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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연 Mar 06. 2021

무지개를 찾아 떠난 길

  


“나, 가유~ 나,나, 가유~ 가유~”

라는 말이 거의 유일한 의사 표현인 어르신.

온종일 입에서 ‘쩝쩝’ 소리를 내며 무언가를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는 듯한 이순례(가명) 어르신은 준 와상 환자다. 


작년 가을, 우리 요양원 8층에 입소할 때 그녀는 이미 여러 요양원을 전전한 전력이 있었다. 귀여운 눈과 앙증맞은 코, 안쓰러울 정도의 조그마한 얼굴이었지만 작은 그녀의 몸은 전체적으로 퉁퉁 부어 있었다. 반복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불과 몇 마디 정도에 지나지 않아서 전반적으로 그녀와의 의사소통은 몹시 힘들었다. 

그녀는 늘 어딘가를 ‘가야 한다’라는 말을 가장 많이 했는데, 막상 그녀가 탄 휠체어를 거실 현관문 근처로 밀고 가면 자지러지게 놀라며 

“앙 가, 아아아악~ 앙 가, 앙 가”

라고 갑자기 괴성을 질러대곤 해서 우리를 놀라게 했다. 이유를 물어볼 수 없으므로 무언가 대단한 트라우마가 있으려니 짐작할 따름이었다.


그녀는 연하 곤란을 겪고 있어서 밥과 물을 매우 천천히 조심스레 떠먹여 줘야 했다. 양치할 때는 입안의 물을 대포처럼 쏘아 뱉어서 온통 바닥에 흘리므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다. 

요양보호사들을 크게 힘들게 하지 않을 것 같은 비교적 얌전한 그녀였지만, 밤만 되면 쉽게 잠들지 못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나, 가유, 나, 나 가유~”

를 반복적으로 외쳐 대서 방을 같이 쓰는 어르신들을 수시로 깨우는 게 문제였다. 

“어르신, 지금은 다 주무시는 시간이에요. 조용히 하셔야 해요”

“아, 아, 알았슈~” 

하지만 그런 다짐도 소용없이 금세 또 

“나, 가유~ 나, 나 가유. 가유~”

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럴 때면 노련한 요양보호사들이 아늑하게 따로 가림막을 쳐 주거나, 아기한테 그러는 것처럼 옆에 앉아 잠들 때까지 그녀의 가슴을 토닥여 줘야 했다. 그러고 나면 두세 시간 정도 겨우 잠들곤 했지만 이내 깨어서 아침까지 다시 잠을 자지 못했다. 게다가 틈만 나면 벌떡 일어나 침대에서 마구 내려오려고 해서 안전판을 사이드바에 끼우고도 안심이 안 돼 수시로 그녀의 동태를 살펴야 했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피부 질환이 심각했다. 거칠고 두꺼운 허물이 벗겨지듯 온몸에서 수시로 각질이 떨어졌고, 여기저기가 갈라져 피가 났으며, 벌겋게 부풀어 오르는 일이 다반사였다. 

“어르신, 여기가 아파요?”

“예”

“어르신 여기가 안 아파요?”

“예”

그녀의 대답은 언제나 “예”였다. 

온몸에서 진물과 피가 흐르고 있는데도 얼마나 아픈 건지, 어디가 아픈 건지 알 수 없으니 답답하기만 했다. 스테로이드 약제를 과도하게 사용한 부작용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정확히 어디가 아프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그녀의 고통을 나로서는 짐작할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컨디션은 널뛰듯 종잡을 수 없을 때가 많았다. 눈에서 초롱초롱 빛이 나는 좋은 날도 드물게 있지만, 얼굴이 잔뜩 부어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밥을 삼킬 수 없는 날이 사실은 더 많았다. 그리고 그런 날은 유난히 퉁퉁 부은 몸이 더 무거워서 휠체어 태우는 일조차 몹시 힘들었다. 


하루하루를 투쟁하며 힘겹게 버티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은 안타까움을 넘어 차라리 빨리 그리고 영원히 편안해지셨으면 하는 바람마저 가지게 했다.

병들고 늙는다는 것이 이토록 참담한 일이었나 싶은 생각에 알 수 없는 미래가 사뭇 두려워졌다. ‘웰 다잉’이 꼭 필요하다는 말이 비로소 실감되었다.


지난밤은 모처럼 그녀가 밤새 깨지 않고 편하게 잔 덕분에 우리 요양원 8층도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아침에 요양보호사들이 간식 먹고 있는 걸 보고 있던 그녀가 뜬금없이 새초롬한 표정을 하고, 

“나 좀 하나 줘, 줘 봐유~ 나 좀 주어”

라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을 했다. 

“어, 어르신 이런 말씀도 할 줄 알았어요? 우와아~~ 대단해요. 어르신, 최고 최고!! 하하핫” 

그녀의 예상 못 한 한마디 말에 모두가 흐뭇해져서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다. 

그녀 때문에 가슴 아파 울고, 또 그녀 때문에 파안대소하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해가 바뀌고 3월이 되자 직원 인사이동에 따라 9층으로 올라온 지 한 달 만에 나는 그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프로그램 시간에 일부러 찾아가서 고립된 특별실에 힘없이 누워있는 그녀를 보았다. 지난밤 응급실에 다녀온 그녀는 불과 한 달 새 많이 여위어 있었지만 그래도 말귀를 알아듣고 나를 또렷이 응시했다. 이틀 뒤 그녀가 아주 편안하게 운명했다는 부고가 알림장에 떴다. 

‘어르신, 이제는 정말 편안해지신 거죠? 고통 없는 그곳에서 어르신이 그토록 가고 싶었던 어딘가로 마음껏 여행 다니시길 바랄게요’

“나, 가유. 나,나, 가유~” 

익숙한 그녀의 목소리가 아직도 요양원 어디선가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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