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정연 Mar 06. 2021

할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야근조라 저녁에 출근해서 간호과에서 브리핑받다가 예상치 못한 당혹한 소식을 접했다. 905호실 최달곤(가명) 어르신이 응급으로 병원에 가셨다는 얘기였다. 순간 가슴이 싸해졌다. 며칠 전부터 식사를 예전만큼 잘 드시지 않아서 어디 불편하시냐고 물으면 자꾸 가슴이 아프다고 대답했던 그였다. 


6층으로 올라와 근무한 두 달 남짓 동안 가장 많이 접하고 가까이서 모셨던 어르신. 늘 아기같이 천진하게 웃음 짓는 그에게 죽을 떠먹여 주고, 연하 곤란을 겪고 있는 그가 행여 세 봉지나 되는 가루약을 못 넘길까 봐 먹기 좋게 요구르트에 타 드리고, 매일 정성껏 양치해 드렸던 분이었기에 충격이 더 컸다. 어제까지 손수 저녁밥을 먹여 드렸었는데 간밤에 병원으로 가셨다니...


요양원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가까이서 모시던 어르신이 나도 모르게 그런 경우를 당하면 마음이 내내 편치 않다. 더군다나 불과 얼마 전 어르신 종아리에 그동안 없었던 욕창이 생기고, 등에도 습진이 번져서 부쩍 체위 변경에 신경을 쓰는 등 마음고생을 했던 터라 안쓰러움이 더 했다. 혹여 이게 마지막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조급한 마음 때문이기도 했다.


최달곤 어르신은 내가 5층에서 근무하던 작년 7월에 우리 요양원 6층으로 입소했다. 처음에는 손수 지팡이를 짚고 걸어서 들어오셨다고 했다. 그러던 분이 1년이 못 되어 내가 9층으로 왔을 때는 이미 와상 환자가 되어 있었다. 우리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인 데다, 키가 부쩍 크고 잘생긴 호남형 얼굴, 그리고 항상 

“뭐, 그류 (그렇게 해유)~~”

라고 하면서 누구보다도 자상한 눈웃음을 보내주던 그였기에 짧은 기간이었지만 유독 정이 많이 들었다. 

죽을 한 숟가락 먹을 때마다 삼키는 게 너무 힘들어서 매번 가슴을 들썩이고 습관적으로 눈물을 계속 흘리면서도 

“이제 다 먹어 가나?” 

“거의 먹었나?” 

“약도 먹어야 하나?” 

“저쩌그 사람한테 가봐~ (앞에 있는 어르신 식사를 챙기라는 뜻이다)”

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했던 그는, 불평하거나 부정적으로 말을 하는 법이 거의 없었다. 언제나 신사다운 풍모를 잃지 않았고, 훈남 같은 살인 미소를 보여줬다. 물론 아픈 다리를 잘못 건드렸을 때 다른 요양보호사들에게 쌍욕을 했다는 정말 믿지 못할 얘기도 들었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런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없었다.


젊었을 때는 천하에 부러울 것 없는 패기와 자신감으로 가득했을 것 같은 그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시골에 계신 연로한 아버지 생각에 왠지 가슴이 뭉클했고, 크고 두툼한 그의 손이 주는 온기가 더욱 따뜻하게만 느껴졌다.


우리 요양원에는 그런 그의 아내가 역시 와상으로 누워있다. 그와 부부 동반으로 입소한 박보배(가명) 어르신은 제대로 먹지를 못해 보름 전부터 결국 콧줄을 끼게 되었다. 

아내가 같은 요양원에 있다는 것과 아내의 이름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그와는 달리, 중증 치매로 인해 자신에게 남편이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그녀가, 그가 병원에 입원한 다음 날 문득 지나가는 말로,

“할아버지는 어디 갔나? 어디 갔다가 왔나?”

라는 말을 했을 때는 ‘혹시 예지력이 있으신 건가’해서 잠시 소름이 돋기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에게도 본능적인 느낌이란 게 있었던 걸까. 혹여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영원한 이별을 예감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평생을 함께한 동지이며 사랑을 주고받았던 연인이기도 했을 두 부부의 말년의 모습이 그래서 더욱 안타깝게 다가왔다.


무심한 세월 앞에서 버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희미한 기억 속에서도 소중한 사람의 흔적은 남는가 보다. 


“뭐, 그류~”

하며 무심하게 웃음 짓던 그가, 다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 그가, 왠지 자꾸만 그리워졌다.  

   

병원으로 간 지 열흘 만에 그가 돌아왔다. 

폐가 이미 많이 망가진 상태로 콧줄을 끼고, 소변을 빼주는 유치도뇨관을 단 채 그는 당신의 자리가 아닌 특별실로 모셔졌다. 

특별실로 갔다는 건 임종이 가까웠다는 얘기다. 이틀을 쉬고 출근한 날 점심 무렵 그를 보러 특별실로 향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고통을 줄여주기로 한 보호자의 동의 아래 산소호흡기를 막 뗀 상태였다. 

그는 눈도 뜨지 못하고 입을 벌려 가뿐 숨을 연신 몰아쉬고 있었다. 짧은 기간 몹시 초췌해진 그의 모습에 눈물이 절로 났다. 그의 얼굴과 손을 쓰다듬으며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나온 지 1시간여 만에 그가 편안히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아내인 박보배 어르신은 휠체어를 타고 남편의 시신을 마주했지만 역시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고향인 부여에 놀러 갔다 왔다고 하면서 도통 알 수 없는 얘기들을 쏟아 놓았다. 그녀가 치매 때문에 고통받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지금도 혼자서 두서없이 아무 말이나 막 하다가 불현듯 

“할아버지는 어디 갔나? 부여 갔다가 왔나?”

라고 천진하게 묻는다. 


그의 빈자리를 볼 때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의 남겨진 아내를 볼 때마다, 오랜 시간 누구보다 미소가 따뜻했던 그가 떠올라 잊지 못할 것 같다.          

이전 17화 졸지에 오뚝이가 된 그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