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봄이 오기 전에, 종현
본 게시글은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쓴 글이며, 해당 동영상을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올해 봄은 유난히 빨리 온다고 했다.
거리는 연둣빛으로 물들고, 사람들은 코트를 벗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겨울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자신이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떠올랐다.
"... 눈이 완전히 녹아버리기 전에, 한 번 보자."
그 말을 했던 사람이 바로 그였다는 사실을
그는 아마 스스로도 잊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해 봄이 되도록 그는 끝내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 사랑이 언제나 가까운 거리에서 이루어질 필요는 없었다.
그는 그녀를 지켜보는 것이 좋았다.
그녀가 환하게 웃을 때
손을 흔들며 길을 건널 때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쥘 때.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렸다.
그녀의 곁에 서는 것이 아니라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것이 더 편했다.
그녀가 머무는 카페의 창문 온도가 그대로 심장에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손끝이 시렸지만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오래도록 그 순간을 안고 있었다.
그녀를 만나러 가기 전 그는 거울 앞에서 조심스레 미소를 지어보았다.
연습하면 자연스러워질까.
하지만 거울 속 그의 얼굴은 익숙하지 않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가 바라본 그녀는 항상 자연스럽게 웃던데.
정작 그는 그것이 어려웠다.
그래도 노력하고 싶었다.
그녀 앞에서라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으니까.
그는 나아지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은 말했다.
비슷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삶의 속도가 비슷한 사람.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
그런 사람이 아니면 결국 어긋나고 만다고.
그가 바라본 그녀는 평범했고, 그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의 일상은 가지런했고, 그의 삶은 삐뚤어져 있었다.
그녀는 밝았고, 그는 그림자 속에 있었다.
그는 그녀의 평범함을 동경했고
그녀의 세계에 발을 들이면 스스로도 온전해질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그런 기대는 너무 오래 품으면 희망이 아니라 환상이 된다는 걸 알았다.
그녀에게 어두운 감정을 옮길까 봐 그는 늘 전전긍긍했다.
그리고 그는 언젠가 그녀가 자신을 원망하는 순간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몰랐다. 그가 왜 자신을 밀어내는지.
왜 유난히 긴 밤이 되면 연락을 피했는지.
그 이유를 알아버린다면 그녀는 그를 원망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그를 걱정하며 머물러 있을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는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진한 피를 나눈 가족마저도 그를 놔버렸다.
그런데 생판 남인 사람이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 줄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 해도 그는 그런 사람에게 진심이 담긴 사랑을 전할 수 있을까?
그는 오래전부터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살아왔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수 없는 사람.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주는 방법도 알지 못하는 사람.
그의 인생은 항상 그래왔다.
어릴 적부터 늘 스스로를 지키기에 급급했고
주변을 챙기기보다는 버텨내는 것이 먼저였다.
그런 그에게 그녀는 너무 따뜻했다.
가만히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차오를 정도로.
그러나 그는 알았다.
그녀가 아무리 따뜻해도 자신은 결국 차가운 곳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녀가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거리를 좁히려 했다.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이 그에게 한 걸음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와 함께하는 것이 두려웠다.
해사하고 맑은 그녀가 그에게 물들까 봐.
그녀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게 될까 봐 걱정스러웠다.
그녀는 빛이었고 그는 그림자였다.
빛이 그림자를 비추면 그림자는 더 짙어진다.
그는 그녀를 온전히 받아들일 자신이 없었다.
그녀의 다정함이 벅찼다.
애써 무시하려 해도 그녀의 따뜻한 손길은 점점 가까워졌다.
그녀는 그에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그는 기댈 어깨가 되어줄 자신이 없었다.
과거에도 소중한 사람을 곁에 두려 했지만 결국 그 사람들은 하나같이 떠나갔다.
시간이 지나면 사랑도 사라진다는 것을.
가까워질수록 더 멀어지는 것이 있다는 것을.
그는 이미 여러 번 겪었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그 자신이 먼저 떠나기로 했다.
그녀가 자신을 미워하게 되더라도 그녀를 먼저 떠나보내야만 했다.
그렇다면 그가 느낀 봄 같은 따뜻함은 무엇이었을까.
그저 언젠가 사라질 한 줌의 기억 같은 것은 미래의 그를 살게 해 주는 추억이 되겠지만.
그녀와 함께하고 싶다는 꿈은 현실이 되지 못할 허상일 뿐이었다.
드라마에서 나올법한 눈 오는 거리에서 그녀는 서 있었다.
그녀는 흔들리지 않는 단호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그런 그녀의 눈을 피하며 하얀 김이 담긴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손끝을 뜯으며 건조한 손에 상처를 냈다.
그녀는 말하고 싶은 게 많은 듯했지만 먼저 입을 떼지 않았다.
마치 나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는 듯 앙 다문 입술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만하자."
지구에 사는 70억 명의 인구 중 대부분이 해봤을 법한 뻔한 말.
하지만 들었을 때 상대는 큰 확률로 상처를 받게 되는 말.
그는 뻔하고도 잔인한 말을 그녀에게 내뱉었다.
굳은 그녀의 눈을 피한 채로.
"이유가 뭐야?"
그녀가 물었다.
그는 침묵했다.
그녀는 그의 대답을 기다렸고 그는 자신이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
나 때문이라는, 그런 같잖은 이유를 이유라고 말할 수 있을까.
"넌 도망치고 있어."
그녀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잖아."
순간 마주한 그녀의 눈빛에 한순간 울먹임이 서렸다.
"넌 나랑 있으면 불행해질 거야."
"그건 네가 아니라 내가 판단할 문제야."
"나는 노력했어. 나아지고 싶었어. 그런데..."
"그런데?"
"안 돼. 난 안 돼."
"정확하게 말해."
"..."
"네가 뭐 때문에 도망치는지 모르겠지만 난 듣고 싶어."
"..."
"결심이 서면 말해줄 수 있어?"
결연하지만 조심히 그의 동의를 구하는 그녀의 모습에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 눈이 완전히 녹아버리기 전에, 한 번 보자."
"그래. 다음에 보자. 연락해."
그녀가 떠난 뒤 그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그대로 서 있었다.
그는 그녀라는 봄을 멀리해 버린 겨울이었다.
그는 횡단보도 앞에서 멈춰 섰다.
조금 기다리자 신호가 바뀌었다.
초록 불이 반짝였다.
초록 신호불이 반짝였지만
그녀를 향한 그의 마음은 늘 빨간 신호가 떴다.
그를 제외한 세상은 붉고 푸르고 노란색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스팔트 위 횡단보도처럼 하얗고 차가웠다.
그녀가 좋아하는 봄이 성큼 다가온 지금.
뒤늦게 손가락이 통화 버튼 위를 맴돌았다.
누를까 말까.
망설임이 길어졌다.
시간이 지나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것처럼.
빨간불이 끝나면 초록불이 오고
길을 건널 수 있기를 바랐다.
그는 정말이지.
납작 엎드린 흰 횡단보도를 아무렇지 않게 밟아서
그녀라는 길로 나아가고 싶었다.
2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