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거짓말, n@di
본 게시글은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쓴 글이며, 해당 동영상을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눈이 완전히 녹기 전에 보자고 했던 사람.
그러나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사람.
그리고 여름이 와버린 지금
나는 그를 다시 마주했다.
달려간다고 마음먹었지만
현실은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뜨거운 햇빛이 머리 위를 내리누르듯 쏟아졌다.
불어오는 바람조차 후텁지근했다.
소희는 창가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천천히 저었다.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창문 너머로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보였다.
어떤 연인은 손을 꼭 잡고 걷고 있었고
그 순간,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윤재.
소희는 윤재가 겨울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차가운 손을 잡으면 더더욱 그랬다.
살갗에 닿는 손끝은 언제나 시렸고
추운 날에는 얼음장처럼 식어 있었다.
그런 손과 다르게
윤재의 품은 늘 따뜻했다.
소희는 가끔 생각했다.
윤재가 그렇게 차가운 손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는
온기를 품기 위해서였을까?
그래서일까.
윤재를 꼭 안으면
그 차가움이 사라질 것 같다는 착각을 했다.
하지만 그 착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윤재는 결국 떠났고
빈자리는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소희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윤재의 번호를 지우지 않았다.
하지만 윤재에게 전화를 걸어본 적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윤재가 번호를 바꾸지 않았다는 보장이 없었다.
사실 그가 번호를 바꿨을 가능성은 높았다.
윤재는 언제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람들과 선을 그었으니까.
그래서 연락을 하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연락이 닿지 않을까 봐 두려웠던 걸까.
소희는 손끝으로 화면을 밀어 올렸다.
전화번호부에 여전히 윤재의 이름이 떠 있었다.
하지만 손가락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겨울이 지나 맞은 지운과의 여름
“소희 씨. 여기 앉아요.”
지운이 그녀를 불렀다.
소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운의 맞은편에 앉았다.
카페 안은 에어컨 바람이 가득했다.
창밖의 뜨거운 공기와 다르게 이곳은 선선했다.
지운은 늘 먼저 도착했다.
그리고 소희가 오면 자연스럽게 메뉴를 추천해주곤 했다.
“오늘은 레몬에이드 어때요?”
“아니요. 그냥 아아.”
소희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레몬에이드는 너무 달 것 같았다.
지운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여름인데 좀 달달한 거 마셔도 좋잖아요.”
“아아가 더 좋아요.”
소희는 컵을 만지작거렸다.
지운은 모든 것이 부드러웠다.
말투도, 행동도, 표정도.
늘 따뜻했고 한결같았다.
그런데 지운은
따뜻한데, 뜨겁진 않았다.
소희는 자신이
안정적인 감정에 기대고 있는 건지
혹은 그냥 그리움을 덜어내기 위해 지운과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소희는 카페를 나서며 눈을 가늘게 떴다.
햇빛이 너무 뜨거워 한 걸음 내딛기가 어려웠다.
가늘게 뜬 눈 위로 손차양을 만들었더니
멀지 않은 곳 건널목 앞.
윤재가 보였다.
눈이 완전히 녹기 전에 보자고 했던 그가
눈이 아예 사라진 계절에 나타났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짧고 단정한 머리를 하고
이전과는 다른 정장을 입고서.
윤재는 소희를 보고 있었다.
겨울같은 창백한 얼굴로
어딘가 망설이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런 윤재에게 달려가야 할까?
그냥 모른 척해야 할까?
소희는 윤재가 애써 차가운 눈을 하고 있는 걸 알았다.
그 속에는 무너지는 듯한 흔들림이 보였다.
“소희.”
건널목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었다.
소희는 윤재의 옆을 지나치며 빠른 발걸음을 내딛었다.
윤재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윤재가 소희를 부르는 순간
소희의 머릿속에 수많은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눈이 녹기 전에 보자는 말
윤재가 떠나던 마지막 순간
그리고 기다렸던 시간들.
소희는 어지러운 기억 속을 더듬었다.
“소희 씨?”
뒤에서 지운이 소희를 불렀다.
지운의 목소리가 소희를 현실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윤재를 뒤로한 채 지운에게로 걸어갔다.
소희에 손에 있던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곧이어 화면을 바라보자 윤재의 이름이 떠올랐다.
소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지운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보고 있었던 걸까.
다시 마주하고 싶었지만
이제 와서 나타난 윤재가 미웠다.
윤재가 좋아서 더 미웠다.
“소희씨. 무슨 일 있어요?“
지운이 소희를 불렀다.
소희는 곧장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전화가 끊긴듯 했다.
윤재에게서 전화는 다시 걸려오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윤재가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4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