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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연 Mar 06. 2021

졸지에 오뚝이가 된 그녀

 


여자 어르신만 계신 8층에서 남녀 어르신이 함께 생활하는 9층으로 올라와 근무한 지 한 달만에 나는 처음으로 사고를 쳤다. 요양원 근무 10개월 차. 1년을 코앞에 두고 반복되는 일과 속에서 어느새 타성에 젖은 탓일까. 긴장의 끈을 놓자마자 한순간의 방심이 부른 사고였다.


얼마 전 9층 생활관으로 입소한 강순이(가명) 어르신은 약간의 치매 증상이 있을 뿐 건강 상태가 매우 양호한 분이다. 

처음 요양원에 입소한 탓인지, 그녀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일주일 내내 집에 가야 한다며 틈만 나면 문을 열어달라 성화를 댔다. 밤에도 도통 잠을 자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갇혀버린 자신의 처지에 공감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날 선 야근을 하며 날마다 피곤에 찌든 우리로서는 밤새 긴장해서 한 사람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제법 난감한 일이었다.


보름쯤 지나 보호자의 동의를 얻은 후 안정제를 드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녀도 규칙적으로 잠을 자기 시작했고, 예전처럼 떼를 쓰는 일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약이 정말 무섭기는 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많은 어르신을 돌봐야 하는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이해했다. 간호과에서는 그녀에게 꼭 맞는 약의 적절한 양을 결정하기 전까지, 그녀가 이동할 때 항상 예의 주시해 달라고 부탁했다. 행여 약에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다가 낙상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무런 이상 없이 잘 적응했다. 그래서 약의 양이 적절한 것 같다고 판단할 즈음 내가 이틀째 야근을 끝낸 아침이었다. 

새벽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의 일과가 시작되고, 나는 보행이 자유로운 세 어르신이 거주하는 그녀의 방에 들어가 아침 식사를 위해 거실로 나가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녀는 흔쾌히 알았다며 일어나서 신을 신고 있었다. 내가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녀를 등지고 이불을 개는 순간, ‘어’하는 소리와 함께 내 뒤로 그녀가 거목처럼 무너졌다. 그리고 바닥으로 쓰러지면서 상두대에 머리를 ‘쾅’하고 부딪혔다. 몸을 돌려 재빨리 그녀를 잡았더라면 좋았겠지만, 찰나의 순간이라 붙잡기는커녕 나는 멍하니 서서 아무런 동작도 할 수 없었다.

“어르신~~~ 어르신, 어르신, 괜찮으세요?” 

그녀도 놀랐겠지만 나도 정신이 없을 정도로 놀라고 당황했다. 다른 동료 요양보호사들이 쫓아오고, 그녀를 일으켜 앉혀 팔과 다리에 이상이 없는지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별 이상이 없는 것 같아서 조금은 안심하던 순간 그녀의 뒷머리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순간 심장이 ‘쿵’ 소리를 내며 내려앉았다. 

쓰러지는 그녀를 잡지 못한 것 때문이 아니라, 아직 약에 취했을지도 모를 그녀를 끝까지 지켜보지 않았고, 아무 일 없으리라 예단했으며, 무심히 이불 개기에 몰두했던 나의 해이함이 불러온 사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명백한 나의 실수며 잘못이었다. 

살펴보니 그녀의 오른쪽 귀 뒷부분이 3센티가량 찢어져 있었다. 노련한 선임 요양보호사가 재빨리 지혈을 하며 나를 안심시켰다. 

“요양원에서 이 정도 일은 다반사여. 넘어지는 어르신들을 어떻게 다 잡겠어? 걱정하지 말아요. 이미 생긴 일 할 수 없지 뭐. 그나마 빨리 지혈이 됐으니 다행이고...” 

그런데 피를 흘리던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아아, 좀 아프긴 한데... 괜찮아. 괜찮아. 이 정도야 뭐”

라고 하며 일부러 껄껄 웃어 주었다. 평소에 별로 말이 없던 그녀였다.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는 그녀가 한없이 고마웠다.


간호조무사들이 화들짝 놀라 응급치료를 하고 아무래도 병원에 가서 꿰매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 어르신을 부탁하고 밖에 나서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녀에게 가장 미안했고, 부주의했던 나 자신에게 몹시 화가 났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큰 실수 안 할 거라는 자만심이 잠재해 있었음을 부끄럽게 반성해야 했다. 


잠깐 방심하는 사이, 어르신들에게 사고는 늘 불시에 찾아온다. 

특히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의 낙상 사고는 대부분 고관절 골절을 동반하므로 결국 와상 환자가 되고 급기야 사망에까지 이르는 것이 다반사다.

 구십을 넘긴 고령이었지만 비교적 정정했던 성기선(가명) 어르신이 그런 일로 결국 한 달 만에 돌아가시지 않았던가.

다행히 그녀는 다른 데는 부상이 없었다. 그리고 꿰매지 않고도 상처 또한 잘 아물었다. 팀장을 비롯해 주변에서 아무도 나를 탓하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어르신들을 어떻게 모셔야 할지 몸으로 절실하게 체득한,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이 사건을 시작으로 이후에도 꼭 요양보호사들이 바빠서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순간에 여러 번 넘어졌다. 그리고 그때마다 신기하게도 골절과 같은 큰 부상 없이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그녀의 별명이 ‘오뚝이 어르신’이 된 이유다. 

그녀 덕분에 지레 혼쭐난 요양보호사들의 감시와 보호의 눈도 갈수록 매서워졌지만, 매번 교묘하게 빈틈을 포착해 넘어지는 그녀를 잡을 수는 없었다. 이제 그녀가 이동할 때는 비록 그녀가 거추장스럽다며 거부할지라도 무조건 양쪽에서 부축한다. 언젠가는 그녀가 큰 사고를 당할 것 같아 요양원 사람들 모두가 전전긍긍하고 있다. 


요양원에서는 와상 어르신보다 보행 가능한 어르신들이 그래서 훨씬 더 케어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뼈가 약한 어르신들이 언제까지 오뚝이가 될 수는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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