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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연 Mar 06. 2021

욕쟁이 할머니의 진심

   


“허허허, 조오~~타”

“밥 줘”

“개 같은 년들”

우리 요양원의 ‘욕쟁이’ 한말단(가명) 어르신이 하루 종일 하는 말의 대부분이다.

그녀는 편마비 증상이 심한 편이다.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와상 환자여서 그저 요양보호사들이 체위 변경해 주는 자세 외에는 전혀 움직이지 못한다. 

왼쪽 팔은 늘 굽은 채로 겨드랑이에 바짝 붙어 있고, 다리도 이미 굳을 대로 굳어져 마음껏 펼 수 없는 처지다. 하지만 그대로 완전히 굳어지면 안 되므로 기저귀를 갈 때마다 조금이라도 다리를 펴 주려고 하면 

“아파, 아파. 이 개 같은 년들. 놔 둬”

라고 하면서 아예 손을 못 대게 한다.


짧은 스포츠머리에, 문신으로 뚜렷해진 진하고 강렬한 눈썹, 쌍꺼풀 없는 작은 눈매가 상당히 매섭게 보이는 그녀에게는 젊은 날 장사하며 시장바닥을 주름잡았을 것 같은 강력한 포스가 느껴진다. 하지만 식사 시간에 밥 빨리 달라며 입을 함빡 벌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먹이를 기다리는 순진하고 여린 아기새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떠먹여 주는 대로 밥을 잘 받아먹는 그녀에게 약을 먹이고 양치질까지 해 주고 돌아서면 그녀는 금방 또 “밥 줘”를 외친다.

“어르신, 방금 밥 다 드셨잖아요”

“밥 줘!” 

“조오~~타. 밥이 맛있어” 

“이 여우야”

그러고는 뜬금없이 수발을 다 들고 뒤돌아나가는 우리 등 뒤에 대고

“개 같은 년들”

이라며 욕을 한다.

“헉~ 어르신, 또 욕했죠? 누가 밥 먹여드리는 사람한테 욕을 해요? 이렇게 욕하시면 다음부터는 밥 안 드릴 거예요. 흥”

하고 돌아서는 시늉을 하면 금방 당황한 얼굴이 되어 

“안 했어, 안 해, 안 해. 안 할게”라며 지키지도 않을 약속을 한다. 


아무래 치매가 심한 어르신이라고는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정성껏 밥을 먹여주고 생뚱맞게 욕을 듣게 되면 매번 기분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이제는 그저 그러려니 하는 마음이 커져서 크게 상처 받지 않지만 처음에는 몹시 당혹스럽고 언짢았다. 

“어르신, 이왕이면 예쁜 말을 하셔야죠. ‘예쁜아, 수고했다. 고마워’라고 한번 해 보세요”

그러면 그녀는 ‘흐응 흐응’ 웃으며 아주 잠깐 동안이지만 또 그대로 따라 한다. 그러고는 마지막에 또 “개 같은 년들”이라고 쐐기를 박는다.


그녀는 욕쟁이 할머니답게 욕하는 것 때문에 사실 거처하는 방을 몇 번이나 옮긴 전력이 있다. 최근에도 우리 요양원에서 욕이라면 절대로 남에게 뒤지지 않는 김순분(가명) 어르신과 같은 방을 쓰다가 말싸움이 크게 나서 온통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말이 어눌한 그녀는 순분 어르신의 속사포 같은 욕 세례에도 굴하지 않고 짧은 몇 마디를 무기 삼아 끝까지 대항했다. 두 어르신 사이에 가림막을 놓기도 하고 달래기도 했지만 순분 어르신 기질 또한 억세기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라서 좀처럼 화해를 시킬 수가 없었다. 한번 불이 붙은 두 어르신 사이에 날마다 툭하면 듣도 보도 못한 온갖 상스러운 욕들이 난무하는지라 끝내는 그녀를 좀 더 순한 어르신들이 있는 방으로 옮기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입이 좀 험한 것을 제외하고 그녀가 요양보호사들의 속을 썩이는 일은 거의 없다. 출근할 때 그녀의 방에 들어서면서 손을 흔들면 그녀 역시 팔이 아파 불편하지만 언제나 최선을 다해 오른손을 흔들어 준다. 그럴 때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저절로 함박웃음을 짓게 된다. 

‘아무 사심 없이, 나를 향해 늘 반갑다고 이렇듯 최선을 다해 손을 흔들어 주는 사람이 가족을 제외하고 세상에 얼마나 될까’ 

그녀를 보며 생각해 본다. 

언제 어디서든 그녀를 보호하고 그녀의 수발을 드는 것이 나의 일이지만, 그녀 또한 나에게 보이지 않는 커다란 위로가 되어 주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음식물을 삼키는 것이 어려워 곱게 간 죽과 반찬을 일일이 다 떠먹여 드리고 돌아서자마자 ‘밥 줘, 배고파 밥 줘’를 외치는 그녀. 

밥 먹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그녀에게 항상 욕을 먹지만 행복해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면 그저 웃을 수밖에 없다.


이번 겨울, 유난히 아프거나 돌아가신 어르신이 많았던 터라, 사실 그녀에게 이렇게 별일 없이 식사 수발을 계속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한편으론 그저 감사할 일이다. 

자꾸만 굳어져 가는 그녀의 팔다리가 마음에 걸리지만, 비록 지금의 모습으로라도 오래오래 버텨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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