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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연 Mar 06. 2021

청춘가 부르는 질투의 화신

  


“ 청추우우는 금방 간다아~ 젊어서 노올자~ 노세~노세에~ 늙으면 못 노나니~ 화무십일홍이오오~~~~” 

연순임(가명) 어르신이 흥에 겨워 부르는 근거 불명의 ‘나 홀로 청춘가’가 간간이 복도에까지 울려 퍼진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입술을 쉴 새 없이 위아래로 떨면서 세상 편안한 자세로 누워 부르는 그녀만의 노래다. 


그녀는 우리 요양원의 대표 귀염둥이로 사랑받고 있는 어르신이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하면서 때로는 직설적 화법의 달인으로 또 때로는 질투의 화신으로 변신하며 종횡무진 요양보호사들을 웃게 만드는 재주를 지니고 있다. 

구형 폴더 휴대폰을 편 것 같은 구부정한 허리로 천천히 워커를 끌며 거실을 향해 식사를 하러 올 때면 어김없이 ‘껄껄껄...’ 하며 웃음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그녀.


그녀는 세차게 손뼉을 치거나 아리랑을 큰 소리로 부르며 소란을 피우는 801호실의 무법자 강귀자(가명) 어르신을, 유일하게 시원스레 꾸짖는 어르신이다. 

“아, 시끄러워어~~ 뭐하는 겨어~~ 저 할마시 왜 저려어? 아, 그만! 시끄럽고!!”

물론 전혀 알아들을 리 없는 귀자 어르신에게 오히려 걸쭉한 욕이나 침 세례를 받는 등 별반 효과는 없지만 한바탕 고함을 질러 분위기를 진정시키고서는 

“다들 우리 집에 와유. 오늘 조개를 한 가마니 캤슈. 너무 많이 캐서 잔치할려구 그랴아~~ 꼭 와유~ 알았쮸?”

우리 모두에게 당신 집에 놀러 오라며 신신당부한다.


거실에서 식사를 마치고 당신의 침대로 돌아갈 때 그녀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의 귀여움은 거의 폭발 직전이다. 

“신발 벗고오~” 

“한 발 올리고오~” 

“또 한 발 올리고오~” 

“요렇게 하면 되지? 요렇게?” 

라며 요양보호사들이 불러주는 지침을 하나도 빠짐없이 복창하며 성실하게 이행한다. 

그런 태도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조그맣고 마른 어깨를 꼭 안아 드리며 쉬시라고 하면 

“그려 그려~ 알았쪄어~”

하며 또 뜬금없이 청춘가를 구성지게 부른다.


셀 수 없이 많은 깊고 뚜렷한 주름 속에서도 그녀는 신비하고 청아한 빛을 발하는 얼굴을 지니고 있다. 그녀에게는 늘 긍정적이고 따뜻한 기운이 넘쳐흐른다. 


물론 그런 그녀에게도 의외의 모습은 있다. 당신이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는 걸 잘 알고 있어선지 가끔씩 우리들이 다른 어르신에게 좀 더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이면 강한 시샘을 해서 매섭게 삐친다. 그럴 때면 입을 앙다물고, 대답도 잘 안 하고, 괜히 엎드려 있거나 

“아, 몰러~ 말 시키지 마아~ 나, 화났쪄”

라며 투정을 부린다. 이럴 때는 한참을 달래고 귓속말로 

“아우, 저는 어르신이 제일 좋아요. 진짜예요. 우리 어르신이 최고. 최고!!”

라고 해 드려야 슬그머니 화를 풀곤 한다. 하지만 그런 모습조차 상대방으로 하여금 훈훈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게 또한 그녀의 매력이다.


한없이 우리에게 즐거움만 줄 것 같던 그녀가 겨울이 되면서 갑자기 기운이 없고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힘이 없어 밥숟가락도 들지 못하고 워커로 이동하는 것도 사뭇 힘겨워했다. 연세가 있는지라 걱정을 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가 없는 사이 급성 폐렴이라는 진단을 받고 입원하셨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어르신들의 사망 원인 중에 손꼽히는 것이 폐렴이라는데, 게다가 근무 시간이 아니어서 가시는 모습도 뵙지 못했고... 이대로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어쩌지...’

허전하고 안타까운 마음 탓인지 며칠 동안이나 그녀의 빈 침대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돌아오시기를 진심으로 간절히 빌었다. 


한 달 뒤, 마침내 기다리던 그녀가 돌아왔다. 

“아이고, 우리 어르신~~어서 오세요”

하며 달려가 누구보다 반갑게 두 어깨를 꼭 안아 드렸다. 그녀는 병마와 싸우느라 예전에 비해 많이 쇠약해져 있었다. 더 이상 워커를 끌고 스스로 걸어서 이동할 수 없었고, 밤마다 걸어 내려와 이용했던 이동 변기도 사용하지 못했다. 결국 기저귀를 찼고, 밥도 손수 먹기가 힘든 상태였다. 

그리고 전에 보지 못했던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수시로 

“여보세요~ 여보세요오오~”

라며 큰 목소리로 외쳤는데 대답을 하고 달려가면 부른 적이 없다고 하거나, 

“그냥~ 아무도 없어서... 아무도 없는 거 같아서 불러 봤쪄” 

라고 하거나, 이웃집에 누가 죽었으니 가보라고 하거나, 김치를 담가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거나, 이유 없이 화를 버럭 냈다. 갈수록 치매와 망상이 심해지고, 당신 바로 옆에 요양보호사들이 없는 걸 못 견뎌하는 것 같았다.


요양원에 돌아온 지 두 달이 다 되어 가자 그녀는 느리지만 혼자서 식사도 하고, 예전처럼 이따금 청춘가도 부르며 조금씩 기운을 회복해가는 듯 보였다. 여전히 손과 입술을 심하게 떨고 눈물, 콧물을 많이 흘렸지만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9층 중증 어르신들이 계신 방으로 옮겨온 그녀는 이미 콧줄을 꼈고, 종일 눈조차 뜨지 못한다. 말을 할 수도, 들을 수도, 그렇게 좋아하던 청춘가를 부를 수도 없다. 몸은 굳을 대로 굳어 허리는 아예 펴지지도 않고 그저 망연히 손을 심하게 떨며 누워만 있을 뿐이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이 나에겐 유난히 큰 고통이다. 


모두에게 귀염둥이로 사랑받았던 그녀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다시 한번 가까이서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양원 전체가 환해지도록 고개를 젖히고 웃음 짓던 그녀의 아름다웠던 모습을, 그 흔한 휴대폰 사진 한 장으로 남겨 놓지 못한 게 후회가 된다. 

그녀의 예전 모습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게 너무나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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