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요양원 8층에는 경관식을 하는 어르신이 네 분 있다. 그중에서 기명희(가명) 어르신은 요양원 개원 당시 제일 처음으로 입소한 분이다. 무릎 관절 수술 후 와상이 되었고, 콧줄을 낀 지는 1년이 조금 넘었다고 했다. 중증 치매를 앓고 있고, 왜소한 체구지만 힘이 세서 예전에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다 뜯어 놓은 전력도 있다는데, 내가 이곳에 왔을 때는 누워만 있을 뿐 이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태였다.
그녀는 아주 가끔씩 ‘응’이라고 대답을 할 때가 있지만 보통은 거의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 그저 동그란 눈망울을 이리저리 굴리며 의사 표현을 하는 게 전부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신기하게도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귀신같이 콧줄을 빼곤 한다. 한 번 경관 줄을 빼면 다시 삽입하기까지 반나절 혹은 한나절씩 의도치 않게 굶어야 한다. 게다가 새로 줄을 삽입하는 데는 비용이 들기 때문에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 보호 장갑을 끼우고 그것도 모자라 양손을 침대 사이드바에 묶어 놓는데도 그녀는 놀랍게 콧줄을 빼는 재주가 있다. 아무도 목격한 적이 없으니 마음 약한 요양보호사들이 줄을 조금 느슨하게 묶어버리는 때를 기다려 여지없이 빠른 동작으로 얼굴을 비비면서 줄을 빼는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콧줄을 빼고 나면 그녀는 해방을 맞은 듯한 표정으로 마음껏 자유를 누린다. 그럴 때 그녀의 얼굴에서는 신기하게도 빛이 난다.
그리고 내내 탁하게 흐렸던 눈동자도 그 순간만큼은 그렇게 맑아 보일 수가 없다.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콧줄로 연명하고 있다는 것, 그것도 양손을 묶인 채로 종일 누워 지내야 하는 것에 대해 그녀는 얼마나 답답하고 억울했던 것일까.
그녀는 낮에는 비교적 무탈하게 지내다가도 밤만 되면 몹시 힘들어한다.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은데 특히 그런 날은 가래가 많이 끓는다. 기침을 자지러지듯 연속적으로 해대고, 입안에 가래가 가득 고여도 스스로 뱉어낼 수가 없으니 고통스러울 뿐이다. 수건으로 닦아주다가도 안 되면 석션하는 기계로 가래를 제거해 주지만, 가래는 화수분처럼 그녀의 목구멍에서 끝도 없이 올라온다. 그럴 때 그녀의 눈동자는 가래처럼 덩달아 희미해지고 초점이 없어진다. 금방 숨이라도 넘어갈 듯 위태롭게 보여 처음엔 119를 불러야 하는 건 아닌가 몹시 전전긍긍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늘 잘 버텨줬고, 다음 날엔 언제 그랬냐는 듯 평화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지금은 그 모든 것이 그저 밤마다 겪어야 하는 그녀의 일상이 되어 버렸다.
야간 근무 때는 대부분 우리 요양보호사들이 어르신들의 석션을 담당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웬만하면 직접 하지 않는다. 원칙적으로 아무나 할 수 없는 의료행위인 탓도 있지만, 잘못하면 입 안에 상처를 낼 수 있는 위험부담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요양원에서는 대부분 선임 요양보호사들로부터 눈치껏 배우고 적당히 하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어차피 해야 한다면 사전에 전문 교육이라도 제대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럴 땐 요양원의 규모가 작아서 밤에 상주하는 간호 인력이 없다는 게 무엇보다 아쉽다.
석션을 할 때마다 어르신들의 손발을 붙잡고 눈물, 콧물 다 뽑아야 하는 모습을 보면 그저 마음이 짠하다. 거의 하루 걸러 한 번씩 그런 일을 당해야 하는 그녀는 더욱 애틋하게 느껴진다.
의사 표현 한마디 제대로 할 수 없는 가운데 한줄기 콧줄에 의지해 생명을 유지해 나가고, 몸 한 번 마음대로 뒤척일 수 없는 생활.
더우면 덥다고, 추우면 춥다고, 어디가 불편하다고, 지금 누군가 보고 싶으니 불러 달라고, 자신이 필요한 단 한마디의 말도 전달할 수 없는 삶이 지루하게 지속되는 것을 과연 그녀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녀를 보면, 맥없이 늘어져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그녀의 희미하고 탁한 눈동자를 보면, 불현듯 ‘사는 게 고행’이라는 생각에 또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막연함에 울컥할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