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고 다시 시작

알몸으로 세상과 맞서다.

by 삐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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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다시 시작하는 중이다.
아니, 다시 시작해야만 하는 시간에 서 있다.

그런 내게 울림을 주는 여성이 있다.


옷입은 남자들 사이에서 옷 없이 앉아 있는 여성.
그녀의 눈빛은 당당하기 그지없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나는 알몸으로도 이 세상과 맞설 수 있어.”


속옷부터 겉옷까지 단단히 여미고도
세상 앞에서 주저하는 나에게
그녀는 조용히 일침을 가한다.


문명 이전의 야성.
숲속에서도 홀로 살아남을 것 같은, 잡초 같은 생명력.
지금 내게 필요한 것도 바로 그런 야성이 아닐까.


이 여성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 화가 — 에두아르 마네.
우리는 종종 그를 도발적인 반항아, 혹은 기행의 화가처럼 오해하지만
사실 그는 모범생이었다.
좋은 집안 출신, 제대로 된 미술 교육, 에티켓 넘치는 엘리트.

그런 그가 왜 세상을 충격에 빠뜨린 그림을 내놓았을까?

어쩌면 그는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 모른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옷을 벗고, 관습을 벗고, 익숙함을 벗어던져야 한다고.”


그가 활동하던 19세기 중반.
화가들은 거대한 전환점 앞에 서 있었다.

사진기의 발명.


시각을 기록하는 역할은 이제 기계가 대신할 수 있었다.
붓으로 ‘진짜처럼’ 그릴 필요가 없어진 순간,
화가는 더 이상 기술자일 수 없게 되었다.


누군가는 절망했고, 누군가는 무너졌다.
하지만 마네는 그 절망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는 그 순간을 “다시 태어나는 시기”로 보았다.

그래서 그의 알몸의 여성은 단순한 모델이 아니라 선언이었다.


“나는 벗고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선언은

오늘을 사는 내게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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