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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연 Mar 06. 2021

비밀을 안고 살다



육중한 몸과 사뭇 어울리게 느릿느릿 천천히 움직이면서 늘 표정과 말이 없는 그녀. 

작은 눈, 꼭 다문 입술, 깊게 파인 주름, 한결같이 감정을 알 수 없는 표정, 얼굴 한 편에는 분명 원인 모를 깊은 그늘이 있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얘기 한 번 제대로 건네는 적이 없는 그녀는 작년 6월에 우리 요양원에 입소해서 1년째 생활하고 있는 서화자(가명) 어르신이다.


순하디 순한 순둥이로 지내며 요양보호사들의 바쁜 손길을 덜어주던 그녀가, 요추 골절이라는 뜻밖의 부상을 당한 것은 며칠 전 새벽 무렵이었다. 밤이면 어김없이 자다가 두세 차례 일어나 타박타박 소리를 내며 신발을 끌고 화장실을 혼자 다녀오곤 했던 그녀가, 웬일인지 그날은 자신의 방에 있는 이동 변기를 이용하다가 그만 중심을 잃고 잠시 바닥에 주저앉았던 모양이다. 

움직임이나 소리가 없어서 요양보호사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했고, CCTV를 봤을 때는 이미 아무렇지도 않은 듯 벌떡 일어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이후였다고 했다. 

특별한 지병도 없고 평소 감기 한 번 걸린 적 없지만, 치매와 지적 장애가 심해서 묻는 말에는 겨우 

“어, 어, 아니야. 응, 응”

이라고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등 평소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던 터라 아무도 그녀가 다쳤으리라 짐작하지 못했다. 

그러나 꼬박꼬박 식사를 잘했던 그녀가 갑자기 밥을 남기고, 늘 나와 있던 거실에도 나오지 않아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던진 질문 열두 고개 끝에 허리가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CCTV를 돌려보고 나서야 그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아픈지 의사 표현을 정확하게 할 수 없는 그녀였기에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다른 어르신들보다 더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그녀의 허리 통증이 생각보다 심했던지, 누우면 곧 잠이 들곤 했던 그녀는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그런데 보호자인 그녀의 아들이 처음에는 별일 아닌 것처럼 방관하고 병원에 데려가겠다는 얘기조차 하지 않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자 주위에서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갑자기 요양원 탓을 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일손이 부족한 요양원에서 일 대 일 케어를 하거나, 24시간 내내 어르신들 일거수일투족을 밀착해서 관찰할 수 있는 상황이 가능하지 않음을 잘 알면서도, 모든 책임을 전가하며 억지를 부리는 보호자들은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녀의 아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 그녀의 아들은 평소 그녀 보기를 돌같이 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는 비밀이 많았다. 현재 남자 어르신들 방에 있는 그녀의 남편인 장구영(가명) 어르신이 뒤늦게 우리 요양원에 왔을 때, 먼저 와 있었던 그녀는 그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할 뿐만 아니라 벌벌 떨면서 두려워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행방불명되었던 그녀를 가족들이 십수 년 만에 찾았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입을 굳게 다문 그녀에게서 아무도 내막을 알아내지는 못했던 모양이었다. 

그녀의 가정에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아들은 눈에 띌 정도로 그녀에게 무관심했다. 아버지인 구영 어르신에게는 그토록 살가우면서도 어머니인 그녀에게는 다소 무관심하고 냉정하게만 보였다. 친엄마가 아니라는 얘기도 있었다.

 

평생 지적 장애를 안고 살아야 했던 그녀가 험한 세상 속에서 그동안 얼마나 신산한 삶을 살았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왠지 알 수 없는 울분이 치솟았다.


병원에 다녀온 후 그녀는 거북이 등딱지 같은 커다란 보호대를 차고 생활하고 있다. 여전히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깊은 잠을 자지 못한다. 좀 어떠냐고 물으면 

“허리 마이 아파. 응, 아파”

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그녀의 손을 이끌고 거실로 나와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게끔 갖은 애교를 부리지만, 고집스럽게도 그녀는 평소 식사량의 반도 안 먹고는 나머지 한 숟가락을 완강히 거부한다. 예전과는 달리 고집스럽게 약도 안 먹으려 해서 맛있는 간식으로 위장해서 줘야 한다. 


화장실에 들어가면 대변 뒤처리를 제대로 못 해서 늘 손톱을 칫솔로 구석구석 깨끗이 닦아줘야 하고, 침을 많이 흘려서 항상 손수건을 달아줘야 하지만(유난히 깔끔한 김장수 어르신은 식사 때마다 그녀의 옆에 바싹 다가앉아 왜 그렇게 침을 흘리냐고 묻고 또 묻고, 박말례 어르신은 밥맛 떨어진다고 구박하는 통에 그녀를 위해 변명하느라 갖은 애를 써야 한다) 누구보다도 순해서 요양보호사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그녀. 

건강했던 그녀가 속상하게도 요즘은 자꾸 아프다고 한다. 이제 아플 일만 남은 나이이긴 하지만 그녀만큼은 좀 더 오래 버텨줬으면 좋겠다. 

지금부터라도 조금만 더 행복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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