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정연 Mar 06. 2021

매일 호강하는 여자

    


“에이쿠나~ 으쌰~ 엣샤~”

901호실에 있는 박막례(가명) 어르신은 기저귀를 갈 때마다 허리를 들면서 큰 목소리로 늘 재미있고 풍부한 효과음을 내준다. 

“감사합니데이~ 아이고, 마, 이런 호강이 또 어딨노~, 누가 이리 잘해주겠노 이리 잘해주는 데는 없데이~, 내 팔자가 상팔자라~ 감사합니데이~”

라는 말들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네네, 별말씀을요 어르신, 그런데 조금만 목소리 조용히, 조용히요. 하핫” 

한밤중에도 변함없는 그녀의 커다란 목소리는 때때로 다른 어르신들의 단잠을 깨울까 전전긍긍하게 만든다. 최근에는 잠꼬대가 부쩍이나 심해져 자다가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거나, 손뼉을 치며 느닷없이 노래를 부르기도 해서 몇 번이나 달려가 제지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긍정적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 보내거나 잠에 취해 있어서 사뭇 걱정을 시키기도 하지만, 요양보호사들의 요구를 거부하거나 우리에게 투정을 부리는 일이 거의 없다. 비교적 가볍지 않은 치매를 앓고 있고 허리가 많이 굽어서 이동이 편하지는 않아도, 워커를 잡게만 해 주면 ‘으쌰~’를 외치며 용감하게 잘 다니는 편이다. 


온통 새하얀 물결로 장관을 이룬 가을 억새밭을 연상시키는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거실에 앉아 다른 어르신들과 담소를 나누다가 이내 고개를 떨궈 잠에 빠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세상 걱정 없이 편안해 보인다. 그러다가 TV에서 옛날 가요라도 흘러나올 때면 눈을 지그시 감고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지 못하는 곡이 없을 정도로 평소에 흥이 많은 그녀다.


작년 11월, 그녀가 우리 요양원에 처음 입소했을 때는 지금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고 했다. 

말들은 거칠었고, 표정은 불안정했으며, 무엇보다도 자신을 요양원에 데려온 며느리에 대한 원망이 매우 컸다고 했다. 며느리는 일본인이었는데, 그래서 더 미웠는지 며느리가 일본 여자라 더 독해서 자신을 갖다 버린 거라면서 날마다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했다는 것이다. 정작 당신 아들에 대한 불만은 쏙 빼고 얘기했다고 하니, 며느리에 대한 험담으로 아들에 대한 서운함을 대신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들, 딸이 요양원에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어르신들은 그녀만이 아니다. 의외로 많은 어르신들이 치매 증상의 경중을 떠나 ‘가족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생각을 하고 가슴에 맺혀 있는 한을 쉽게 잊지 못한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포기하게 되고 환경에 순응해가기 마련이지만, 때때로 이유 없이 눈물짓거나 한숨 쉬는 모습을 볼 때면 지극히 일상적인 반응임에도 마음이 아프다. 

다른 어르신들과 웃으며 잘 지내다가도 

“누가 나를 여기에 데려온 거야, 내가 왜 여기에 와 있어? 나 좀 집에 보내줘”

라며 뜬금없이 가족을 원망하고 그러면서도 몹시 그리워하는 그들의 젖은 눈을 들여다보면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다. 


그녀도 처음에는 여느 어르신들처럼 한동안 적응하지 못하고 불평불만이 많았던 것 같다. 지금은 그 당시 기억도 다 지워졌는지 아들은 물론 며느리에 대한 얘기도 일절 하지 않는다. 이제 그녀에게는 오로지 시키는 대로 먹고, 자고, 싸는 그저 본능에 따른 행동만 남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것이 기억 속에서 지워지자 그녀는 오히려 유쾌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허리가 심하게 굽어서 수시로 기저귀가 엉덩이 아래로 묵직하게 내려와 있는 그녀의 앙증맞은 뒷모습은 일하느라 힘든 우리들에게 소소한 웃음을 주곤 한다. 

다른 어르신들에게 흉이라도 잡힐까 얼른 달려가 올려주면 ‘허허헛’ 너털웃음을 웃으며 

“아이고~ 마, 감사합니데이. 이런 호강이 또 어디 있노”

라고 외치는 그녀의 명랑한 목소리는 여전하다. 

다만 최근에 그녀가 자꾸만 기저귀에 실례한 걸 잊고 있다거나 다리가 점점 굳는다며 움직이려 하지 않아 걱정이다. 잘 때도 굽은 허리 때문에 몸이 편한 한 방향으로만 계속 누워 있어서 무엇보다 욕창이 생길까 우려스럽다. 심지어 손에 대변이 조금씩 묻어 있는 일도 잦아졌다. 기저귀가 답답해서 확인하려다 그런 것 같지만 당신은 기억이 전혀 안 난다고 항변한다.


치매가 아주 심한 어르신들은 정말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 못 하고 사방에 변을 묻히거나 바닥 여기저기에 던져 놓기도 한다. 경기도에 있는 요양원에 잠깐 있을 때에는 그 옛날 '이대 나온 여자'라며 평소에 거만하게 우리를 대하던 어르신이 있었는데, 똥을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찰흙으로 착각해서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동물을 만든다며 가지고 노는 경우도 있었다.


조금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까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언제나 흥이 넘쳤던 그녀의 일상이 이렇듯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전 18화 할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