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니임~~, 선생니임~~"
"야!!~~~~~ 야야야아~”
모두가 잠든 한밤중, 어르신들의 숨소리 외 적막만이 가득한 8층 생활실에 울려 퍼지는 짜증으로 가득 찬 목소리의 주인공은 우리 요양원 8층의 ‘악동’ 우광자(가명) 어르신이다. 그녀는 가히 능가할 자가 없는 우리 요양원 최고의 심술쟁이로 불린다. 매일 밤 ‘오늘은 좀 괜찮아지려나’ 하는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고래고래 악을 써 댄다.
그녀는 때때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위장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엔 상당한 인지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보호자인 딸들이 오면 그동안의 불평불만을 시시콜콜 일러바친다. 특히 요양보호사들의 일거수일투족과 당신에게만 불친절하다는 자신만의 해석까지.
그러나 요양보호사들이 그녀에게 여느 어르신처럼 살뜰히 대하지 못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놀부 심보를 연상시키듯 변덕스럽기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고, 늘 말도 안 되는 떼를 쓰며, 시도 때도 없이 징징거리기 때문이다.
“나, 방에서 나갈래~ 거실로 나갈래에~~”
라고 해서 힘들게 휠체어에 태워 거실로 나가면 금방 다시 들어가자고 떼를 쓰고, 들어가면 얼마 있지 않아 또다시 나가자고 한다. 분명 혼자 쓰는 방이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늘 ‘불을 꺼달라, 시끄러우니 조용히 해라, TV를 꺼 달라, 문을 꼭꼭 닫아라, 같은 방 노인네가 코를 골아서 잠을 못 자니 어디로 보내 버려라, 저 노인네 때문에 밥맛이 없다’ 등등의 이유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쉴 새 없이 호출하는 벨을 누르고 또 눌러 댄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상에서 당신만 우선적으로 대접받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나 이해 따위는 없다. 그러니 그녀의 표정도 늘 미간이 잔뜩 일그러진 채로 짜증스럽게 보이거나 아니면 울상이다.
요양보호사들이 바쁘게 일하는 것을 알면서도 불러서 재빨리 오지 않으면 이번엔 똥을 쌌다며 악을 쓴다. 제발 그러지 마시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때로는 엄포를 놓기도 하지만, 그럴 때는 또 목소리에 힘을 빼고
“선생니임~ 잘, 잘못했어요.”
라고 하면서 마치 누가 들으면 위협하거나 학대라도 한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 얄밉게도 순간을 모면한다.
‘아오, 이 어르신은 도대체 정체가 뭐지? 아오, 정말...’
화가 치밀지만, 치매에 걸린 어르신을 상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 자신을 보면 시쳇말로 ‘웃프다’는 생각을 한다.
모시는 어르신들을 결코 차별해서는 안 되지만, 그녀만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마음에 벽을 쌓게 된다. 너무 미운 짓을 많이 하고, 무엇보다 몸을 힘들게 하니까 솔직히 정이 가지 않는다.
그녀는 작년 봄, 당신 스스로 8층에서는 더 못 있겠다 해서 9층으로 잠시 자리를 옮긴 적이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새내기인 내가 9층에서 잠시 근무하던 시절이었는데, 그 당시 8층에서 근무하는 요양보호사들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고 한다. 이제 숨 좀 쉬겠다고, 밤에 잠 좀 제대로 자겠다고 말이다. 그런데 한 달 만에 그녀는 다시 돌아갔다. 알고 보니 9층 선생님들이 더 사나웠다고 하면서 8층이 그리웠다는 청천벽력 같은 이유를 댔다는 것이다. 그때 8층 선생님들이 쓴웃음을 지으며 절망 어린 표정을 했던 것을 잊을 수가 없다.
겨울을 떠나보내고 있는 요즈음, 그녀도 세월은 피할 수 없었는지 노화와 치매로 인해 많이 쇠약해져 있다. 여전히 간간이 악을 쓰며 우리들을 괴롭히고 있지만, 부쩍 노쇠해진 것 같아 한편으로는 마음이 짠하다. 영원히 악동으로 남아 있을 것 같던 그녀도 결코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예전과 달리 전혀 스스로 움직이려 하지 않고, 손수 먹던 밥도 떠먹여 줘야 한다. 이따금 벼락같이 화를 내고 밥상을 뒤엎어서 난감하게 하지만, 사실 그런 그녀도 누군가에겐 자상한 어머니 혹은 따뜻한 할머니일 것이고, 가족들에게 평생 희생하며 아낌없는 사랑을 주었을 것이다.
다른 어르신들을 위해 조금만 참을 줄 알았다면, 조금만 기다릴 줄 알았다면 요양보호사들의 사랑도 듬뿍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그녀의 모자란 인내심이 안타까울 뿐이다.
지금 그녀는 몇 달 만에 급속도로 상태가 악화되어 결국 콧줄을 끼고 누워있다. 하룻밤에 수십 번씩 벨을 누르고, 시끄럽다며 발자국 소리도 못 내게 악을 쓰고, 온갖 짜증을 부리며 불만을 표출하던 그녀가,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살아도 진정으로 살아있는 게 아닌 무기력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초점이 없는 멍한 표정으로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내내 침을 흘리며 누워있는 그녀를 보면서, 좀 더 인내하고 그녀에게 살갑게 대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죄송해요 어르신, 왜 이리 갑자기, 왜 이토록 빨리 변하신 거예요.’
이제는 다만, 그녀의 시간이 조금만 더 천천히 흐르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