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봄은 너에게 달려가고

♪봄 내음보다 너를, 김나영

by 섣달

제2화. 결국 봄은 너에게 달려가고


본 게시글은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쓴 글이며, 해당 동영상을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봄 내음보다 너를, 김나영



네가 노력하는 게 보였다.

나를 좋아해서. 나를 사랑해서 하는

행동들이 너무나 소중했다.

이대로 너를 꽉 껴안은 채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한 번도 제대로 웃어본 적이 없는 듯

어색하게 지어 보이던 미소.

나에게만 보여주는 것 같아

더 귀했던 그 웃음이 내게서 떠나갔다.



집에서 가까운 산책로에서

손을 꼭 맞잡은 채 걷고 있으면

별을 박은 듯 일렁이는 눈빛으로

너는 내게 말했다.



"소희. 너는 참 단단해."



단단하다.

너에게 내가 그렇게 비치고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기에.

누구에게 안정을 줄만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보다 약한 눈을 한 너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나도 힘들 때가 있어.

너도 그런 때라서 불안한 거야.

차차 나아질 거야.



이런 말을 차마 너에게 건넬 수 없었다.




몇 년 후.




"소희 씨. 같이 점심 먹으러 갈래요?"


"소희 씨. 여기 옆에 새로운 카페 생겼던데 같이..."


"소희 씨가 좋아할 만한 매장 생겼던데 함께..."



적당히 밝아 보이고

적당히 사랑받았고

적당히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

제멋대로 평가해서 미안했지만

그게 지운의 첫인상이었다.



그의 온기는 적당했고 말투는 부드러웠으며

진한 무게를 지닌 감정이 없었다.

지운과 함께 있으면 내 삶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운이 없는 날을 떠올려도 아프지 않았다.

그게 안정감인지 공허함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내게 적극적인 지운에게

적당히, 마음이 끌릴 수밖에 없었다.

너는 눈이 녹기 전 보자고 했지만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고

봄과 함께 지운이 내게 왔다.



지운과 나의 관계는

요즘 말로는 썸, 또는 연애 전이라고 불리었다.

지운은 사내 직원들 눈치를 보지 않은 채

용감하게 내게 먼저 다가왔다.

그런 지운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지운과 함께 있으면

그가 말한 '단단함'이 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지운이 내 곁에 머물수록

그가 생각이 났다.



단단하고 나를 똑바르게 좋아해 주지만

따뜻하지 않은 향기라던지.

이 사람과 만나면 주변에서

좋은 사람 만났다는 소리를 듣겠지만

여운이 남지 않는다던지.

그렇지만 그런 건 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이제 와서 치사하게 탓을 하자면,

그건 눈이 녹기 전에 보자던

그가 약속을 어겨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몰랐겠지만

그가 떠난 이후 나는 철저히 무너졌다.



헤어질 때마저 나는 단단해야 했다.

부들거리는 목소리를 숨기러

짧게 대답해야 했다.

내가 떨린 목소리를 낸다면

그가 힘들어할 걸 알았다.



울음 섞인 목소리에

곧장 안은채 그러지 말라고

다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러한 선택을 하는 건

내가 아닌 그여야 하기에.



나는 그와 헤어진 걸까

아니면 아직도 그를 기다리는 걸까.

그가 다시 돌아올 거라는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건 나뿐일 텐데.

그는 나를 생각이나 할까.

아니면 혼자 동굴 속에 갇혀있을까.

눈이 녹아내릴 때마다

내 마음도 조금씩 무너져 내렸다



"소희 씨! 미안해요. 제가 좀 늦었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사과를 하는

지운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렁였다.

우산을 들고 한참을 길가에 서있었다.

신발부터 외투까지 물에 젖어 축축했다.



"빨리 타요."



길가에 차를 잠시 세운 채

조수석에 타라고 손짓하는

지운이 슬로모션으로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와 함께 걷던 길목에서

갑자기 비가 내렸던 그날이 생각났다.



"미안해. 많이 기다렸지."



그에게 가는 길에

한 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 빗방울은

금세 후두둑 쏟아졌다.

나는 언젠가 그가 사줬던 우산을

가방에 넣고 다녀서 비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씻고 나온 건지 우산을 챙기지 못한

그는 비를 맞고 있었다.



"아니야. 급하게 올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안 다쳐서 다행이야."



그는 미안해하는 나를 보며

망설임 없이 후드를 벗었다.

단단한 가슴팍에다 심플한 흰 티가

어울려있는 옷태에 감탄할 새도 없이

후드를 그 자신의 허리에 묶은 채

나를 꽉 끌어안았다.

그의 젖은 후드와 다르게

그의 흰 반소매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뽀송하게 말라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지운은 내가 없어도 괜찮지만

그는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걸.

그와 마찬가지로

나 또한 그가 너무 그립다는 걸.



그날 이후로 나는 같은 꿈을 반복해서 꿨다.

그를 다시 마주하는 날 나는 주저 없이 그를 끌어안고

무섭다고, 그러니 내 손을 놓지 말라고 애원했다.

그런데 꿈에서조차 너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혼자 말하는 기분이 들었고

매번 꿈에서 깨는 순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이 가장 무서웠다.



꿈을 꾼 이후로 계속 같은 상상을 반복했다.

너를 다시 마주하는 날

나는 그냥 너를 꽉 안아버리고서

나도 무섭다고, 그러니 나를 떠나지 말라고.

현실이 되었으며 하는 상상을.


겨울과 봄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계절을 넘나들고

흰 눈이 녹고 초록잎이 피는 건

우리의 몫이었다.



3화에서 계속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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