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 없는 시간, 배를 만드는 시간

by 삐탐

나는 지금, 명함 없는 시간을 건너고 있다.
작년, 권고사직이라는 파도에 휩쓸려 회사를 떠났다.
이상하게도 슬프지 않았다. 분노도 없었다.
끝까지 버티기로 선택한 건 나였으니까.

부서의 수익성이 기울어가는 걸 알았다.
배가 천천히 가라앉는 걸 보면서도 나는 뛰어내리지 않았다.
패배할지라도, 경기가 끝나기 전에는 백기를 들고 싶지 않았다.

예전의 나는 달랐다. 질 것 같은 싸움은 피했고,
중간에 도망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그때 내 발목을 붙잡은 건 헤밍웨이의 노인이었다.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노구를 이끌고 바다로 나가 거대한 청새치와 맞서고,
그 고기를 노리는 상어 떼와 다시 싸웠던 노인.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으나 그는 번뇌 없이 잠들었다.
도망치지 않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후회 없는 싸움, 깊은 잠.
나는 끝까지 버텼고, 끝난 뒤에는 후련했다.
정말로 오래, 달콤하게 잠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잠은 너무 길어졌다.
낮과 밤의 경계가 흐려지고, 무기력이 스며든다.
문득 떠오르는 질문.
“나는 왜 존재하는가?”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말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우리는 툭, 세상에 던져진 존재다.
본질은 그 뒤에 만들어진다.
사자가 태어날 때부터 맹수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건 아니다.
존재가 먼저이고, 맹수라는 본질은 인간이 나중에 붙여준 것뿐이다.

나 또한 직함과 명함으로 정의되던 사람이었다.
“나는 ○○팀의 ○○다.”
그러나 그 본질이 사라진 지금,
나는 무의미해진 것일까?

아니다.
본질은 언제든 새롭게 쓰일 수 있다.
나는 내 스스로를 다시 정의할 자유를 얻었다.

다시 산티아고를 떠올린다.
84일 동안 빈손이었어도 그는 바다로 나갔다.
나도 언젠가 다시 나아갈 것이다.
지금은 잠시, 새로운 배와 노를 만드는 시간.

바다는 여전히 눈앞에 펼쳐져 있다.
나는 오늘도 호흡을 고르며,
다시 저어 나갈 그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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