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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연 Mar 06. 2021

벗어야 사는 남자

 


야간 근무 때면 한밤중 거실에 켜져 있는 CCTV 모니터를 지켜보다가 나도 모르게 화들짝 놀랄 때가 있다.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남자 어르신들의 생활실에서 벌어지는 민망한 장면 때문이다. 특히 김장수(가명) 어르신의 독특한 잠자리 습관은 아무리 태연하게 보려 해도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다. 


그는 우리 요양원에서 보기 드물게 신사다운 점잖은 풍모를 지니고 있는 어르신이다. 탤런트 박근형 씨를 떠올리게 하는 잘생긴 얼굴과 숱이 풍부한 반백의 머릿결을 자랑하는 훈남이다. 가벼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지만 요양보호사들을 대하는 태도가 예의 바를 뿐만 아니라, 평상시 행동이 신중하며 자신만의 여유를 즐길 줄 아는 분이다. 종종 겉옷과 안에 입는 옷을 분간 못 하고 바꿔 입거나, 옷이 해지면 손수 바느질을 하겠다고 나서서 우리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늘 깔끔한 모습을 한 멋쟁이다.

이따금씩 ‘쓰읍~’하는 소리를 내며 조용히 다가와, 

“거기... 내 면도기 아이 봤소? 하... 참, 내 면도기가 어데로 갔는지 아이 보이지 뭐요. 내 면도를 좀 하고 싶은데...” 

라고 하며 아침에 면도한 깨끗한 턱을 어루만지곤 한다. 


면도에 대한 강박이 있는 듯한 그는 실향민으로서 고향이 함경도 어디라는데 어릴 적 기억 때문인지 아직도 북한 말투를 곧잘 쓴다. 흔하게 쓰지는 않지만 화가 날 때는 ‘간나새끼’ 나 ‘동무’라는 말도 익숙하게 한다. 아무튼 요양원 다수를 차지하는 여자 어르신들 틈바구니 속에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때로는 여자 어르신들의 잘못된 행동까지 하나하나 지적하면서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차근차근 다하는 분이다. 


그런데 잠자는 시간이 되어 당신의 방으로 들어가면 그토록 체면을 중시하고 점잖았던 그가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속옷도 다 벗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다. 자연인 그대로 순수했던 어린 남자 아기의 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평생토록 해온 습관이라선지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다. 처음에 입소했을 때는 벌거벗은 채로 소변을 본다며 복도까지 걸어 나와서 다들 식겁을 하게 했다는데, 그나마 지금은 볼멘 얼굴은 하고 있어도 나올 때는 잊지 않고 옷을 챙겨 입는다. 

하지만 화질이 선명한 CCTV에는 알몸으로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다든지, 이불을 걷어차고 드러난 벌거숭이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지라, 우연히 모니터를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헉’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리게 되는 것이다.

 

어느 날 같은 방에 있는 윤정복(가명) 어르신이 한밤중에 그러한 모습을 보고 소리소리 지르며 쌍욕을 해대는 통에 며칠간은 옷을 입고 잔 적도 있지만, 잠시 그때뿐 벗고 자는 그의 습관은 변하지 않았다. 

자다가 벌거벗은 채로 일어나 창밖을 한참 동안이나 망연히 내려다보고 있는, 무슨 상념에라도 잠긴 듯한 그의 뒷모습은 우습기도 하고 쓸쓸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선뜻 다가가 말을 걸 수도 없는지라 언제까지고 그냥 지켜본다.


그는 새벽이면 가장 먼저 일어나 언제 그랬냐는 듯 이불을 깔끔하게 개어 놓고, 말끔하게 옷을 챙겨 입고 나와서 세수와 면도를 한다. 하루 종일 불평 한마디 없이 거실에 앉아 열심히 TV를 보고, 한 조각의 음식조차 남기지 않고 알뜰하고 깨끗하게 식사를 한다.

뇌경색을 앓았던 적이 있어서 걸음걸이가 약간 불편함에도 매번 도움 없이 화장실을 손수 다니고(한 가지 안타까운 건, 조준이 잘 안 돼서 많이 흘리므로 어르신이 다녀가면 꼭 화장실 바닥을 청소해야 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다른 어르신들의 휠체어 이동까지 도와주려는 그는 그래도 명실공히 우리 요양원을 대표하는 신사 중의 신사다. 

다들 잠자는 시간에 행여 옷을 홀랑 벗은 채로 당신 방 밖으로 나오지만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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