사람을 잃을 것만 같았다. 6~7년을 함께 하고 있는 이 사람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컸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함도 상당했다. 소아 당뇨가 있었다는 걸 몰랐던 나도 아니었고, 이미 연애 초반에 나에게 알렸었는데 크게 위험하다는 생각을 못하고 망각하고 관리에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그런 이상하지만 타당해 보이는 죄책감이 있었다.
누군가는 차라리 결혼 전에 알았으니, 결혼 전에 터졌으니 다행 아니냐고 한다. 그러한 표정, 말들과 시선 모든 게 느껴질 정도로 명확한 의사 전달을 하고 있지만 나는 생각이 완전히 달랐다. 처음에 남자친구에게 당뇨 합병증으로 눈이 좋지 않게 되었고, 혈압도 조심해야 한다, 혈당 내리는 게 시급하다 했을 때 답답한 마음을 털어 놓으려 사촌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그동안 나와 남자친구의 술 메이트이자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날도 털어놓게 되었다. 그랬더니 언니가 조심스럽게 '너도 걱정 많이 되겠다. 앞으로 결혼도 해야 하는데 좀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도 있겠어.'
그 말의 의미와 언니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언니 사실 이번에 이 일이 터지고 나서 이틀을 연이어 밤새 울었어. 그리고 오히려 얼른 남자친구랑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언니는 순간 놀랐다. '진짜..?'
진심이었다. 나는 이틀 내내, 아니 남들에게는 말 못했지만 수술 날짜가 잡히고 수술하는 때까지도 매일을 울다가 마음을 다잡곤 했다. 밤새 인터넷 서칭을 했고, 수술 전 후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들이나 앞으로 조심해야할 것들을 찾아보았다. 그 많은 시간들이 지나가도록 단 한번도 이별을 고려해본 적은 없었다. 내가 이 사람을 어떻게 챙겨야 내 옆에 더 오래 둘 수 있을까, 이게 가장 큰 나의 숙제이자 고민이었다.
어떻게 보면 남들이 나에게 우려해서 하는 말들이 현실적으로 더 맞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연애니까 모르지, 결혼하고 나서 어떻게 감당하겠냐, 좋아서 그렇지 살다 보면 그 마음도 사라진다고도 한다. 진짜 그럴까? 난 아직도 의문이다. 여태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이 7년이지만 아프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아주 극한 상황이 되었을 때 난 이 사람을 떠날 생각이 없다. 그럴때만큼은 내가 더 옆에 있어줘야겠다 싶다. 내가 좋은 상황일 때, 이 사람도 힘들지 않을 때 정말 내 마음과 남자친구의 마음이 떨어졌다 싶을 때면 모를까. 마치 배신하듯 서로 힘들때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 그렇게 그만하자고 지지고 볶고를 7년동안 한 게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내 옆에 건강하게 오래 있기를 바라면서 매일은 아니지만 하루하루 최대한 건강한 저녁 상을 함께 하려고 한다. 퇴근하고 나서 대충 때울 수 있는 끼니를 남자친구를 위해서 건강하게 차려본다. 그러다 보니 나도 같이 건강해지는 느낌도 받는다. 뭐 내가 다 지지고 볶고 차리는 것이지만 남자친구에게는 도리어 고맙다고 한다. 만일 같이 먹지 않았더라면 난 삶은 계란이든, 삼각김밥이든, 컵라면 등으로 아주 초간단하게 때웠을 테니까.
"자기야 오늘은 힘드니까 내가 알아서 해먹을게 그냥 먼저 먹고 쉬고 있어~"
거의 매일같이 하는 남자친구의 멎쩍은 말이다. 그럼 나는,
"운동이나 얼른 하고 와~저녁 먹고 나서 나랑 또 같이 운동해."
먹고 운동하고 먹고 운동하고를 계속해서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메이트를 해주겠다는 무언의 다짐을 한다. 아직까지도 철없게 간간하고 매콤 달달한 음식들을 찾고, 먹을 때도 있지만 최대한 운동도 하고 건강 식단을 챙기면서 이제는 건강 박사가 될 준비를 한다. 어떤 식재료는 어디에 좋고, 어떤 식재료는 어디에 좋다고 하더라~ 라는 말을 참 많이 한다. 그리고 내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식재료들의 효능에는 '혈당 조절'이 들어가 있다.
지난번에는 남자친구가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혈당이 많이 가라앉았다며 의사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다. 마치 나에게 칭찬을 해주는 것 같았고, 남자친구가 그동안 운동하느라 힘들었는지 '역시 운동은 해야 하나봐~' 라는 말을 했다가 나에게 호되게 혼났지만 그래도 좋았다. 비록 내 식단이 순간 건강해지는 몸의 원인에 2순위가 되어 삐친 마음도 있었지만 그냥 관리해주는 것에 대한 성취감도 있었고, 내가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의 시간이 일주일이라도 더 늘어난 것 같아 기뻤다.
솔직히 맛은 간을 적게 해서 덜하기도 한데 어떻게 지지고 볶고 해줘도 잘 먹고 '고마워, 감사합니다' 하는 남자친구 얼굴을 볼 때마다 기쁘다. 내가 하는 식단이 당뇨에 좋은 건 맞는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도움이 될 수 있는 음식을 만들고, 먹고 나서는 함께 운동도 한다. 그래서 덕분에 정말 나도 건강해지는 기분이 든다.
아꽁아, 아낌없이 사랑하고, 사랑받으면서 오래 함께 하자. 그러니까 오늘도 유산소 1시간 근력 30분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